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삽질힐링여행 11 - 그리고 사건이 터지다.
그렇게 시암센터에서 여러차례 기분이 상한 후
어떻게라도 기분을 풀기 위해 시암 파라곤 고메마켓을 구경하기로 했다.
구경도 하면서 먹을것도 좀 사려고.
맛있는걸 보면 기분이 풀릴것 같아서 (대체 어디까지 짐승스러운건지;)
그런데, 전 날 왕궁 일정 후에 마사지도 받지 않고 잔 우리가
오늘 또 하루종일 걷는 투어를 했더니
아무리 시암파라곤이라도 흥이 나질 않았다.
그저 쉬고싶을 뿐..
(사실 동생은 좀 더 둘러보고 싶어했는데 내가 피곤하다고 찡찡댔다.
짜증도 엄청 나고 빨리 호텔로 가고싶었다.)
그렇게 재빨리 고메마켓을 둘러보고
카오산까지 택시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너 택시 정류소를 찾아 계속 걸었는데..
그랬는데..
인도를 점령하고 끝없이 이어진 야시장만 있을 뿐이었다.
그냥 아무데서나 차도 쪽으로 내려가 택시를 잡기로 하고 한 차를 정차시켰는데,
미터로는 안가겠다고 해서 보냈다.
바로 뒤에 다른 택시가 섰는데,
미터로 카오산까지 ㅇㅋ를 한다.
좋아하며 탔는데 어, 미터요금이 43으로 나온다.
"어! 어!"
이러면서 내가 내리려고 하자
기사는 에이 씨~ 자, 됐지?
이런 느낌의 말을 몇 마디 하더니 미터를 초기화시켰다.
그래서 타긴 탔는데, 불안하다.
퇴근시간과 겹쳐서인지 차가 좀 막혔다.
아까 기사의 행동 때문에 미터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곧 그것도 잊고 동생과 수다를 한참 떨었는데,
낯이 익은 맥도날드가 보였다.
어제 보았던 민주기념탑 옆에 있는 맥도날드.
다 와 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기대감이 부풀었다.
곧 내릴 수 있다.
(운전을 한 뒤로는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가 나서 오래 타기 힘든 체질이 되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 말고는 좀 그렇더라. 택시, 버스, 고속버스 전부..)
이 때 그냥 내려서 걸어갔어야 했다.
곧 내린다고 생각했는데 택시는 한참을 더 갔다.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뚫려있는 좌회전 차선을 두고도 굳이 밀리는 직진 차선을 고수했다.
아까 택시를 탔을 때의 상황이 계속 생각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좌회전을 하겠지 하겠지 하면서 기대를 하는 순간은 번번히 직진을 한다.
이제 여기가 어디 인지도 모르겠다.
이정표를 보니 처음 보는 동네다.
태사랑 지도를 쫙 펼쳐서 보아도 그런 거리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맙소사!!
내가 미터기 지적했다고 어디로 끌고갈 셈인가?
아니면 미터기 지적해서 그 만큼 메꿔서 받으려고 일부러 돌아가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 기사는 다른 기사님들과 달리 영어도 제법 통했다.
영어 잘하면 사기꾼이라던..
피곤은 하지, 머릿속은 복잡하지,
별 생각이 다 든다.
게다가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방콕에 와서의 모든 일들이 이 때 겹쳐져서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것 같다.
의심스럽게 차가 막힐 시간이 아닌데도 굳이 고속도로로 가자고 했던 공항 택시기사님,
방 치워달라는 표시 안걸어 뒀다고 방 청소 안해준 호텔 메이드,
양말이랑 반바지 빨아서 널어놓고 마르라고 에어콘 켜고 나왔는데 청소하면서 카드키 빼가버린 메이드,
청소 후에 내가 방에 꽂아뒀던 카드키 없어졌다고 하니까 니가 잃어버린거면 니가 변상해야 한다고 되도 않은 대답을 돌려준 댕덤 리셉션(물론 영어가 짧아서 그런 것이다. 나중에 다 설명이 되긴 했다. 하지만 순간 혈압 오르더라)
망고스틴 샀는데 그런 식으로 뜨네기 손님이라고 안좋은 물건으로 씌워먹은 타창시장 과일 아줌마,
왕궁일정 내내 불친절하고 고압적이어서 불쾌했던 제복입은 사람들
등등
그런 것들이 떠오르면서
왜 여기서 터졌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굴은 만만해 보일 지 몰라도 절대로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당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화풀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택시기사에 대한 의심을 키워나가며
우리 카오산 갈건데 지금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태연하게 카오산 가는게 맞다고 한다.
그 태연한 대답에 더 화가 난다.
내가 지도를 아는데..
해도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지금 카오산에서 멀어져 가는거 다 알고 있다.
