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la vida - 3rd day in Bangkok/part 2
여행내내 지도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나는 길눈이 너무 어두웠고
그래서 여행전부터 벼뤄왔던
"나이쏘이 소갈비국수와 DDM" 을 포기해야 했다 ㅎㅎ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중에 또 갈텐데 그때 찾아가면 되지 뭐~ - 라고 편하게 생각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왜그렇게 서럽고 아깝던지...^^
그런 내가,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곳을 가게된 셋째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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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에서 람부뜨리로 가는 길목에는
"걸리버"라는 펍 겸 클럽이 있다.
'한번쯤은 가봐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왠지 밤에 나가는건 위험하다는 판단에 숙소안의 수영장만 가게 되었던게 사실이고.
어제 수영장에서 벌어진 (내 생각딴에의 ) 대 사건 덕분에, 기분전환이 필요하기도 했다.
카오산에서 산 150밧짜리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숙소를 떠나 다시 카오산에 뛰어들었다.
사실 뭘 딱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ㅡ, 그냥 나오면 마음이 편할것 같았기 때문에..
어제 YELLOW를 틀어주던 노상칵테일 바의 삐끼를 따라 거리에 앉았지만
사실 술이 딱히 마시고 싶은건 아니었기 때문에 병맥주를 하나 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옆자리에서는 '여기서' 친해진듯한 한무리의 그룹이 막 형성되어
모두들 술에취해 "We are the best!! We are Friend!!" 를 외치며 기괴한 댄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ㅎㅎ
그리고 그 옆자리에서는
"I think i reallly love you" 라고 태국언니의 손을 꼭잡은채 작업을 거는 유로피안 아저씨도 있었고
거친 섹시댄스..-_- 를 선보이는 앳되어보이는 태국소녀와..
늘 그렇듯 남산만한 배낭을 짊어진 배낭여행객들이 거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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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을 찾는 사람중에는 분명히 나같은 사람도 있을거다.
이미죽어버린 첫사랑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도, 그렇다고 희미해질만큼 지워버리지도 못한채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몰라 그 다음 사랑을 하나하나 잃어버리는 것에 진절머리를 느끼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라거나
그 사랑을 지우거나
아픔을 잊거나
혹은 새로운 시간을 위한 재 충전을 위해서.
아니면 그냥,
그냥 여기가 좋아서 ..=)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여기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 그 하나만으로 모든사람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얼마나 무모하고 매력적인 연결고리일까
아마 세계지도를 가지고 여길 한바퀴 돌아, 그들의 나라를 짚어 달라 한다면
빈곳이 무색해질정도로 많은곳의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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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여기
한국에서 온 스물다섯살의 '나'라는 사람은 작은 섬과 같아서
왕래하는 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것 같은 존재감없는 어떤것이 되버린 느낌이었다.
맥주를 좀 마시다가, 왠지 기분이 더 우울해져버렸다.
채 반도 마시지 않은 맥주를 버려두고, 걸리버로 향했다.
약 11시 정도의 걸리버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하지만 입구 쪽에는 빈자리가 많았고, tv가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서 맥주를 다시 한병 시켜 앉았다.
내 길고 긴 머리때문인지, 혼자 펍에 와있는 모습이 불쌍해보였는지
정말 대놓고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을 감당하고 있으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남이 나에게 주는 관심이 이렇게 싫을때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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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지 못한 편지가 많이 있었다.
8개월을 혼자 마음 아파하고 걱정하며 기다렸지만..
혹여 그사람에게 방해될까봐
써놓은 편지 중에서도 제일 즐겁고 좋은일들이 가득 적힌 편지만
고르고 골라 보내서 읽는 그사람 마음이라도 행복하길 바랬으니까.
일주일에 한번 우체국에 가는 날은
매번 설레고 즐거웠다.
우체국 직원의 "정말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시는거에요?" 라는 반복질문에도
웃으면서 "네, 빨리 갈수있게 조심해서 보내주세요" 라고 몇번이고 대답할수있었다.
그사람의 주소를 적고,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그렇게 행복했던 시간들이..
그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걸 알게 된 순간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바보같이 느껴져버려서..
