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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스탑맘 7 1489
오토바이 기사는 지척에 있는 반 얀 트리 스카이라운지를 모른다. 가이드북의 주소와 티볼리 호텔에서 준 방콕 시내 지도를 보여줬는데도 그는 여러 번 사람들에게 묻고서야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렇게 유명한 곳을 왜 현지인들은 낯설어 마지않을까? 그때부터였나보다. 곳곳에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지키고 있고, 요란하게 치장한 슬리핑버스에서 번쩍거리는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들을 본 순간, 우리가 어울리기엔 이곳은 너무나 다른 세계란 걸 인식한 것이. 유럽에 가서도 움츠러든 적 없었는데, 남들이 우스워마지 않는 동남아에 와서 위축이 드는 건, 내가 이곳에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고 숨어 들어온 느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입장이 안 된단 말을 들을까봐 호텔에 머무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길도 묻지 않으며 버티고 문 바에 올랐다. 아이와 나를 보자마자 여직원은 후레쉬를 약하게 켜고 인파를 헤치며 귀퉁이로 안내한다.
천상의 세계도 커다란 간극이 있다. 예약석은 널찍하고 쾌적하다. 하지만 야경을 보러 온 귀퉁이 자리는 송곳 하나 꽂을 곳이 없이 빽빽하다. 음악은 감미롭고, 방콕 시내의 야경은 숨막힐 듯 아름답지만 쥬스 한잔을 시켜놓고 계속 머물기엔 뒤통수가 뜨겁다. 결국 아이와 난 삼십분도 못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59층 천상에서 지상으로 단숨에 내려왔다. 그곳은 꿈이었나? 지상에 발 딛자마자 아직 음식을 다 팔지 못한 길거리 행상과 손님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기사의 눈빛과 마주친다.
현기증과 울렁증은 이번만이 아니다. 방비엥에서 벌룬투어의 값이 80달러란 말과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사륜투어가 세 시간에 한 사람당 40만낍(5만5천원)이란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라오스 청년이 하루 종일 동굴 투어를 해주고 우리에게 받은 돈은 2만낍. 삼천 원이 안 된다. 철사로 묶어놓은 대나무 사다리는 튼튼하지 않아 몇 번이나 헛디딜 뻔했지만 그는 능숙한 솜씨로 보수를 해가며 방비엥의 동굴과 비경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거미도 있었고, 은처럼 빛나는 벽과 동굴 속 깊은 우물도 있었다. 박물관에 있어야할 암모나이트라고 신기해하며 집어 본 것은 힘없이 부숴져 아이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그를 통해 농가를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소떼들이 일제히 풀을 뜯는 소리, 송아지가 어미 소의 젖을 빠는 소리도 바람 속에서 가만히 들려온다. 자전거를 타고 이십분만 가면 외국인들이 흥청대는 여행자거리가 있는데 이곳은 별세계처럼 평화롭고 고요해서 문득 눈물이 날 지경이다.
자본으로 무장해 사륜차투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애드 벌룬을 띄우는 것이 과연 라오스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방비엥에 와서 자전거를 주요 여행수단으로 삼고 마을 곳곳을 누비는 경험은 통제 가능한 기계를 통해 기계와 내가 소외되지 않아 여행을 농밀하게 만든다.
루앙프라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변을 질주하고 사원을 찾아들어가면서 도시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널 때는 길가에 묶어두고 길 건너 마을에서 피자를 먹었다. 피곤에 지치면 맛사지 샵을 찾아 문가에 두고 잠도 청했다.
코따오에서는 어떠했나? 기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20시간이나 걸려 찾아간 리조트인데, 근처 모든 방들은 모두 꽉차 있고 , 이곳의 하나 남은 방은 허술하기 짝이 없을 때, 우리를 달래준 것 역시 자전거다. 다리가 쓸리고 얼굴이 깨진 여행자 생각에 오토바이 탈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자전거마저 경사가 있는 곳에서는 절대 속도를 내지 않으며 코따오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다가 6성급 방갈로에 들어섰다. 하룻밤에 4800밧. 지금 머물고 있는 리조트의 8배 가격이다. 내 아이 또래 아이들은 걱정 없이 휴양을 즐기는데,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엄마를 두어 내 아이는 호텔 안을 넘겨볼 뿐이다. 자괴감이 문득 든다. 하지만, 자전거 패달을 밟으면서 어느덧 그러한 씁쓸함은 사라진다. 싯달타 부모는 성밖의 고통을 아들과 차단하려 했으나 그는 마침내 성 밖으로 나가 세상과 가까워졌듯, 나 역시 내 아이를 성 밖에서 생활하게 해야 한다. 삶은 59층 꼭대기나 4800밧 방갈로에 있기보다 내 두 발로 밟은 지상에 있으니 말이다. 오늘 따라 안도현의 시가 읊고 싶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나 자전거 되리
한평생 왼쪽과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거리지 않고
말랑말랑한 맨발로 땅을 만져 보겠어
구부러진 길은 반듯하게 펴고, 반듯한 길은
구부리기도 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모퉁이, 움푹 파인 구덩이,
모난 돌멩이들
내 두 바퀴에 담아 기억해야지 (안도현-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中)
7 Comments
웰리 2013.02.10 12:44  
아이에게 넒은 세계를 보여주고 계시는 군요... ^^
펀낙뺀바우 2013.02.10 18:07  
밑의 매듭이란 글과 이번 글... 느낌이 참  좋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
네버스탑맘 2013.02.10 18:39  
고맙습니다.계속,제맘속에 침전되었던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고있습니다.
쿨소 2013.02.13 11:29  
자건거 하나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하루 종일 뛰어 놀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시네요..
어느덧 늘어가는 흰머리와 빠져가는 머리카락 그리고 주름으로 가득해진 나이가 되 버렸네요..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지만 추억이란 참 대단한 힘을 지닌것 같습니다..
삶에 찌들어 점차 삭막해져만 가는 내 맘속에 웃음이라는것을 선물하거든요..

라오스는 현재 몇달 단위로 그림들이 바뀔정도로 급속도로 자본이 들어가고 있다네요..
아쉽습니다. 문만 열고 나오면 자연이 반겼고, 몇걸음만 내딛으면 현지인들의 아름다운 미소로 벅찼던 그곳이..
자본이라는 때가 타고 있다라는것이 아쉽습니다..

아드님이 참 부럽습니다..^^
해피줌마 2013.02.15 08:44  
오늘 드이어 태국으로 들어갑니다.  감동이 있는 글을 볼때마다 가슴이 뭉쿨하고 마음속이 정화된답니다.  좋은 느낌을 다시 보기를 원하며 님에 정보들이 여행 햇병아리에게는 다  감사한 마음이랍니다.
네버스탑맘 2013.02.15 09:31  
독서토론연구회다, 학교일이다 해서, 여행기가 멈춰있어요..얼른, 더 써보겠습니다.
돌이킬수없어요 2017.01.19 10:30  
네버스탑맘님  방비엥 다녀오신지 1년뒤에 저도 방비엥 갓엇는대.. 벌룬투어 70불~~
여행사 마다 다른것 같네요^^
전 아예 스카이 라운지 생각도 안햇어요..
불편한곳은.. 질색이라.. 아시아티크 관람차는.. 타려고 햇는대.. 깜박햇네요
재밋는건 조카나 저나.. 차멀미를 해서 루앙프라방은.. 패스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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