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의 쪽발이들
2012년 1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치앙마이에서 겨울을 났다. 치앙마이는 그 동안 몇 번 스쳐 가기만 했지 장기체류하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북쪽의 장미"라고 하는 치앙마이의 진가를 금방 느낄수 있었다...아침저녁으로 불어 오는 도이수텝의 산들바람, 콘 짜이디, 싼 물가,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주변의 산악지대들...특히, 이맘때의 치앙마이의 날씨는 거의 환상적이다...아침에는 산보하기에 딱 좋은 서늘한 날씨이지만, 잠시 후 방안에 스며 들어 오는 찬란한 햇볕에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깜짝 깜짝 놀란다. 따끈따끈한 햇빛과 산들바람을 맞아가며 숙소(콘도 6층) 베란다에 앉아서 먹는 점심(50바트짜리 카우팟)은 국내에서 먹는 몇만원짜리 점심보다 낫다. 해질무렵은 또 다시 서늘한 날씨...그 동안 태국여행의 대부분을 파타야에서 보낸 것이 참 후회되기도 한다...무료한 시간을 때울 겸 어학원에서 태국어 강의도 듣고, 주말에는 북쪽 산악지대의 이곳저곳-빠이, 도이인타논, 도이메쌀롱, 도이수텝 등등-을 돌아 보며, 장미의 도시에서 마음껏 힐링을 즐겼다...
내가 거주하고 있던 싼티탐에서는, 한국인들보다 쪽발이들이 더 눈에 자주 뜨인다. 식당에 놓여 있는 무료 일본어신문을 보니, 약 4,000여명의 쪽발이들이 치앙마이를 비롯해서 치앙마이 관할 9개 북부 소도시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은퇴한 노인들이고 연금이나 예금으로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하는데, 돈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그 즉시 생존에 문제가 생긴다고한다...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그대로 쓰러진 노인이 있었는데, 보험가입이 안되어 있어 이 병원 저 병원 더 싼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쪽발이들이 추념을 해서 화장을 한 후 국내로 보냈는데, 가족들이 인수하기를 거부했다는 기사도 있고, 어떤 노인은 숙소에서 죽은 지 며칠후에 사체로 발견되기도 하고, 신문에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콘송아켓에서 노숙하고 있는 쪽발이도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운동하러 나가는 밝은 분위기의 쪽발이도 있지만, 온 종일 식당 노변이나 주위에 서너명씩 둘러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힐끗힐끗거리는 음침한 분위기의 쪽발이들도 있다...한번은 깻수언깨우 지하식당에 밥을 먹으러, 식당통로의 빵집을 지나치는데 어디서 "뿌지직"하는 소리가 들린다...소리의 연원을 찾아보니, 쪽발이 하나가 엉덩이를 통로에 진열되어 있는 빵쪽을 향해 놓고 방귀를 뀌고는, 킥킥거리며 웃고 있는 것이다...옆에는 마누라인듯한 쪽발이와 단체여행을 같이 온듯한 쪽발이들도 같이 서 있고...나는 치앙마이를 떠날때 까지 그 빵집에서 한번도 빵을 사 먹지 않았다...
구런데, 치앙마이에 온 지 두어주일이 지날즈음, 나는 이상한 일을 겪었다...저녁을 먹으러 님만헤민쪽으로 걸어 가는데, 갑자기 내 옆에서 카메라후랏쉬가 번쩍하고 터지는것이다..옆을 돌아보니,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가며 주위의 사진을 찍고 있다...그런가보다하며 계속 걷고 있었는데, 잠시후에 옆에서 또 후랏쉬가 터진다...옆을 쳐다보면, 한놈이 연방 히죽히죽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고...나는, "이 근방에 사진 찍을만한 경치가 없을텐데..."하며,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했다...구런데, 식당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바깥쪽을 쳐다보자, 밖에서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를 쳤다..그러자, 그 놈은 잽싸게 자전거를 타고 그대로 도망을 친다...40대 후반~50대초반의 나이, 키는 160전후의 땅딸보, 까만색 배낭을 자전거 앞 적재함에 실고 다니는 쪽발이였다...한국인이나 태국인은 절대 아니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충분히 알수 있었고...
