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겪었던 태국 사람들에 대한 기억....
또 이야기 하겠습니다.
많은 유산들... 아름 다운 사찰... 높고 특색 가득한 건물들... 투명한 바닷가...
우거진 수풀들... 이런 것들 속에 빠져서는 의미가 없어지는 존재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살면서 가장 많은 감흥을 준 존재가 뭔가 생각해 보면 바로
태국 사람들 입니다. 우리가 접하는게 바로 그들 이란 생각입니다.
관광객이기 때문에 느낄 수 없는...
제 입장에서 보면 거의 매일 보았던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 사람들의 진면목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늘 밝게 웃기만 했던 모습 속에 그 나름대로의 삶이 어떻했는지 아셨으면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공항 가는길에 마중 나오셨던 파출부(매반) 아주머니...
최근 까지의 호칭은 '엄마 (매)' 였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3년 가까이 제 집안일을 도맏아 묵묵히 일하시던 나이 50의
할머니(태국 사람들은 더 늙어 보입니다.)셨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건 늦게 일어나건 그 시간이면 꼭 찾아오십니다.
집에 손님이 있다던가 하면 문 고리를 잠궈 둡니다. 그럼 돌아가십니다.
혼자 있는데 늦게 까지 잠들고 싶으면 방문만 잠가 두면 나머지 일 조용히
하고 돌아가십니다. 오래 같이 생활하다보니, 서로 무언의 약속이 생겼습
니다. 한달 수고비는 늘 텔리비젼 위에 올려 놓으면 가져가셨고, 집안에
필요한 생필품 떨어지면 식탁위에 놓아둔 잔돈 추슬려서 사다 놓으셨고
영수증 분명히 챙겨서 보라고 놓아두시고, 집안일 생겨서 지방에 가시면
어디서 적어 오셨는지 영어로 매모 남겨 두고 갔다 오셨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던 태국 사람은 바로 파출부 였습니다.
집안에 아무리 진귀한 것을 두고 나와도 아무 걱정 없는... 일 때문에 집을
비우고 나와도 그 분이 있어서 안심 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정이 들어 일이 있어 나갈때면 다림질 하실때 더우니까 애어콘 꼭
틀고 하시라고,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 언제고 꺼내 드셔도 된다고,
집에 필요한 것 있으시면 가져다 쓰시라고... 알게 모르게 서로를 챙기는
관계로 발전 되더군요. 양아들에 양어머니 처럼요.
얼마전 조류독감에 테러에 지진등으로 인해서 거의 일이 반으로 줄어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집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거기에 병행해서
수입이 줄어들고 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곁에서 지켜보던 분이셨습니다.
하루는 청소를 다 하고 쇼파에 앉아 있는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 미스터... 난 미스터가 돈 많이 벌어서 부자로 한국 갔으면 좋겠어요. 집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맘이 별로 안 좋네요. 지금 혹시
돈 걱정하고 있는 것 아니지요? 돈 없으면 내 수고료 천천히 줘도 돼요..'
하며 눈물이 그렁그렁 하셔서 나가시는 걸 따라 나갔습니다.
' 괜찮아요... 세상이 어려운 걸 어떻게 하겠어요. 울지 마세요...'
결국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행 티켓팅을 하고 남은 짐 정리를 하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쓸만한 살림살이들 수고하신 그 분에게 모두 주고 가고
싶다는... 들어오기 마지막 날 택시기사 하시는 남편분과 함께 오셔서 짐
다 실고 가시면서 매모지를 내 미셨습니다.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
절대로 잊어 버리지 말라고, 다시 태국에 오면 꼭 연락을 하라고 몇번을 당부
하신 끝에 저녁에 공항 갈 시간에 남편과 오겠다고, 마지막으로 배웅해 주고
싶다고 하셔서 결국 마다하지 못하고 공항까지 같이 갔습니다.
서로를 울게 만드는... 그래서, 둘이 펑펑 울다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외국 사람들만 보면 어떻게든 돈 만들려는 부류의 태국인 과는 사뭇 다르지
않습니까? 이게 보통의 태국 사람들 입니다.
