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삽질힐링여행 26 - 내가 느낀 태국, 태국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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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조된 삽질힐링여행 26 - 내가 느낀 태국, 태국 사람들

Robbine 57 4835
2011년 3월 첫 방타이때는 그저 설레기만 했었다.
3박 5일의 짧은 일정인지라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일정을 빡빡하게 짜느라 제대로 먹고 다니지도 못했다.
식당 음식은 커녕 길거리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일정이 빡빡한 탓도 있었지만, 당시에 핫한 호텔로 뜨던 애따스 호텔이 위치한 소이에는 저녁에 무엇을 파는 곳이 편의점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그렇게도 먹는 것에 집착했었다.
물론 평소에도 먹는 즐거움을 크게 치는 스타일이긴 하다.
 
첫 여행때는 가난한 동남아 국가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뻔쩍한 시암 일대를 보고 놀라기도 했고,
카오산 등에서는 남루한 행색에 힘들게 종일 일하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 태국인들의 순박함과 친절에 감동하기도 했다.
어딜 가도 좋았고, 무엇을 해도 좋았다.
반딧불을 네 마리 밖에 보지 못했어도 암파와 일정은 당시 여행에서도 최고의 일정이었고,
사람에 미어 터져도 왕궁은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 좋았다.
시장에선 사고싶은게 어찌나 많은지 참느라 힘들었다.
 
그런데 두 번째 방타이때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아는게 병이었는지, 선무당이 사람을 잡았던 택시 사건도 있었지만
순간순간 내가 여행자라서 바가지를 쓰는구나 싶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태국인들이 백인을 유독 좋아하고 동양인은 차별대우 한다더니 그런 것도 당해봤고,
태국 식당 종업원의 불친절도 당해보았고,
제복입고 일하는 사람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무시, 불친절, 무례도 당해보았고,
툭툭사기도 당해보았고,
댕덤 호텔의 메이드가 매번 청소 후 꼽아놓은 카드키를 가져가버려서 얼마 되지도 않지만 내 카드키 보증금을 나눠먹으려는 속셈인가 하는 의심도 들게 하고,
(그래도 카드키 돌려주러 온 메이드 새댁이 어린 아들 데리고 다니면서 일하는게 짠해서 마스크 팩 두 장을 주었더니 좋아하면서 받아갔다. 사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릴텐데 애기 봐줄 사람이 없고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형편이라 그런거 같아서 새댁도, 아이도 짠하기만 했다.)
수르야의 서비스도 방 가격에 비해 형편없었고(이것도 메이드 문제),
수르야에서 크루아압손까지 멀어서 100밧은 받아야 한다는 툭툭기사도 만나보았다.
 
누군가의 글에서 읽었듯이,
 
여기까지 비행기 타고 여행 온 너 같은 외국인은 나보다 훨씬 잘 사니까 내가 몇십밧 쯤은 사기쳐도 큰 타격 없잖아?
다같이 잘 살아야지, 좀 더 내
 
라는 마인드로 당당하게 외국인에게만 바가지 요금을 받는 태국 사람들을 보고
태국은 닳고 닳은 사기꾼들의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잘 못하고 길을 잘 몰라도 어떻게든 물어보면 길을 알려주려는 태국인을 만났고(비록 그게 틀린 정보일지라도),
버스에서 내릴 곳을 몰라 태국어도 아닌 영어로 물어도 목적지에서 친절하게 내리라고 알려주는 태국인을 만났고,
심지어 내가 내려서도 길을 모를까봐 어떤 길로 어떻게 가라고 상세히 알려주는 태국인을 만났고,
혹은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는 태국인을 만났고,
너무너무 친절하게 장사하는 태국인도 만났고,
20밧 짜리 과자를 산 후 옆 가게 사람들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전화를 걸어가며 호텔에 무사히 갈 수 있게 해 준 태국인을 만났고,
호텔로 알아서 오라고 하지 않고 우리를 마중나온 태국인을 만났고,
잠 재워주고 돈 받으면 그만인데 근처 관광도 시켜주는 태국인을 만났고,
별 것 아닌 답례에도 너무 고마워하며 우리의 마음을 고마워해준 태국인을 만났고,
맛이 있어서 또 사러 갔는데 두 번째 왔다고 덤을 많이 올려주는 태국인을 만났고,
마사지만 해줘도 되는데 모기 물렸다고 모기약도 발라주고, 어깨 뭉쳤다고 어깨에 연고도 발라주는 태국인을 만났다.
 
