(10) 2014년 7월 여행기--콘캔 그 두 번째 이야기(콘캔대학교와 센트럴 콘캔)
찬투어 버스를 타고 방콕에서 내내 달려 콘캔에 도착한 저는
(죄송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난 여행기에서 무려 5달이나 지나서 이야기가 다시 이어집니다)
한 세 시간쯤 푹 자고 일어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갓 개장한 콘캔 파크에 나가 보았습니다.
[콘캔 파크]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생전 처음 와 본 도시는 제겐 꼭 어드벤처 파크 같은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오기 전 공부는 했었지만, 정말로 피만 인 가든 앞은 시장과 사람, 차로 번화했고
무엇보다도 노선 번호를 단 썽태우가 많더군요.
썽태우에 노선이 있고, 요금은 정해져 있다는 것, 이것이 치앙마이와 비교했을 때의 콘캔의 더 좋은 점이었습니다(한 번 탈 때마다 9밧).
가장 먼저 콘캔 대학을 가 보려고 했으므로, 공부했던 대로 8번 썽태우를 금방 잡아타고 콘캔 대학으로 향했습니다.
썽태우 노선 번호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실 것 없어요.
호텔에서 주는 지도에도 잘 나와 있고, 태사랑에도 어느 친절하신 분께서 올려 주신 노선도가 나와 있습니다.
썽태우에 같이 탄 사람들은, 나중에 보니 콘캔대학교 학생들이었는데
한 명은 의대생, 한 명은 공대생이었습니다.
콘캔대학교가 태국 대학 순위에서 매번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학교에 가 보고 학생들을 만나면 과연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공부도 잘 할 뿐더러 매우 성실합니다]가 얼굴에 씌어져 있는 듯한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콘캔대학교 자체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공원이더군요!
숲이 울창하고 대지가 크다는 점에서 치앙마이 대학교와 많이 비슷했습니다.
썽태우는 학교에 진입해서 학생회관과 도서관 사잇길에 승객들을 내려 주는데
차가 아니라면 도저히 걸어서는 진입하기 어려운 거리라고 봅니다.
학교 시설을 쭉 돌아본 후에 느낀 것인데
대부분의 다른 태국의 대학들과 달리, 이 학교는 학생들을 돈 잘 쓰는 부르조아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학생회관의 물가가 결코 싸지 않았고
학생회관 안에 이상할 정도로 비싼 마사지샵이나 미용실이 몇 개씩 있는데다가
태국 내의 모든 ATM 기계는 다 줄지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점이었습니다.
학교 캐릭터 샵을 구경하면서, 전부터 궁금했었던 것 하나를 또 발견했습니다.
콘캔에는 wishing tree resort 등등, [위싱 트리]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던데
학교 샵에서도 이 위싱 트리를 연상하게 하는 물건을 팔고 있더군요.
콘캔에 유명한 위싱 트리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회관 구경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어가니
사서분께서 [도서관 출입증은 20바트입니다]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기꺼이 20바트를 내고 도서관 내부를 구경하였습니다.
콘캔 대학은 지은 지 꽤 되었기 때문에(학교 캐릭터 샵의 문구를 빌어 추측하면 50년 이상)
도서관도 예전에 지은 구관과 신관이 따로 나뉘어 있는데
역사적인 사진들도 많고, 아주 깨끗하게 잘 관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카이브로 가는 다리입니다.
콘캔대학교의 색은 아무래도 오렌지색이 아닐까 해요.
학교 캐릭터도, 도서관도 순 오렌지색 투성이입니다.
(사진보다는 실제가 훨씬 보기 좋습니다)
치앙마이대는 보라색이었던 것 같은데, 쭐라롱껀과 마히돈대는 무슨 색이 스쿨 컬러인지 모르겠네요.
아카이브에는 여러 가지 볼 거리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렇게 학교의 역사를 알려 주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저도 이 분들과 같이, 들어오는 기차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예전의 콘캔 대학교 학생들과
지금의 콘캔 대학교 학생들입니다.
둘 다 아름답지요?
위의 사진은 도서관 자료로, 아래의 사진은 학교 정문에 크게 걸려 있습니다.
이렇게 도서관 구경까지 잘 마치고, 저는 학교 순환 버스를 타고 정문 앞까지 왔습니다.
어찌나 학교가 큰지, 정문 거의 앞 정류장에서 내렸는데도 한참 걸어야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변은 거의 원시림과 다름 없었어요.
다음 행선지는 센트럴 백화점이었으므로, 저는 콘캔대 정문 앞 길을 건너서
센트럴 쪽으로 간다고 '제게 느껴지는' 썽태우를 그냥 세워서 탔습니다.
그런 후에, 그제서야 그 안에 타고 계신 승객들에게 이게 센탄에 가느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제 질문에, 유창한 영어로 이런 답변이 들려왔습니다.
[아뇨, 이건 센트럴에 가지 않습니다. 증간에 내려서 한 번 갈아타셔요]
저는 매우 안심했고, 썽태우 안의 태국인 승객분들도 적잖이 안심을 하셨습니다.
이 무모한 외국인에게 당신들이 애써 영어로 길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같이 내려서, 제가 탈 썽태우를 알려 주신 후에 갈 길을 가신 분도 태국인이었습니다. 그 분께 감사합니다)
제게 대답을 해 준 사람은 켄이라는 카메룬 사람인데, 콘캔 대학의 강사이고 매우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제가 다음 썽태우를 갈아탈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누었는데
그 때가 마침 월드컵 시즌이고, 2006년에는 카메룬과 저희가 같은 조였던 것이 기억나서
이번 월드컵에 카메룬은 어땠느냐고 물어보니, 실망스러운 얼굴로 [아주 못했죠]라고 하더군요.
우리 나라도 좀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성적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센탄에 도착했는데
도착해서도 뭔가를 매우 친절하게 알려 주셨던 경비 아저씨께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나니, 제가 무엇을 여쭈었었고 그 분께서 무엇을 가르쳐 주셨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니 갑자기 기억이 떠오르네요!
썽태우에서 내리자마자, 제가 그분께
시내에 가는 썽태우는 어디에서 타야 하느냐고 여쭤 보았던 게 생각납니다.
아주 친절히 가르쳐 주셨고, 그 당시의 기록을 찾아보니
그 분 덕에 숙소에 돌아올 때에도 썽태우를 무사히 잘 타고 왔습니다.
딱 그 시점에 [썽태우, 9밧]이라고 적혀 있네요.
센탄과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의 일, 기타 등등은 다음 편에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