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위 소강 상태의 방콕 기행--나머지 날들
이 기행문을 쓰다 보니
한 지역에 대한 여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이 간직하게 되는 추억은 점점 늘어나지만
사건 위주의 기행문을 쓰는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기행문 쓰는 일이 점점 비루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도 더없이 소중한 여행을 했지만
인터넷에 올리는 글에서는 저의 생각이나 감정 같은 것을 철저히 배제하는 제 습관을 고수하다 보니
시위라든지, 다리를 다쳐 병원에 갔다든지 하는 사건을 빼니
다른 사람들과 나눌 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스스로도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제 방콕 여행기가 왜 점점 정보 전달 위주가 되고 있는지를
저 자신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알았네요.
하지만,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는 했습니다.
세월이 쌓이고 여행의 경험도 쌓여가니, 이제는
[이 여러 번에 걸친 경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소중했던 기억은 바로 이것!]
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더군요.
반 년 전쯤 올렸던 50문 50답과 같은 글이, 그래서 나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하여간, 이 여행에서 아직 못다 한, [이야기할 만한 사건들 이야기]는 이 글에서 다 마무리하겠습니다.
dongle님의 예전 콘캔 기행문에서
[사각사각하는 맛의 파인애플]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그 파인애플을 찾아내어서, 정말 맘껏 먹었습니다.
파인애플의 크기가 작다 보니, 보통 파인애플에서는 먹을 수 없어 버리는 중간 심이
부드럽고 사각사각해서 또다른 풍미를 자아내더군요.
이 맛이 특별해서인지, 값도 조금 비쌌습니다.
다리는 다쳤지만, 그 이후에도 별 일 없이
방콕에서 평소에 하던 것들은 다 하고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BTS에서 평소에는 전혀 이용하지 않던 계단 난간을 잡고 다니다 보니
금세 손이 새까매져서 이게 이렇게 더러운 물건이구나 깨닫는 일 정도는 있었습니다.
태국에 입국할 때에, 엉뚱한 입국심사관 덕분에 시간을 절약했었던 이야기를 했었죠.
출국할 때에는, 제 붕대 감은 다리를 보더니
입국수속 카운터의 스튜어디스들이 깊은 염려를 표시하면서 고맙게도 특별한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일단, 제가 입국 카운터에 도착한 시간이 좀 늦었는데도 최대한 배려해 좋은 자리를 주셨고
두 번째로는 저도 생전 처음 이용해 보는 프리미엄 레인 이용권을 주셨습니다.
어디에선가 보니 이것이 최소 천 밧은 내어야 이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이 프리미엄 레인 이용권을 돈 내고 사용하는 시스템도 있나 봅니다)
이용권에는 제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냥 레인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 봅니다.
이거, 진짜 신속하더군요!
끝으로, 제 짐에 딸려 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하물 택을 끝으로 이번 여행기를 마칩니다.
첫날의 기행문에서 말씀드렸듯, 이번 여행은 제 발이 고생을 한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