순박하고 정들면 어떻게든 마음 써서 도와 주려합니다.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마치 '탐분'을 하듯 한없이 착하게만 살려는게 그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태국 땅을 밟으면 선물이라도 준비해서 꼭 전화
하라고 했던 약속 지키고 싶습니다.
접시가 터져라 '카우팟 무'를 매일 주시던 식당주인.
더 거슬러 올라가 태국 땅에 가이드 하겠자고 처음 들어섰을 때 정말 막막
하게 살았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동네 지리 조차도 잘 모르고, 특히 무얼
먹어야 할지 모를때 허름한 아파트 (라차다) 한 귀퉁이에 중국계 아주머니가
하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아는 것도 없고, 주머니 헐렁한 그 때에 오직 먹을
만 하다고 느낀 건 '카우팟 무' 였습니다. 20밧이면 한끼 때울 수 있는...
말이 안 통하니 겨우 '카우팟 무' 달라고 주문하고 앉아서 서로 얼굴 마주치
면 빙긋히 웃기만 하는... 어느 날 부턴가 그 밥의 양이 두배로 많아졌습니다.
곱배기를 주문하지도 않았었는데, 돼지고기도 많이 넣어서 접시가 터져 나
갈 듯이 많이도 주더군요. 배고픈 시절 살 한 톨까지 싹싹 비워내면 그 아주
머니도 역시 기분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보다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
까지 거의 매일 들렸던 그곳을 이사 가고 나서 생각나 찾아 갔습니다.
잊어 버리지도 않고 어찌나 반가워 하시던지... 말도 늘고 대화도 할 수 있을
무렵 그때 얼마나 불쌍해 보이던지. 아들 같아서 밥 많이 줬다고 웃으시길래
정말 고맙다고... 그래서, 그 밥 맛을 못 잊어서 들려보았다며 '카우팟 무' 한
접시 시켜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잘 살라고 굳이 내미는 밥값을 사양
하시며 환하게 웃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 합니다.
3년반 전 사스로 힘들때 내밀던 17,000 밧
3년전 갑자기 터진 사스로 태국에 들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기가 있었
습니다. 거의 몇개월을 손가락 빨며 지내다 보니, 주머니에 돈 떨어지고,
먹을 것 없고, 집세 밀려서 고생 할 즈음 어느 누구도 벗어 날 수 없었던 동료
들에겐 서로 돈 이야기 할 수도 없고... 벼르고 벼르다 평소 친구로 지내던
전통 안마장 매니져 에게 어렵사리 전화를 했습니다.
긴 이야기 하지도 않았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밀린 집세 까지 15,000 밧만
빌려 달라고 했는데 17,000밧을 내밀 더군요. 태국 사람 한테 그 돈이면
거의 한달 수입에 가까운 돈입니다. 게다가 하는 말이 집세 내고 나면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냐고 2,000밧을 더 얹어서 가지고 왔답니다.
나중에 상황 좋아지면 천천히 갑으라고 하는데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 지더
군요. 결국, 한국에서 송금 받아 돌려줬지만, 그 고마움을 지금 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료로 재공해 줬던 아파트
살고 있던 아파트 메니져와 친해졌습니다.
집안에 무슨일이 생기고 고장난 부분이 생기면 바로 달려와 해결해 주는
그 매니져에 믿음이 갔었고, 그래서 방 소개 많이 해 줬던 돈독한 사이가 되었
을 무렵. 한국에서 집안 가족들이 찾아왔습니다.
친 부모님이 아닌 관계로 호텔을 얻어 드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아파트
옆에 붙어있는 호텔로 가는데 매니져를 만났습니다. 어디 가냐고... 한국에서
손님들 찾아와 호텔에 방 구하러 간다고... 그랬더니 방을 하나 주겠다는 겁
니다. 계약 끝나고 한동안 비워져 있을 아파트를 빌려 주겠다는 겁니다.
