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축제 --그 환상적인 빛과 소리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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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축제 --그 환상적인 빛과 소리의 향연

포월 2 4057
오후 6시.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어둠이 서서히 깔렸다.
콰이철교 축제를 보기위해 나섰다. 사람들이 몰려 가는 길을 따라, 걸어서20여분 가니 바리케이트로 길을 막아 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내국인은10바트, 외국인은 두 배다. 일종의 축제거리 입장료인 셈이다. 여기 저기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The 19th River Kwai Bridge Week, A Light and Sound Presentation (제19회 콰이강의 다리 주간, 빛과 소리의향연.11/26~12/7)’
(참고:올해는 제 22회가 되겠음)

축제는 12일간 계속되는데 평일에는 하루1회, 밤8시에 시작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하루2회 공연을 한다고 되어 있다.

조금 걸어 가자 강으로 면한 길가에 수많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장사꾼들의 리어카가 길 양쪽과 가운데에 수 백대 늘어서서 야시장이 열리고 있고 철교가 있는 강쪽은 위장막 같은 천으로 가려져 있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입구에 무슨 매표소가 있다.

천막 안으로 들어 가는 입장료가200바트, 100바트, 50바트짜리 세 종류다. 200바트, 100바트짜리 티켓을 사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준다고 한다.

강변에는 2,3층짜리 음식점들이 휘황하게 불을 켜고 철교를 중심으로 죽 늘어서 있는데 거기서도 손님을 끈다. 100바트에 맥주나 음료수를 곁들여 축제 구경을 할 수 있단다.

매표소에서 제일 싼50바트짜리 표를 끊어 휘장 안으로 들어가니 목재로 만든 계단식 관람석이 철교 우측에 배치되어 있었다. 보이 스카웃 대원들이 표를 확인하고 지정된 자리로 안내를 해 주었다. 내 자리는 대체로 높은 쪽에 있는 좋은 자리로 외국인이라고 매표소 직원이 배려를 해준 모양이다.

음식점들 불빛에 멀리 희미하게 철교가 보인다. 교각은 불과8~9개, 길이는 약100미터나 될까. 강에는 수많은 유람선이 음악을 틀어 놓고 떠 있다.

불과55년 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저 철로건설에 동원된 수많은 군인과 포로들, 그리고 현지 노동자들이 고귀한 생명을 앗겼었지.
오죽했으면 ‘죽음의 철로’라고 했을까.

철교 입구 강둑에 서 있는 수령이100년도 넘어 보이는 거목은 이 모든걸 보고 들었으리라. 이 지구상 어느 곳 한군데 역사적인 장소가 아닌 곳이 없겠지만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이 자리에도 옛날 그들의 피눈물이 배어 있을 것 같다.

8시가 되자 일시에 온 사방의 조명이 꺼졌다. 강가에 있는 상점과 건물뿐 아니라 강 위에 있는 모든 유람선도 불을 껐다.
달도 떠 오르지 않아 주위는 그야말로 불빛 하나 없는 암흑천지로 변했고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정적 속에서 밤새 우는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실제로 새가 우는 건지 음향효과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조금 뒤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는 대형 스피커에서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익히 듣던 행진곡이 차츰 크게 울려 퍼졌다. 다리 건설에 동원된 연합군 포로들이 저쪽에서 무리지어 걸어오고 있는 것 같다.

철교 교각과 난간의 형태를 따라 설치되어 있는 전구에 불이 들어와 철교의 윤곽이 드러나 보이고 태국국가가 연주되자 모두 기립을 했다. 국가가 끝나자 구슬픈 진혼 나팔소리가 밤하늘에 구슬프게 메아리 친다.
원통하게 죽어 간 영령들을 달래는 나팔소리, 그 나팔소리에 옛날 군 복무시절, 유격훈련을 받다 사고로 사망한 S 상병이 생각 났다.

각종 피복과 소모품 업무를 담당하는 소위 ‘걸레’라고 불리우는 보급 행정병 보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날도 행정반에서 장부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인사계 장 상사가 급히 뛰어오더니 쌀과 부식을 담당하고 있는 S 상병이 유격훈련 도중에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불과 이틀 전날 밤. 취침나팔 소리가 울리고 다른 전우들이 모두 잠을 자러 모포 속으로 들어간 뒤 우리 행정반 요원들은 유격훈련 가는 그를 송별한다고 하나 둘 살금살금 기어 나와 마마자국이 있는 무시무시한 취사반장 ‘명동백곰’ 이 병장 등과 함께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라 호롱불을 켠 취사장 부엌에서 특식으로 나온 돼지고기를 꼬불쳐 두었다가 막걸리로 파티를 해 주었는데 그게 마지막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다소 마르긴 했지만 항상 서글서글한 눈매에 유머가 넘치던 그가 죽었다니.

사단에서 주식과 부식 재고 검열이 나온다고 했을 때 이런 저런 이유로 항상 모자라기 마련인 재고로 고민을 하던 S 상병이 어느날 검열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고 희희낙락했다.

