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의 나를 찾아서...7 (쑤완나폼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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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의 나를 찾아서...7 (쑤완나폼공항)

007테디 2 2375
【7일】
 
 
졸음을 쫓기 위해 짐수레를 끌면서 공항 이곳저곳을 배회하였다.
누가 만약 본다면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범죄의 표적이 되느니 차라리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게 나을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밤 12시 무렵이었다.
잠도 깨우고 몸도 따뜻하게 만들 겸 새벽 3시가 되면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기로 하였다.
그래, 3시간을 버티자.
 
 
잠을 깨기위한 나의 눈물겨운 노력은 계속되었다.
공항 구석으로 가서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했다.
지나가던 공항경찰관이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약간 무안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노래를 들었다.
정말 소리를 크게 해놓고 겨울바람을 들었다.
피아노소리가 따랑따랑하게 들리면서 잠이 좀 깨는 것 같았다.
옆에있던 사람이 쳐다보았다.
상관없었다.
이미 난 체면을 포기하였다.
그런데 겨울바람도 3번정도 반복하다보니 슬슬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라데츠키행진곡을 틀었다.
효과가 좋았다.
나는 머리가 맑아오는것을 느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런데 라데츠키행진곡도 3번정도 반복하다보니 슬슬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노래들이 전체적으로 3회독정도 되면 효과가 떨어지는것 같았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갈수록 미약해졌다.
흑건... 약간 효과가 있는것 같았는데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황제... 이것도 효과없어
영웅... 이것도 효과없어
라흐마니노프... 이것도 효과없어
 
 
이런식으로 넘기다보니, 남은건
녹턴, 작은별변주곡, 사랑의꿈, 월광, 아를의여인, 달빛...
듣다가 잠들 노래만 남았다.
 
 
다른 파일을 열어보았다.
'나의 왕자님'
밤~새도~록 창밖에~ 햇~님이 뜨~길 기다려~요.
아~침이 오면~ 비행기~에~ 탑~승할수 있으니까요.
잠자는 공항의 취준생과 철수왕자님.
 
 
엠피를 꺼버리고 씹기운동을 하기로 했다.
하나남은 던킨을,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그런데 5분밖에 안 지났다.
껌을 씹었다.
그런데도 잠은 계속해서 밀려왔다.
졸음군단을 쫓기위해 물도 벌컥벌컥 마셔보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잠을 쫓는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찾은곳이 2층의 공항지구대? 앞 의자였다.
공항지구대 사무실은 전면유리로 되어있어서,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할 수 있도록 트여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직원이 고개를 들면, 이곳에 앉아있는 내가 바로 보였다.
체면은 일찌감치 주머니에 넣어둔 나는 잘 준비를 시작했다.
 
 
내 자리는 기둥 옆 이어서 사람이 없었다.
기둥쪽으로 칠키로를 세워두고 의자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옆에 기념품보따리를 놓고 그 위에 내가 누웠다ㅋㅋ
칠키로와 기념품보따리를 깔고 누운 후, 담요를 덮었다.
자, 내 짐은 손대지 못할 것이다.
여권가방을 메고 그 위에 바람막이를 입었기때문에 여권가방도 안전했다.
나는 그렇게 잠들었다.
 
 
그리고 10분후에 깼다ㅋㅋㅋㅋ
내 뒤편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는데, 에스컬레이터 안내방송이 5분에 한번꼴로 흘러나왔다.
손잡이를 잡아 주십시오 뭐 이런내용인가보다.
정말 시끄러웠다.
그리고 불안해서 잘 수도 없었다.
공항 지구대 코앞에서, 짐 두개를 깔고 누워서, 담요까지 덮었지만 불안한건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처음 노숙할때는 이렇게까지 불안하지 않았는데,
어제 교회에서 전도사님에게 공항에서 생기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서 더 불안했다.
퉁퉁부었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 의자에 한 외국인 청년이 매우 지친 모습으로 게슴츠레하고 구부정하게 앉아있었다.
불쌍한놈, 너도 졸리지?
나는 그나마 배낭과 보따리라서 깔고 누울수있었지만, 불쌍한 청년은 엄청나게 큰 이민가방을 수레에 싣고 구부정하게 앉아서 졸린눈을 비비며 짐을 지키고 있었다.
쯧쯧.
나는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10분후에 다시 깨어났다.
눈을 뜰때마다 시간을 확인했는데, 칼같이 10분에 한번씩 일어났다.
 
 
머리는 멍하고, 눈은 퉁퉁붓고, 내 뒤에서 에스컬레이터 안내방송은 계속 흘러나오고, 짐에 기대어서 어정쩡한 자세로 있으니 몸은 뻐근하고, 꺼지지 않는 조명이 괴롭히고, 불안하니 잘 수도 없고, 안 잘수도 없고.
잠깐잠깐 잠들어도 10분에 한번씩 일어나고.
생고생이었다.
 
 
옆을 다시 보니 불쌍한 청년은 자기로 결정했나보다.
옆에서 자신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여자애가 쿨쿨 자는걸 보니 본인도 에라 자야겠다 했나보다.
야, 근데 짐은 지켜야지.
수레를 등지고 그렇게 편하게 뻗어누워서 자면 어떻하냐ㅋㅋㅋㅋㅋㅋ
수레 누가 끌고가면 어쩌려고.
(정신차려 이 친구야~)
 
 
나는 10분에 한번씩 자다깨다를 반복하다가 어느순간 잠이 들었다.
 
 
어느순간 화들짝 놀라서 깨어보니 2시즈음 이었다.
나는 3시에 먹기로 한 밥을 조금 앞당겨 지금 먹으러 가기로 결정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불쌍한 청년은 아예 꿈나라로 가버린 것 같았다.
다행히 수레는 의자옆에 꼭 붙어있었다.
짐 잘 챙겨라, 안뇽.
 
 
게슴츠레한 눈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최대한 이 곳에서 시간을 끌기 위해 음식 주문도 처언천히, 식사도 처언천히 했다.
죽 한그릇을 주문했는데 맛이 정말 좋았다.
그 와중에도 찰칵찰칵 사진찍는것을 잊지 않았다.
 
 
음식을 다 먹고 다시 출국장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공항에서 밤 새기*
-비 추천입니다.
-위험하고 매우 불편합니다.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사전에 공항근처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을 예약하여 새벽에 공항으로 오도록 합니다. 공항근처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서는 아침일찍 공항으로 데려다준다고 합니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는것이 어떤 것인가 궁금하시다면 궁금증을 버리는것이 좋습니다.
2 Comments
본자언니 2013.02.02 20:50  
고생했네요...전 학생때 노숙했지만..이젠 일을 하고 있어...ㅎㅎ pp카드 장만했습니당..
jindalrea 2013.02.02 23:25  
빠빠밤 빠빠빰 빰빠 빠밤 빠바밤밤 밤빠 빰~~^^;;

이런..이런..정말 고생스러워 보여요..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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