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위 소강 상태의 방콕 기행 제 3일--태국어를 많이 한 날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3) 시위 소강 상태의 방콕 기행 제 3일--태국어를 많이 한 날

Cal 10 2562

이번의 기행문은 사실 이 날의 일 때문에 쓰기가 좀 내키지 않았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로 하면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어]와 같은 서두가 어울리는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갔던, 제가 좋아하는 상점이 끝끝내 문을 안 열지를 않나,

(그것도 안에 점원이 있는데도, 개점 시간을 훨씬 넘겼는데도 

게다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던 저하고 눈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 땡볕에 짐을 끌고 거의 1킬로를 걷지를 않나 등등

오전부터 제게 평소에는 별로 생기지 않는 종류의 일들이 많이 생겼던 날이었습니다.

단, 시위의 영향으로 딘써 거리에서 511번을 탈 수 있던 것은 좋았습니다.

버스가 진짜 많이 붐볐습니다.

짐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지라, 자리에 앉으신 분들께서 자리 밑에

짐을 놓을 수 있는 빈 공간을 내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열심히 태국어 작문 후) 이 버스, 수쿰빗으로 가나요?

안내양 아닌 안내어른: 아뇨, 펫차부리 쪽으로 갑니다.

(속으로 '오오, 내가 이거 알아들었다!' 하고 기뻐하고, 잠시 뒤에)

저: 그러면 라차테위로는 가나요?

안내어른: (사실 내가 그걸 권하고 싶었다는 듯한 기쁜 표정으로) 예!


이쯤 되면, 왜 저 사람은 매번 숙소 이동 때에 버스를 이용하나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아니, 원래부터 대중교통 이용 고수들이 모여 계신 태사랑에서는 그런 질문을 하실 분이 별로 없을까요?

태국에서는 택시비로 허무하게 쓰여지는 돈으로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여러 분들의 도움을 입어서 저는 별 일 없이 다음 숙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제가 택한 세 번째 숙소는, 이 근처에 능인선원이 있는 곳입니다.

사실 저도 전혀 몰랐었는데, BTS에서 내리자마자 이 한글 간판이 뙇 하고 저를 맞아 주어서 알았습니다.



이 날의 하일라이트는 이 날의 오후 네 시 경에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한참 할 일을 하다가, 그 날 끊은 BTS 종일권을 본격적으로 이용해 볼 생각에

한들거리면서 길을 나서서 BTS 역 쪽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해가 쨍쨍한 오후, 학교 앞길이긴 했지만 인적도 거의 없고 길에는 저 하나만 있는 듯했습니다.

너무나 조용하고 한가롭고 평화로워서, 딴 생각으로 정신이 팔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이 돌부리에 걸렸고, 순간 저는 발이 너무 아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머릿속으로 '아, 발이 부러졌다!'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고요하던 거리의 어디에서부터인지 태국인들이 떼로 몰려와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태국인들: (모르는 태국말로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 중의 한 분: 외국인이다!  (그 때부터 영어로)

당신, 영어 하나요?  지금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올 터이니까 좀 기다려요.

여기 일단 앉아 봐요.  부러진 것 같나요?  그냥 삐었나요?

제가 바로 이 가게의 주인이니(저를 앉혀 준 댓돌 앞 커피샵 문을 가리키면서)

이 얼음 주머니를 대고 잠시 쉬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저를 부르셔요.

저: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 정말 친절하신 분이네요.


이 때에 정말 무척 당황하였지만,

대체 이 분들이 어디에서 다들 온 걸까, 그리고 이 친절하신 가게 주인은 또 어떻게 이렇게도 친절한 걸까 하고

매우 감사했습니다.

일단 놀람이 진정되고 나니, 이제는 병원에 한 번 가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TS 역까지는 스스로 걸어갔고, 그 이후에는 BTS 직원들의 도움으로

(서로 다른 역에서 연락을 취하셔서 오토바이 택시를 불러 주시고 등등)

아직도 이름을 잘 모르는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의 여행에서는 이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다쳐서 가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기에서의 경험이 진짜 재미있었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온 저를 곧 휠체어에 태우더니

응급실--엑스레이실--약국과 카운터 순으로 데리고 다녔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예전 병원 시스템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한-태 사전이 있는 폰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정말 재미있게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 : 저    =: 병원 간호사들 또는 의사들)


-안녕하셔요!  저,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요.

=일단 엑싸레를 찍어 볼게요.  보험 있나요?

-보험 있어요!

=그럼 증서를 가지고 오는 게 좋겠어요.

-(이건 태국어로 할 수가 없어서 영어로) 그게 여행자보험이라서, 일단 사건이 생기면 귀국 이후에 비용을 청구하는 거여요.

=오오, 그렇군요.  여기하고 시스템이 다르네요,  그럼 뭐........  참, 당신 여권 있나요?

-여권 복사본하고 또 다른 신분증, 여기 있어요.


=(조금 후에 다시 오더니) 당신, 결혼했나요?  오, 정말?  그럼 미시즈?  남편 성은 뭐여요?

