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011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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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011 라운지...

고구마 4 1501
공항내의 라운지 이용을 하기 전에는, 여행시작의 종을 울리는 먹거리는 바로 기내식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더부룩한 배를 안고 그다지 맛있지 않은 식사를 하는 게 뭐 대수이겠냐 마는 그래도 기내식카트가 차츰차츰 내 쪽으로 가까워지고 스튜어디스가 모닝빵을 덜어줄 때면, 우리는 ‘파블로의 개’ 마냥 즉각 반응하며 냉큼 받아 먹어치운다.
하지만 이젠 여행시작의 첫 먹거리는 공항 라운지... 인천공항내의 여러 라운지들이 각종 음료수와 다과를 준비해 놓고 우리의 탐욕스런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일찌감치 출국수속을 하고는 011 라운지로 달려가 한 시간 정도를 과자와 음료수들 사이에서 노닥거리다 보니, 금세 탑승 시간이 다 되어갔고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게이트 쪽으로 바삐 걸어간다.

이번 여행이 다른 때 보다 좋은 점은... 드디어 새로운 곳을 가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태국 최남단의 섬 ‘꼬 리뻬’..... 이렇게 다니고도  시간이 며칠 남는다면 그나마 좀 덜 가본 곳으로 발길을 옮기고자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예전보다 더 흥분되고 흥미롭다.

탑승 후 2시간쯤 흘렀을 때... 요왕이 굳은 얼굴로 내게 말한다.

“아까 내가 너한테 준 여행자 수표랑 현금 어디 있어?”
“어...? 나한테 줬었어? 가방에 있겠지...”
급히 가방을 뒤적거려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지자 뒤적거리던 손길을 멈추고 가방을 통째로 뒤집어엎었지만 여행자 수표는 커녕 그 비슷한 쪼가리도 없다.
“아까 환전하고 분명히 너한테 건네 줬잖아... 난 분명히 준거야. 너도 기억하지?”
기억이 나긴 난다. 여행자 수표와 달러 현찰을 보며 만지작거렸던 것 까지 기억나는데 그다음이 전혀 연결이 안 된다.
침착하게 기억을 되새겨 보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내 머리는 위급상황이 되면 빠르게 회전하는 게 아니라 그저 동냥거지 깡통 마냥 텅텅~ 비어버리고 새대가리 가 되어버리니 이를 어쩌나...
어디에서 마지막으로 봤더라... 어디에서.... 아~ 생각이 안 나네
이미 요왕도 자기 가방을 뒤져 봤지만 나오는 건 없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 달러 현찰은 포기하더라도 여행자 수표 800달러는 방콕 가서 분실신고 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찰나... 옆에서 절망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아... 큰일이다. 여행자 수표는 미처 사인도 못해놨는데...”
요왕도 애꿎은 자기 가방만 뒤지길 벌써 몇 번.... 정말 잃어버렸구나...
벌써 눈에는 눈물이 반쯤 고여 있고, 이걸 어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하다. 여행 발걸음도 떼기 전에 여행경비를 통째로 잃어버리다니.. 그것도 내가.....
몇 번을 뒤적거려도 아무 소용없는 가방 귀퉁이만 만지작거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
“헤헤헤...고구마야...찾았다. 여기”
한 손에 수표 봉투를 들고 배시시 웃고 있는 요왕이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움츠린다.
우어어어~~~ 깊은 걱정이 화로 폭발되고 눈에선 눈물이 질질 흘러내린다. 흑흑~~
자기 가방에 고이 모셔져 있었으면서 그 책임을 기억력 나쁜 나한테 돌리려 했다니... 게다가 나는 나대로 멍청히 ‘그런가부다’ 하며 지레 벌벌 떨었다니....
으음...요왕의 눈에 뭔가 쒸이기라도 했었나 부다...
아아... 짧은 시간 광분했지만 금세 진정이 되자, 우리 손에 여행 경비가 들려져있다는 사실에 안도와 행복의 한숨의 내쉬었다. 바보 같은 투맨쇼를 벌이던 우리는 다시금 정상 모드로 돌아왔다.

어쨌든 이번일로 한 가지 확실히 배운 것!!
문제가 생겼을 때는 끝까지 한 가지 자세로 일관하자.
저 너머 무언가를 응시하며 느린 말투로 “지는 암것도 몰르는구먼유..” 하는 모르쇠 작전으로 밀고 나가야지...
이것이야말로 책임과 추궁에서 자유로워지는 제일 빠른 길이다.
4 Comments
돌체비타 2004.05.08 21:56  
  7년뒤에 가리라 계획하는 세계일주지만..그렇게 맘먹은담에 고구마님의 책을 읽으면서 아침에 출근을 했습니다.다시 봐도 어찌나 잼나던지..하지만..책 제목을 보고 울 네모..한마디..의미심장하게 던지더군요..넌 어찌 맨날 도망갈궁리만..하누.."내일을 어디갈까.."..참나..가긴 어디가냐..회사가야지..ㅎㅎㅎ..
타이맨 2004.05.08 22:04  
  그러길래 가끔 쥐어박으셔야 합니다. 요왕님의 머리는 그럴때 쥐어박힐 용도로
평상시에도 철저히 길들여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는건..... 고구마님의 잘못도 있구만요...
아무튼 평소 자주자주 머리통뿐만 아니라 옆구리, 등판, 엉덩이 등등
쥐어박으세요... 손으로 안되면 비짜루, 먼지털이 등등 주위에 많이
널려져 있는 생활용품을 사용하세요....
착하디착한 고구마님 혼자서 당황하고 있을 상황을 생각하면....
...크흐흐 웃음이 나오는건 또 어떤 일이죠?
방콕사랑 2004.05.10 19:42  
  간큰 요왕님~
다람쥐 2004.07.07 04:22  
  고구마님은 그래도 글쓰실때는
머리가 팍팍~~
잘 돌아가나 봐요.

언제 읽어봐도 잼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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