왜 좌회전을 안하냐 하니
저길 보라며 길이 많이 막힌다고 이 길로 가야 덜 막힌다고 이야기 한다.
근데 지금 이 차선도 정차중인데?
그럼 이 길도 막히는건 어떻게 설명할거냐 하니 대답이 없다.
왜 대답을 못하냐고 다그치자
성질이 난 기사가 우리더러
"GET OUT!!!!!"
이라고 버럭거리며 오히려 큰소리다.
헐; 화는 누가 내야 하는데..
어이가 없다.
그리고 내리려면 진작 맥도날드에서 내렸으면 잘 찾아갈 수 있을 터였지만
이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또 다시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무서웠던지라
내리지 않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그럼 나 돈 안내고 내려도 돼?"
그러자 기사도 성질을 약간 누르며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서로 기분이 상한 상태로 차는 계속 달리고 드디어 좌회전을 했다.
한참을 가다보니 쌈쎈이라는 표지판이 보인것 같았다.
그렇게 또 좌회전을 해서 꽤 달리니 오른쪽에 알로하 하우스라는 간판이 보였다.
'아씨, 대체 얼마나 돌아서 온거야'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서로 화가 난 채 별 말 없이 계속 가다가 첫 날 공항에서 올 때 우릴 내려준 아유타야 은행 사거리가 보였다.
그럼 저 앞에 경찰서가 있다는 뜻.
그냥 여기서 내려야겠다 싶었다.
미터는 85밧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아까 미리 꺼내둔 70밧을 기사 쪽으로 던지듯이 주고
얼른 내려버렸다.
반대쪽으로 동생도 얼른 내렸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택시를 생각하고 그 쪽은 문이 안열린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내 쪽으로 내려서 조금 늦게 내렸다.
그 몇 초간 혹시나 쟤가 안내렸는데 달려 갈까봐 얼마나 쫄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또 괜히 동생한테 넌 왜 빨리 안내리고 꾸물거리냐며 신경질을 냈다.
돈을 확인한 기사가 모자라다며 뒤에서 뭐라고 한다.
괜히 삥 돌아와놓고 그렇게 요금을 달라고 하다니,
차에서 괜히 시간 버린 내가 오히려 손해 배상을 요구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대꾸하면 싸움이 되고 일이 커질것 같아 그냥 무시하고 호텔 쪽으로 걸어간다.
몇 마디 하더니 기사가 그냥 갔다.
그렇게 찝찝하게 호텔로 돌아와서 억울한 마음에 태사랑에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고생 많았다 등의 댓글이어서 조금 위로 받았으나
며칠 지나자 내 잘못인게 드러났다.
방콕의 도로가 워낙 이상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교통체증이 너무 심하고
그걸 피해서 다른 도로로 가려다가 그 길도 막히면 기사로서는 대답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도 일부러 돌아갔던 것은 아니며, 시암에서 직진하면 그 길이 맞다고 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서 숨고싶다.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이 사람을 찾아서 돈을 꼭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수르야 호텔에 체크인 하고 리셉셔니스트에게 기사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러마 하길래
얼른 내려가서 뒷좌석에 붙어있던 차 번호를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상냥한 리셉션 아가씨가 곤란한 표정으로
이것 만으로는 못찾는다고 했다.
택시회사는 모르냐길래, 노랑/초록 투톤 택시였다고 하자
그거 개인택시라서 못찾는단다.
정부에 등록도 안되어있다고 했다.
회사택시는 찾을 수 있지만 그런 비등록 개인택시는 못찾는다고..
너 혹시 뭐 놔두고 내렸냐고 묻길래
내가 돈을 더 줘야 된다고 하자
그냥 포기하란 눈빛을 보내왔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저씨 정말 미안해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앞에 쌓여 있던 것에 더해서..
내가 마법에 걸려 있었어요;;
며칠 후 마법이 끝나고 식당에서 뭘 먹을 때 동생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노. 완전 다른 사람같다."
헐; 그럼 그 동안 내가 어땠길래;;;
충격과 공포였다.
"내가 그렇게 짜증 많이 부리고 그렇게 히스테릭했어? 사람이 다를 정도로?"
"아니.. 뭐 그렇다기 보다.. 언니야가 짜증내는 상황이 이해는 되는데, 평소 언니야가 화 낼 정도 보다 좀 더 심하긴 했지. 근데 이상하게 딱 그럴 때 화 날만한 일이 더 많이 일어난 것도 있고."
헐......ㅜㅜ
그냥 다 내 탓이다.
아저씨 미안합니다.
그래서 그 뒤에 걸린 보석사기는 '의심하지 말자, 의심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면서 즐겼다.
그리고 택시는 분홍 택시만 탔다.
분홍 택시가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