-(이런 걸 왜 이렇게 궁금해하나 하면서 다 가르쳐 드렸는데, 나중에 보니 병원 청구서에

제가 가르쳐 드린 대로 아주 정성껏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 이름, 어떻게 발음해요?

-(이러이러하다고 가르쳐 드림.  다들 한 번씩 발음해 보심)

=(자기들도 통성명을 하는데, 다 별명으로 가르쳐 주심. 

그 중에 간호사 한 분이 개그맨 김경아씨 닮은 예쁜 분이었는데, 이름이 Lut이었어요)

-(문득 침대로 날아드는 모기를 보고) 아, 모기, 모기!

=(뭐가 웃기는지 다들 깔깔깔깔~~~  '모스키토!'라고 외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한참 뒤에, 약간 이병헌씨 풍으로 생긴 키 큰 젊은 의사분이 오셨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어로만 말했어요. 


=안녕하셔요!  당신 발목 엑스레이를 지금 막 판독했습니다.  지금 어디가 가장 아파요?

(꾹꾹 꾹꾹 여러 군데 눌러보시더니)

뼈가 부러진 데는 전혀 없습니다.

-(크게 안심하며) 그거 참 다행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발목이 많이 부을 수가 있나요?

=뼈 말고도 주변의 염증으로 여러 가지가 부을 수 있지요.  인대라든지.

-오, 그렇군요.  인대가 부을 수 있네요.

=(붕대를 단단히 감으면서) 약을 처방하고, 압박 붕대로 요래 요래 해 드릴 터이니,

씻을 때에는 잠시 풀어 놓았다가 다시 요래 요래 감으셔요.

-(붕대에 붙인 테이프를 가리키면서) 이건 제가 사야 하겠지요?


그랬더니 그 김경아씨 닮은 간호원이 태국어로 뭐라고 뭐라고 의사에게 이야기하시는데

[이거 하나 정도는 그냥 이 분 주죠?]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더니 그 의사께서 테이프가 필요 없는 무슨 핀 같은 것으로 다시 붕대를 고정해 주셔서

그것은 귀국한 후에도 내내 잘 썼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간호사께서 하신 말씀은

'테이프 같은 소모품 말고 다른 걸로 고정하죠?'라는 말이었으려나요?)


병원 안에서 내내 제 휠체어를 끌어 주신 남자 간호사분께서

이렇게 모든 절차가 다 끝난 저를 병원 뜰에 데려다 주시더니

혹시 차로 데려다 줄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말하고, 그냥 일어나서 (BGM: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BTS 쪽으로 스스로 걸어갔고, 그 후의 예정들을 별 일 없이 진행했습니다.

멀쩡히 미술관 구경도 잘 했고, 밥 먹으러도 잘 다녔고

이 날 들었던 비용은 보험으로 다 돌려받았습니다.

귀국해서 2주 정도는 좀 불편했습니다.

10 Comments
디아맨 2014.04.28 19:10  
ㅎㅎ 재밋엇네요 cal님이 여자군요~~미시즈!
전 버스가 편한게 돈때문이라기 보단 택시기사랑 흥정 하기 귀찮고,, 요금사기 당해서..
맘상하기 싫어서 버스가 편해요..
그리고 정말 친절한 태국분들 많이 만나셧네요 저도.. 친절한분들 많이 만낫는대요 ㅎㅎ;;
Cal 2014.04.28 20:38  
그러네요, 맘 상할 일이 없어요, 버스는!
택시를 탈 때마다 [아, 내가 이래서 택시를 안 탔었지!]라는 기억이 납니다.
필리핀 2014.04.28 20:31  
실례지만 병원비가 어느 정도 들었나요???

태국 의료비 감을 좀 잡아보려구요...
Cal 2014.04.28 20:38  
태국에서 병원을 두 번 가 봤어요.
한 번은 팔이 삐고, 이번은 발목이 삐어서요.
두 번 다 천오백밧 정도 들었어요.
필리핀 2014.04.29 05:10  
아... 사고가 또 있으셨군요... ㅠㅠ

암튼 감사합니다...
곰돌이 2014.05.02 19:34  
Cal  님께서 안 좋은 일을 당하셨지만....

그래도,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으셨네요^^*

홍복입니다 ^^
Cal 2014.05.04 21:07  
그 당시에는 당황했지만, 지나고 나니 아주 진한 추억이 남는 사건이었어요!
하지만 곰돌이님과 가족분들께서는 늘 안전하고 편하게 여행하셨으면 합니다.
2014.05.09 17:11  
병원비 엄청 나오셨겠는데요.. 저는 태국에서 감기로 갔었는데도 10만원 정도 나오더라구요.. 물론 여행자보험으로 돌려받았지만..
공심채 2014.06.08 14:34  
'모기, 모기'라는 말에 간호사들이 왜 웃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모기'라는 말과 '바쁘다'라는 말이 성조만 조금 다를 뿐 우리 발음으로는 둘 다 '융'이다보니.. 아마 '모기'보다는 '바쁘다'에 가깝게 발음하신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Cal 2014.06.11 12:46  
아마도 그랬던 것 같네요!  이렇게 한 단어 또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