치앙마이 경찰서에 전화를 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전화를 받은 경찰은 대뜸,
"숙소를 즉시 옮기세요...아니면, 빨리 치앙마이를 떠나든지, 태국을 떠나세요"한다..
"뭥미...?"나는 잠시 어리둥절하였다...그러자,
"혹시 돈 좀 있어요?...돈 좀 내시면 우리가 경호해 드릴께요..."한다..
"나는 위법행위를 한 적이 없으니까 태국을 떠나야 할 이유도 없고, 경호원을 채용할 만큼 부자도 아니고...내가 알고 싶은 건, 허락없이 타인의 사진을 찍는 행위가 태국에서 위법인가요 아닌가요?.."
"....위법이지요..."
"그럼 내가 붙잡아서 경찰에 인계하면 되지요?..."
"민간인은 체포를 할 수 없고, 경찰만 체포할 수 있어요..."
"구러면, 나는 계속 사진을 찍히고 있어야 되나요?..."
"같이 찍으세요...그 사람 사진을 찍어서 우리한테 보내 주시면 우리가 체포하지요..."
나는 태국경찰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쨋든 그 날 이후부터는 스마트폰을 촬영모드에 맞추어 놓고, 그 놈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 놈은 내가 태국을 떠났던 3월까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왜 나의 사진을 찍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한가지 짚히는 것이 있다면, 그 동안 숙소(8층짜리 콘도)의 엘리베이터 안이나 깻수언깨우 쇼핑센타, 혹은 싼티탐 동네를 다닐때, 내 모자에 붙이고 다니는 태극마크를 보고 흠칫흠칫 놀라던 쪽발이들이 꽤 있었는데, 혹시 이것과 연관되는 것은 아닐까?...한국인보다는 쪽발이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곳에 태극마크를 단 한국인이 활보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일종의 거부감을 가지게 된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가당치 않은 거부감이다...태국은 엄연히 한국인이나 쪽발이들에게 다 같은 3국일뿐이다...하물며, 언제라도 돌아 갈 수 있는 삼천리 금수강산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보다는, 쓰나미와 지진과 방사능에 오염된, 저주받은 국토에서 살아가야 할 쪽발이들에게는 언감생심 한국인들에게 거부감을 가질만한 계제가 못되는 것이다...
또 하나 궁금한 점은, 그 일이 있는 후에, 숙소 근방에 있는, 쪽발이들도 자주 찾는 슈퍼아줌마가, 나를 볼때마다 "You O.K?...You O.K?..."하며 사뭇 걱정스러운 낯으로 물어본다는 것이다...그들 사이에 무언가 교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올해도 나는 치앙마이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 지난 12월중순에 도착했다. 그리고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가자, 이 아줌마는 오히려 내가 놀랄 정도로 화들짝 놀란다...그리고는, 정학한 말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꼰 이뿐...콘 이뿐...어쩌구저쩌구..."하며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이다...
올해는 숙소를 비교적 환경이 좋은 님만헤민쪽으로 잡을까하다가, 일부러 싼티탐쪽으로 잡았다...그 이유는, 내 사진을 찍었던 쪽발이를 잡아서, 왜 나의 사진을 찍었는지, 또 사진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그 이유를 꼭 확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전기충격기와 최류가스액도 준비하려 했으나, 문제가 더 커질 것 같아서, 그것은 포기를 했다...요즘도 길거리에서 쪽발이들과 마주칠 적에는, 나는 그들의 모습을 유심스럽게 관찰하곤 한다...
"40대 후반~50대 초반의 나이, 160정도의 땅딸막한 키, 자전거의 앞 적재함에 까만 색 배낭을 실고 다니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