호텔 비싼데 그렇게 하면 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흔쾌히 방을 내줘
정말 돈 굳었던 기억. 고맙다고 손님들 가고나서 불러다 방값을 주려 했지만
급구 거절하는 매니져.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나 때문에 관리해야 될 방든 많아져서 수당이 불어났다고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는데 때 마침 그런일이 생겨서 갑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서로 친해지다 보면 위와 같은 일들 격을 수 있습니다만,
전 분명 저들과는 다른 외국인 이었고, 그것이 언제 태국을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면 아마 돈독한 관계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역지사지로 생각할 줄 아는 고마운 마음들...
조건도 없고 기꺼이 도와 주는 것에 즐거워 하는...
자신의 일로 보면 부담이 갈 수 있는 일이지만, 뒷일은 자신이 책임 지겠다는
봉사정신 같은 것들이 사는 동안 늘 있어왔습니다.
불행히도 같은 한국 사람들 끼리는 아무리 친해도 선을 긋는...
것으로는 서로 안부 묻고 걱정해 주지만, 정작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외국생활에 대한 위안을 그들이 해 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한도 끝도 없이 못 된 부류의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굳이 그걸 프로테이지로 계산 한다면 80:20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번 보면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 관광지의 사람들과는 철저하게 구분이
되는 보통의 태국 사람들이 태국의 아름다움 빛에 더함이 있을 것이라는
제 생각을 여러분들이 알까 모르겠습니다.
들어서면서 부터 쓰는 색안경...
본인이 확인하지도 않은 정보들로 부터 자신을 철저히 방어 하려는 동작들...
못 사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며 굴림하려는 자만심...
여차 저차 저들과 착오가 생기면 목소리 부터 높여 이기고야 말려는 태도...
다 버려보세요... 그리고, 백지 상태에서 그들과 친해지려 해 보십시요.
아마 알량히 돈 몇밧 사기치려다가도 (그런 부류마져도) 그 감흥으로 그들
본연의 모습을 이쁘게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많은 유산들... 아름 다운 사찰... 높고 특색 가득한 건물들... 투명한 바닷가...
우거진 수풀들... 이런 것들 속에 빠져서는 의미가 없어지는 존재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살면서 가장 많은 감흥을 준 존재가 뭔가 생각해 보면 바로
태국 사람들 입니다. 우리가 접하는게 바로 그들 이란 생각입니다.
관광객이기 때문에 느낄 수 없는...
제 입장에서 보면 거의 매일 보았던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 사람들의 진면목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늘 밝게 웃기만 했던 모습 속에 그 나름대로의 삶이 어떻했는지 아셨으면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공항 가는길에 마중 나오셨던 파출부(매반) 아주머니...
최근 까지의 호칭은 '엄마 (매)' 였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3년 가까이 제 집안일을 도맏아 묵묵히 일하시던 나이 50의
할머니(태국 사람들은 더 늙어 보입니다.)셨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건 늦게 일어나건 그 시간이면 꼭 찾아오십니다.
집에 손님이 있다던가 하면 문 고리를 잠궈 둡니다. 그럼 돌아가십니다.
혼자 있는데 늦게 까지 잠들고 싶으면 방문만 잠가 두면 나머지 일 조용히
하고 돌아가십니다. 오래 같이 생활하다보니, 서로 무언의 약속이 생겼습
니다. 한달 수고비는 늘 텔리비젼 위에 올려 놓으면 가져가셨고, 집안에
필요한 생필품 떨어지면 식탁위에 놓아둔 잔돈 추슬려서 사다 놓으셨고
영수증 분명히 챙겨서 보라고 놓아두시고, 집안일 생겨서 지방에 가시면
어디서 적어 오셨는지 영어로 매모 남겨 두고 갔다 오셨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던 태국 사람은 바로 파출부 였습니다.
