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 10년, 변한 것과 변함없는 것
정말 오랜만에 태사랑에 들어와 글을 쓰네요.
빠이에서 좀 머물다 치앙마이 내려와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 마지막 날이 되니
아쉬운 마음에 괜히 여기 들어와 글을 쓰고 싶었어요.
처음 빠이에 간 건 2007년이었습니다.
그때 짧은 휴가를 겨우 얻어 빠이에는 딱 하루인가 이틀을 지내고 내려갔어야 했죠.
그때 만난 태국인 친구는 긴 머리에 저녁마다 바에서 노래를 하는 히피 같은 친구였죠.
꼭 다시 오라고 했고 전 아쉬운 마음 달래며 다음엔 꼭 장기체류를 하러 오자. 생각했어요.
일 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빠이에 와서 몇 달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매 년 빠이에 간 지 어느새 십 년이 되었네요.
십 년 전 그 친구는 어느새 일곱 살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여전히 저녁마다 바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2007년엔 중국인 마을도 막 터를 잡고 짓기 시작할 때였고 커피인 러브는 고요했고
지금처럼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을 찾지 않을 때였으니 당연히 다양한 편의시설도 없었죠.
하지만 그 무렵 타운에 들어선 세븐일레븐을 보며 많은 여행자들은 빠이는 이제 변했다며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변한다는 것, 특히 여행자가 여행지를 두고 변한다고 말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여행자는 기억 속에 박제된 자신의 추억이 훼손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변화 속에서도 변함없는 무엇이 여전히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여행자의 욕심이겠지요.
빠이는 이런 제 욕심을 채워주는 유일한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빠이를 올 때마다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바라보며 그것을 바라보는 제 시선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때는 단체 관광객이 많아 그들이 휩쓸고 간 공간에 쌓여 있는 쓰레기가 먼저 들어와 눈살을 찌푸리릴 때도 있었고
대형 가게들이나 레스토랑이 타운에 우후죽순 생기는 게 싫기만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상권이 형성돼 여행자들의 편의가 좋아지고 빠이를 찾는 여행자의 층위가 다양해진 건 사실입니다.
주민들이 돈에 혈안이 돼 일상이 망가지지 않는 한, 주민들의 생업에 도움 되도록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건 좋은 일이죠.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온 이들이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게 유행이던 시절도 지나고
이제는 관광객과 장기 체류자, 현지인들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작은 여행지들이 유행처럼 붕 뜨면 쑥대밭이 되기 마련인데
빠이는 타고난 자정작용이 훌륭해 변하는 것들과 변함없는 것들이 훌륭히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쿠터로 오분만 달려 타운을 조금 벗어나면 여전히 좋은 풍경과 좋은 인심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25밧이던 시장 쌀국수는 십 년 사이 겨우 5밧 올랐습니다. 세탁비도 30밧, 스쿠터도 100밧 똑같고요.
새로운 식당들이 많이 생겼지만 나키친의 친절함, 무슬림 가족의 로띠 가게, 쏨땀 나 암퍼 주인 아주머니의 무심함이 변함없듯이
현지인들이 하던 대부분의 식당들이 그대롭니다.
빠이가 변했다며 떠나간 이전 여행자들의 빈자리는 또 다른 세대의 여행자들이 채워갑니다.
치앙마이나 다른 도시에서 빠이로 이주해 온 많은 태국의 젊은 친구들이 게스트하우스나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요.
이전엔 볼 수 없었던 고 퀄리티의 음식점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특히 채식 위주의 레스토랑들은 어떤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가격 대비 훌륭합니다.
장기체류를 하는 유러피언들의 취향이 반영된 듯 여기저기 요가 클래스도 많아졌고
더불어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가게들이 많아진 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던 많은 취미 활동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틀을 잡고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공생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서커스 스쿨 같은 숙소는 머물면서 여러 가지 활동들을 배울 수 있고, 태국인 선생님이 있는 요가 클래스도 생겼습니다.
이전엔 포크나 레게로 한정적이었던 바들의 종류도 훨씬 다양해져 락, 메탈, 디제이 부스가 있는 바도 생겼습니다. 누릴 수 있는 취향의 폭도 조금씩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십 년 전에도 지금도 빠이는 작은 여행자 마을이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외곽으로 나가면 자신들의 삶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많은 현지인들과 장기체류자들, 커뮤니티들이 건재합니다.
대부분 부와 명예, 직업과 직위로 연대하는 도시와 달리 그들은 삶의 방식만으로 연대하고 있죠.
그들 대부분이 거의 타운에 나오지 않지만 번화하는 타운에 대해 더 이상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거죠. 변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으니 어떻게 공생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더 발전적이죠.
그런 그들을 보며 배우게 됩니다. 변함없이 자신의 삶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변화와 공생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를.
빠이의 변화가 팍팍 느껴지는 건 넉넉잡아 이십 분이면 다 돌고도 남는 작디작은 타운이지만,
그 변화를 발전적으로 이끄는 건 그 작은 타운을 벗어나면 펼쳐지는 드넓은 빠이의 들녘 풍경과
그곳을 조용히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빠이를 사랑하는 여행자와 현지인들의 힘인 것 같아요.
이것이 특별히 볼 것도 할 것도 없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DO NOTHING IN PAI' 하나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빠이의 매력인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