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이야기(3)] 팟타야 해변에서 팟타야를 맞아 본적이 있나요?
서울시청은 서울시에 있고 방콕 시청은 방콕시에 있습니다. 그럼 팟타야 시청은 어디에 있을까요?
팟타야 시청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촌부리도 방라뭉군 나끄아면 6리 171번지
주소에 자기 이름에 들어가지 않는 도시가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일이 생겼을까요?
1960년대 초까지 팟타야는 조용한 어촌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고깃배 몇 척이 바다에 떠 있고, 마을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던 평범한 곳이었죠.
'팟타야พัทยา'는 우기 때 부는 남서풍의 이름이에요. 비오고 바람이 부는 날 팟타야 해변에서 앉아 있으면 '팟타야'라는 이름의 바람을 맞는 거지요.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은 수많은 병사들이 전장의 피로를 풀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태국은 미국의 반공 동맹국으로서 여러 지역에 미 공군 기지를 허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우따빠오(U-Tapao) 공군기지였습니다. 이곳은 폭격기와 수송기가 오가던 중요한 전략 거점이었고, 그 근처에 조용한 해변 마을 팟타야가 자리하고 있었죠.
1961년 여름, 처음으로 휴가를 받은 미군 병사들이 버스 몇 대를 타고 이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모래사장에서 태국식 해산물을 맛보고, 맑은 바다에서 잠시 전쟁을 잊었습니다. 그때부터 팟타야는 더 이상 고요한 어촌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팟타야에는 더 많은 미군이 찾아왔고, 제대 군인들은 아예 몇달씩 눌러 앉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한 식당과 술집, 숙소가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고 밤이면 마을은 웃음과 음악으로 활기를 띠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나마 평화를 맛보던 공간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 낙원은 전쟁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그림자이기도 했습니다. 미군이 떠난 후 남겨진 유흥가는 새로운 생계를 찾아야 했고, 그 자리를 외국인 관광객들이 채워갔습니다. 처음에는 배낭여행자와 은퇴자 들이 왔고 팟타야의 경제는 관광 산업으로 중심이 옮겨가며, 도시는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한국, 러시아, 중국, 인도인이 밀려 들며 지금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휴양도시로 변모하게 되었죠.
태국 정부는 기존의 행정구역과 영 맞지 않는 상황으로 도시화 되자, 팟타야 해변과 북쪽의 나끄아, 남쪽의 쩜티얀 일부, 그리고 꼬란섬을 묶어 '팟타야시(므앙 팟타야 เมืองพัทยา)'라는 자치도시를 새로 만듭니다.
나끄아(나끄르아)นาเกลือ에서 나=논, 끄르아=소금, 소금논, 즉 '염전'이란 뜻입니다. 예전에 염전이 있던 지역이죠.
쩜티안จอมเทียน의 쩜=뾰족한 것의 끝부분, 티안=초의 의미로 촛불을 뜻합니다. 이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피꾼깨우 다라 싸왕'이라는 공주가 살았는데 촛불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쩜티안(촛불)이라고 불리었다고 하네요. 그 공주를 기리기 위해서 이 해변에 쩜티안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꼬란เกาะล้าน에서 꼬(꺼)=섬이란 뜻이고 란은 백만이란 뜻도 있지만 대머리란 뜻도 있습니다. 예전에 꼬란에는 나무가 별로 없고 풀밭만 있어 대머리처럼 보인다 하여 '대머리섬'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1964년 팟타야 해변 모습
https://www.thailandblog.nl/no/bakgrunn/historien-til-pattaya-by/
1960년 중반 팟타야의 어느 술집
https://www.83rdrrsou.org/Pictures/1962-1964-kay_gary/patayabeach/1962-1964-Gary_Kay-Pataya-Beach.html
1970~80년대 팟타야 해변
https://www.memoriesthailand.com/2024/09/look-at-pattaya-beach-in-1970s-and-1980s.html
파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