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클링] 2월, 시밀란 리브어보드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처음 푸켓 여행의 발단. 그저 옥색 바다를 근심없이 보고 싶었다. 부천 역사에 걸려있는 보라카이 해변 사진을 볼때마다, 나도 그 사진 안에 들어가보고 싶었다. 바다의 촉감, 냄새, 소리를 꿈꿨다. 어디 휴양지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따뜻한 날씨나 즐기다 오자고 오래전부터 친구와 약속을 했다. 뭔가 보고 배워야 한다는 강박에 궂은 날씨에도 마음을 꽁꽁 다잡고 하루종일 걸었던 2년 전 유럽 겨울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실패였다.
그러다 푸켓의 피피섬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림같은 곳이었다. 그 피피섬이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푸켓에 가고 싶었다. 옥색 바다에 대한 소원을 피피섬 대신 풀어준 곳이 바로 시밀란 섬이다. 두짓 라구나에서 태국어를 가르쳐준 현지인은 시밀란을 BEST OF PHUKET이라고 했다. 그곳의 모래를 powder로 표현하며, 무척 아름다워서 꼭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
90분의 육로이동, 90분의 스피드 보트 이동으로 시밀란 섬에 도착했다. 시밀란 섬 근처에서 큰 배로 갈아탔다. 그 배에서 1박 2일 동안 지냈다. 시밀란은 바다 속이 무척 아름다워서 다이버들이 많다. 아니, 혜선이와 나를 빼고는 모두 다이버들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소외감을 느끼고 스노클러만 있는 배에 탈걸, 아쉬워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더 잘 된 일이었다. 다이버들은 굉장히 멋졌으니까.
처음 스노클링을 했을 때는 괴로웠다. 장비들이 익숙치 않아 계속 물을 먹고, 헤엄칠 줄도 몰라서 참 힘들었다. 스노클링을 가르쳐준 태국인 아민에게 깊은 바다 말고 해변으로 가면 안 되냐고 묻자, 그는 조그만 보트를 이용해서 우리를 해변에 데려가 주었다. 아민은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꽤 오래 걸렸다 ^^;) 계속 손을 잡아주었다.
해변의 맑은 물과 고운 모래에 감탄하며 얕은 물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동안, 아민은 산호들을 낚시줄로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주었다. 여행 내내 만나는 태국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친절했다. 대가를 지불한 서비스 뿐 아니라, 그냥 길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도. 한국에서라면 대가를 지불해야할 것 같은 친절에 초반에는 당황하기도 했다. (이제는 친절과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이고 나눌 줄 안다. ^^)
다이버들은 멋지다. 혼자 와서 배의 사람들과 다이빙을 즐기고 밤에는 노을을 보거나 별을 보며 쉰다. 다이빙 얘기로 쉽게 친구가 된다.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다.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부지런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발전 성장을 하기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그렇게 달려갈 때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스웨덴 여자는 1년에 7개월만 일하고 5개월은 그 돈으로 다이빙을 다닌다고 했다. 나라면 금전적으로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해도, 자격증을 따거나, 다른 일자리로 돈을 벌었을 거다.
무리를 지어야 안심하는 단체문화도 없었다. 내 또래의 20대 초반 여자들이 혼자 와서 다이빙을 즐겼다. 한 배에 타고 다이빙을 함께 하지만, 여전히 개인으로 존재했다. 특히 50대로 보이는 독일인 아저씨 한스는 종종 뭔가를 적거나 배 옥상에서 혼자 별을 보며 잠들거나 했다. 그러다가도 멋진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한스 아저씨를 보면 인생은 20대가 끝이 아니며, 아름다운 50대 시절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흡족한 기분이 되곤 했다. 그런 다양한 사람들로 대화 테이블 겸 식탁은 늘 몇 개 국어가 오갔다.
나는 스노클링을 꽤 자주 했다. 물과 친해지고 싶었다. 라이프 자켓과 장비를 벗고 맨몸으로 수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냥 편안히 고개를 내밀고 물에 떠있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해서 따라해보았지만, 번번히 가라앉았다. 가라앉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그들에겐 떠있는 게 숨쉬는 것처럼 훈련없이 저절로 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속에는 고기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시야가 무척 좋았다. 커다란 물고기들은 가끔 두렵기도 했다. 한 시야에 다섯 무리의 고기떼를 보기도 했다. 파란 물고기떼, 노란 물고기떼, 하얗고 긴 물고기떼, 하얗고 통통한 물고기떼, 노란 지느러미를 가진 작은 물고기떼. 그리고 거북이도 두번 만났다. 거북이는 느린데다 사람을 피하지 않아, 가까이에서 함께 헤엄칠 수 있었다.
저녁이 되자, 다이버들은 후레쉬를 들고 나이트 다이빙을 했다. 나는 음악을 듣거나 물고기 사전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낚시를 해서 오징어를 잡았다. 오징어의 눈자위가 형광하늘색이었다. (바다 속의 물고기들은 다채로운 형광 하늘색을 띄고 있다. 왜 그렇게 진화한 걸까.) 아저씨에게 농담으로 '그거 저녁감이냐?' 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조금 후에 진짜 먹었다. -_-;; 밤에는 사람들과 선덱에 누워 함께 별을 봤다. 서로 아는 별이름과 별자리를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시밀란 섬은 사람이 별로 없다. 9개의 크고작은 섬들이 군도를 이루고 있는데, 4번섬과 8번섬만 기착지점이고, 나머지 섬은 근처에 잠시 배를 띄우는 정도로만 이용한다. 6번섬에서는 혜선이와 나만 내렸다. 1시간 동안 섬에 우리 둘밖에 없었다. 다시 데리러 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는 산호에 찔리면서 스노클링을 했다.
둘째날에는 만타레이를 보았다. 만타레이는 2m에서 5m 정도되는 커다란 가오리이다. 잘찍은 수중사진을 보면 거대한 장막같다. 그 장막이 내 위의 바다를 덮으며 지나간다면 무척 경이로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리는 배위에서 표면에 잠시 떠오른 만타레이를 보았다. 언젠가 바다 속에서 함께 천천히 유영할 날이 오겠지.
현실이었다고 하기엔 시밀란은 너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물빛. 그런게 실재할까. 다녀온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뜻한 바닷물, 하루종일 부는 부드러운 미풍, 한낮에도 그리 뜨겁지 않은 태양. 시원한 그늘. 쏟아지던 별.
아름다운 풍경, 여유로운 삶, 착한 사람들, 글로 말로 들어와서 그게 무언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경험해보니,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거라는 걸 알았다. 건기의 좋은 기후와 사람운도 한몫 했겠지만, 나는 그렇게 좋은 날들이 처음이어서, 푸켓이 무척 특별하게 느껴진다.
푸켓, 조금만 기다려.
(이 글 쓰고 진짜 한달 후에 푸켓에 다시 가서 다이버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