집안에 아무리 진귀한 것을 두고 나와도 아무 걱정 없는... 일 때문에 집을
비우고 나와도 그 분이 있어서 안심 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정이 들어 일이 있어 나갈때면 다림질 하실때 더우니까 애어콘 꼭
틀고 하시라고,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 언제고 꺼내 드셔도 된다고,
집에 필요한 것 있으시면 가져다 쓰시라고... 알게 모르게 서로를 챙기는
관계로 발전 되더군요. 양아들에 양어머니 처럼요.
얼마전 조류독감에 테러에 지진등으로 인해서 거의 일이 반으로 줄어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집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거기에 병행해서
수입이 줄어들고 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곁에서 지켜보던 분이셨습니다.
하루는 청소를 다 하고 쇼파에 앉아 있는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 미스터... 난 미스터가 돈 많이 벌어서 부자로 한국 갔으면 좋겠어요. 집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맘이 별로 안 좋네요. 지금 혹시
돈 걱정하고 있는 것 아니지요? 돈 없으면 내 수고료 천천히 줘도 돼요..'
하며 눈물이 그렁그렁 하셔서 나가시는 걸 따라 나갔습니다.
' 괜찮아요... 세상이 어려운 걸 어떻게 하겠어요. 울지 마세요...'
결국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행 티켓팅을 하고 남은 짐 정리를 하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쓸만한 살림살이들 수고하신 그 분에게 모두 주고 가고
싶다는... 들어오기 마지막 날 택시기사 하시는 남편분과 함께 오셔서 짐
다 실고 가시면서 매모지를 내 미셨습니다.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
절대로 잊어 버리지 말라고, 다시 태국에 오면 꼭 연락을 하라고 몇번을 당부
하신 끝에 저녁에 공항 갈 시간에 남편과 오겠다고, 마지막으로 배웅해 주고
싶다고 하셔서 결국 마다하지 못하고 공항까지 같이 갔습니다.
서로를 울게 만드는... 그래서, 둘이 펑펑 울다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외국 사람들만 보면 어떻게든 돈 만들려는 부류의 태국인 과는 사뭇 다르지
않습니까? 이게 보통의 태국 사람들 입니다.
순박하고 정들면 어떻게든 마음 써서 도와 주려합니다.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마치 '탐분'을 하듯 한없이 착하게만 살려는게 그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태국 땅을 밟으면 선물이라도 준비해서 꼭 전화
하라고 했던 약속 지키고 싶습니다.
접시가 터져라 '카우팟 무'를 매일 주시던 식당주인.
더 거슬러 올라가 태국 땅에 가이드 하겠자고 처음 들어섰을 때 정말 막막
하게 살았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동네 지리 조차도 잘 모르고, 특히 무얼
먹어야 할지 모를때 허름한 아파트 (라차다) 한 귀퉁이에 중국계 아주머니가
하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아는 것도 없고, 주머니 헐렁한 그 때에 오직 먹을
만 하다고 느낀 건 '카우팟 무' 였습니다. 20밧이면 한끼 때울 수 있는...
말이 안 통하니 겨우 '카우팟 무' 달라고 주문하고 앉아서 서로 얼굴 마주치
면 빙긋히 웃기만 하는... 어느 날 부턴가 그 밥의 양이 두배로 많아졌습니다.
곱배기를 주문하지도 않았었는데, 돼지고기도 많이 넣어서 접시가 터져 나
갈 듯이 많이도 주더군요. 배고픈 시절 살 한 톨까지 싹싹 비워내면 그 아주
머니도 역시 기분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보다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
까지 거의 매일 들렸던 그곳을 이사 가고 나서 생각나 찾아 갔습니다.
잊어 버리지도 않고 어찌나 반가워 하시던지... 말도 늘고 대화도 할 수 있을
무렵 그때 얼마나 불쌍해 보이던지. 아들 같아서 밥 많이 줬다고 웃으시길래
정말 고맙다고... 그래서, 그 밥 맛을 못 잊어서 들려보았다며 '카우팟 무' 한
접시 시켜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잘 살라고 굳이 내미는 밥값을 사양
하시며 환하게 웃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 합니다.