내가 그동안 보낸 편지들은 더이상 그사람 곁에 없겠지만..
내 마음이 언젠가는 전해지기를..
마음이 전해지는 post box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해를 풀어주는 post box" 라던가 ㅎㅎ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 마음을 전할수 있는 post box" 라던가
"프로포즈 전용 post box"라던가..
이런 사연을 담은 사람이 편지를 각자의 내용에 맞는 post box에 담으면
마법처럼 짠! 하고 받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 사람의
부끄럽지만 진실된 마음과 간절히 전달되길 바랬을 감정들이
정말 그대로 전해질수 있도록 말이다..ㅎㅎ
여행용가방 한켠에 자리를 잡고있던 '보내지못한 편지'들과 '보내지 못한 내 마음'들은
여행의 마지막날, 나를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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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크고도 멍청하고 부끄러운 편견을 무너뜨리는순간
난 감당할수없을정도의 부끄러움을 느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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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걸리버에서 술을 마시면서
축구경기도보고, 어느순간 가득찬 사람들의 행동하나하나를 보며
같은 공간, 다른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직원이 갑자기 가져다준 맥주를 보며 ,
난 시키지 않았다고 하니 내 뒤쪽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보낸거라고 했다.
고맙다고 간단히 눈인사를하고,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혼자있고 싶었고, 혼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맥주를 두병 비우며 혼자 음악에 맞춰 들썩거리기도하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과 간단하게 대화를 했다.
어느순간 걸리버는 수많은 사람들에 가득 차 있었고
혼자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런 내게 "그녀들" 이 인사를 해왔다.
-"안녕, 같이 앉아도 될까?"
-"물론, 난 혼자야 "
군살없는 몸매에 예쁘게 진한 태국 사람의 피부색
거짓없이 말한다면 처음 그녀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을떄 무척 의아했다
으레 보아왔던 것처럼 외국남자들과 함께 하고 싶어했을거라는 생각이었기때문에..
멍청하게도 나는 경계해버렸다..
내가 예상한 나이와는 다르게 두사람 모두 35세나 되었고..
열살배기 아기의 어머니라고했다.
두사람 모두 아기아빠(전남편) 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아 이혼했고
좋은남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맥주가 비어갈때마다 계속 채워지고
부끄러워 소심하게 춤을 추던 나를 의자에서 끌어내서 춤을추게 만들고
어느순간 나도 그녀들과 더불어 신고있던 쪼리가 무색하게 스탭을 밟고 있었다.ㅎㅎ
사실 술을 이렇게 많이 먹으러 간것도, 그렇다고 춤을 추러간것도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처음 혼자 앉아있을때와 다르게 너무 즐거워 미칠지경이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것처럼 출렁거리는 술때문일까
아니면.."소통에 대한 반가움" 이었을까.
"느어" 와 "다" 라는 두사람의 이름을 외우는것도 생소했지만,
우리의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은말을 전달할수 있다는 사실이 더 즐거웠다.
디앤디에 머물면서 이야기했던 바람둥이 영국인 아저씨도, 아르헨티나 총각과 그의 할머니도..
벨기에산 바보들도, 나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며 추파를 던진 캐나다 총각도
모두 어딘가 허전한 대화 뿐이었는데..
나는 그 모든것을 그녀들로 인해 위로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새벽 1시를 향해 달려갔고,
"Da" 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여긴 곧 끝나는데 우리랑 같이가서 더 놀지 않을래?"
-"아, 정말? 근데 태국의 술집이나 클럽은 다 2시까지 하는거 아냐?"
"그냥 우릴 따라오면되, 너랑 더 이야기하고 놀고싶어, 네가 우릴 믿는다면"
-"난 너흴 믿어, 그런데 여기서 멀리 가야해?"
"아니 택시만 타면되, 금방이야"
그렇게 나는 그녀들을 따라
소위 말하는 -after Club- 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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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모두들 정말 오랜만이네요.
마지막 여행기 이후로 개인적으로 큰 변화가 생겨서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글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셨는지 , 새로운 태국 여행기들을 읽어보며
무척 즐거워하고 있어요 =)
다시 태국에 돌아가고 싶어지는 날이네요.
모쪼록 모두들 좋은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