분명히 된장 재고가 부족하다고 고민했는데 어떻게 그걸 맞추었을까.
나는 매트리스가 몇 장 모자라 침상 끝에 정렬해 둔 매트리스 중 낡은 것 몇 장을 이중으로 접어 두어 외관상으로는 숫자를 맞추어 두었지만 된장통은 뚜껑을 다 열어 두고 검열을 받아야 한다.

검열이 나온 날. 검열관이 부식 창고로 올라 갔다. 내가 맡고 있는 분야는 무사히 넘어 갔던 터라 느긋한 마음이지만 S 상병이 맡고 있는 된장통 숫자가 걱정이 되어 검열관 뒤에 쭈삣쭈삣 따라 가던 나는 얼른 눈으로 된장 통을 세어봤다.

기가 막힌다. 숫자가 맞았다.
쌀 가마니를 손으로 툭툭 만져 보며 세고 난 뒤 검열관은 뚜껑이 열린 채로 정렬되어 있는 플라스틱 된장통을 발로 치며 지나 갔다. 그러더니 어느 통 앞에 서더니 소매를 걷고서는 손을 통 안으로 쑥 넣었다가 뺐는데 그의 손에는 된장 대신에 하얀 소금이 쥐어져 있었다. 검열관은 그의 손을 흙빛이 된 S 상병의 얼굴에 갖다 바르고 고함을 질렀다.
“야, 임마! 이게 된장이야?”
“아……, 예! 된장 맞습니다!”

겁에 질린 S 상병이 된장과 소금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얼떨결에 차렷자세를 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고 뒤에 서 있던 우리는 앞으로 전개될 일이 걱정스러운 가운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S 상병은 고심 끝에 김장용으로 수령해둔 굵은 소금으로 통을 채우고 그 위에 된장을 살짝 발라 두었는데 그 바닥에는 도가 트인 검열관의 예리한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 사건은 어찌 어찌해서 별 탈없이 넘어 갔지만 그 뒤로 S 상병은 별명이 ‘소금통’으로 바뀌었다.
그런 그가 눈에 선한데 죽었다니.
(중략)

S 병장의 장례식 때 들었던 그 처연한 진혼곡 나팔소리를, 전쟁의 포연이 자욱했던 이곳 칸차나부리에서 다시 들으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콰아아앙!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 어디에서 날아 오는지도 모르는 위협적이고 음산한, 그래서 지극히 공포스러운 헬리콥터 소리가 스피커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저쪽 철교 끝부분에서 한줄기 서치라이트가 이리저리 밤하늘을 휘젓고 이어서 고막을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따다다다 기관총 사격소리가 들렸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였지만 어둠 속에서 어디서 총알이 날라 올지 몰라 흠칫 몸을 움츠리게 만들 정도로 생생하고 섬짓하다.
이때 기적소리가 울리고 철교를 통과해서 가는 기차소리가 들렸다.
철교 위에 일정 간격으로 설치해 둔 스피커에서 관람석에서 멀어질수록 소리가 점점 작게 나게 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관객들은 실제로 기차가 가고 있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절묘한 음향효과다.

강 건너 기슭에 조그만 불이 켜지고, 교각에 붉은 서치라이트가 비쳐지자 연막탄이 피어 올랐다.
가끔씩 들려오는 낮은 새소리 사이를 비집고 음산하게 울리는 공습경보 사이렌, 어지러운 군화발 소리, 일본어로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 뒤이어 연합군 조종사의 교신음, 비행기 소리가 뒤섞이고 휘파람으로 부는 행진곡, 뒤이어 미군의 전화통화 소리.

이때 건너편에서 구슬픈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천천히 다가 오고 연이어 공습경보가 울리면서 서치라이트가 여기 저기 밤하늘을 휘젖는 가운데 콩 볶는 듯한 기관단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여러 발의 조명탄이 실제로 하늘에서 터지며 다리 주위가 대낮처럼 훤하게 밝아지면서 강물에서 폭탄이 터져 물기둥이 치솟았다. 폭음이 고막을 찢는다.

다리 건너편에 보이는 일본군 초소도 불타 오른다.
나무로 만들어 둔 철교가 두 동강이 나면서 강물에 쳐 박혔다. 기존 철교는 어둠 속에 보이지 않고 폭음과 함께 나무 철로가 내려 않도록 하였기에 거의 실제상황 같다. 다시 행진곡이 울리며 45분간에 걸친 쇼는 끝났다. 자연과 어둠을 무대로 조명과 음향을 절묘하게 혼합한 환상적인 쇼다.

주위의 건물과 상점들은 다시 불을 켰고 배들은 풍악을 울리며 아래 쪽으로 내려 갔다.
2 Comments
*^^* 1970.01.01 09:00  
콰이강의다리축제는 야시장도 장난 아니죠.....
샤논 2010.04.15 19:05  
정말 글을 생생하게 잘 쓰셨네요... 감동받으며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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