3년반 전 사스로 힘들때 내밀던 17,000 밧
3년전 갑자기 터진 사스로 태국에 들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기가 있었
습니다. 거의 몇개월을 손가락 빨며 지내다 보니, 주머니에 돈 떨어지고,
먹을 것 없고, 집세 밀려서 고생 할 즈음 어느 누구도 벗어 날 수 없었던 동료
들에겐 서로 돈 이야기 할 수도 없고... 벼르고 벼르다 평소 친구로 지내던
전통 안마장 매니져 에게 어렵사리 전화를 했습니다.
긴 이야기 하지도 않았고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밀린 집세 까지 15,000 밧만
빌려 달라고 했는데 17,000밧을 내밀 더군요. 태국 사람 한테 그 돈이면
거의 한달 수입에 가까운 돈입니다. 게다가 하는 말이 집세 내고 나면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냐고 2,000밧을 더 얹어서 가지고 왔답니다.
나중에 상황 좋아지면 천천히 갑으라고 하는데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 지더
군요. 결국, 한국에서 송금 받아 돌려줬지만, 그 고마움을 지금 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료로 재공해 줬던 아파트
살고 있던 아파트 메니져와 친해졌습니다.
집안에 무슨일이 생기고 고장난 부분이 생기면 바로 달려와 해결해 주는
그 매니져에 믿음이 갔었고, 그래서 방 소개 많이 해 줬던 돈독한 사이가 되었
을 무렵. 한국에서 집안 가족들이 찾아왔습니다.
친 부모님이 아닌 관계로 호텔을 얻어 드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아파트
옆에 붙어있는 호텔로 가는데 매니져를 만났습니다. 어디 가냐고... 한국에서
손님들 찾아와 호텔에 방 구하러 간다고... 그랬더니 방을 하나 주겠다는 겁
니다. 계약 끝나고 한동안 비워져 있을 아파트를 빌려 주겠다는 겁니다.
호텔 비싼데 그렇게 하면 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흔쾌히 방을 내줘
정말 돈 굳었던 기억. 고맙다고 손님들 가고나서 불러다 방값을 주려 했지만
급구 거절하는 매니져.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나 때문에 관리해야 될 방든 많아져서 수당이 불어났다고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는데 때 마침 그런일이 생겨서 갑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서로 친해지다 보면 위와 같은 일들 격을 수 있습니다만,
전 분명 저들과는 다른 외국인 이었고, 그것이 언제 태국을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면 아마 돈독한 관계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역지사지로 생각할 줄 아는 고마운 마음들...
조건도 없고 기꺼이 도와 주는 것에 즐거워 하는...
자신의 일로 보면 부담이 갈 수 있는 일이지만, 뒷일은 자신이 책임 지겠다는
봉사정신 같은 것들이 사는 동안 늘 있어왔습니다.
불행히도 같은 한국 사람들 끼리는 아무리 친해도 선을 긋는...
것으로는 서로 안부 묻고 걱정해 주지만, 정작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외국생활에 대한 위안을 그들이 해 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한도 끝도 없이 못 된 부류의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굳이 그걸 프로테이지로 계산 한다면 80:20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번 보면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 관광지의 사람들과는 철저하게 구분이
되는 보통의 태국 사람들이 태국의 아름다움 빛에 더함이 있을 것이라는
제 생각을 여러분들이 알까 모르겠습니다.
들어서면서 부터 쓰는 색안경...
본인이 확인하지도 않은 정보들로 부터 자신을 철저히 방어 하려는 동작들...
못 사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며 굴림하려는 자만심...
여차 저차 저들과 착오가 생기면 목소리 부터 높여 이기고야 말려는 태도...
다 버려보세요... 그리고, 백지 상태에서 그들과 친해지려 해 보십시요.
아마 알량히 돈 몇밧 사기치려다가도 (그런 부류마져도) 그 감흥으로 그들
본연의 모습을 이쁘게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