첫 번째 여행에서 나는 태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환상이 덧씌워져서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태국인들은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바보가 아니었고,
스스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동화 속에나 나오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환상은 많이 깨졌지만
그래도 태국이 싫어지지는 않았다.
 
'여기(한국)나 거기(태국)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라는 말로 짧게 정리하시는 많은 선배님들의 말씀을 나도 경험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론적으로, 머리로만 아는 것과 몸으로 느껴서 알게 되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어려운 한자말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모두 잘 알 것이다.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많았다.
단지 내가 이방인이라 잘 몰라서 대처가 늦거나 더 쉬운 표적이 될 뿐이다.
그것 뿐이다.
 
조금 더 공부하고,
조금 더 익숙해지고,
조금 더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노련한 선배 여행자들처럼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20-30밧 정도의 바가지는 알면서도 당해줄 줄 아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짧은 태국어를 배워서 말을 걸어볼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며 순간순간 태국은 이제 질린다, 정떨어진다 느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생각하니 역시, 또 갈 수 밖에 없는 나라다.
아직은 관심사가 북부로 향하지 않았지만
(치앙마이는 그렇게 유명한데도 아직 끌리지가 않는다. 몰라서 그런건지도.. 가네시님이 열심히 올려주시는 난에 대한 정보는 정말 유혹적이기는 하다. 근데 맛있는게 없다고 해서 고민이.. 한국에서 가져가는 컵라면으로 연명하기는 싫다.)
그래도 방콕에서 조금 넓혀서, 참새하루님이 소개해주신 박쥐동굴도 가보고 싶고
(바퀴벌레가 무섭긴 하지만 ㅠㅠㅠㅠ)
동생이 가고싶어 했지만 내가 일정에 넣지 않아서 가지 못한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가보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술관 안가면서 뭔가 싶기는 하지만; 고흐가 좋아도 서울까지 가서 보고 올 정도로 좋지는 않아서 미술관을 그렇게 취미삼아 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먹고 다녔는데도 아직도 먹어보지 못한 쌈쎈 쪽의 해물듬뿍 팟타이와 족발덮밥도 먹으러 가야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려, 태국!!
 
 
 
57 Comments
디아맨 2014.02.20 09:12  
헉 그럼 남친이 생긴건가요? 그사이^^
슬리핑독 2014.02.18 05:10  
오랫만에 재밋는 후기 읽어서 좋았습니다.
저도 고향이 부산인데요^^제대로 태국여행하시고 글도 재밋게 잘 쓰시네요.
그리고 원하시는대로 꼭 태국에 자주 가시길 빕니다.ㅎㅎ
저는 태국에서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천천히 준비하고 있답니다.
Robbine 2014.02.20 06:49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덕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 잘 하셔서 행복한 생활 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purefountain 2014.11.13 01:45  
이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처음가는 사람으로서 걱정이 많지만,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Robbine 2014.11.13 22:52  
도움이 되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탈하게 즐거운 여행 하고 오세요~
문진진 2014.11.23 21:33  
열심히 살고있는 태국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저도 많은걸 느끼고 배워올수있엇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해요
Robbine 2014.11.23 21:44  
별말씀을요. 같은 것을 보더라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는 개인마다 차이가 큰 것 같아요. 무엇이 옳은가 하는 정답은 없는것 같기도 하고요. 여행 알차게 하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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