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푸껫 귀신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푸껫 귀신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쓰나미 참사 현장에서 피어오르는 괴담의 실체를 찾아가다
떠나간 동료들과 재난의 공포를 잊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타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과 가장 붐비는 번화가를 가진 푸껫주 빠똥. 지난 7월10일 현란한 네온사인은 빠똥 시내의 밤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빠똥 해변 길가에는 100여대의 뚝뚝(동남아의 삼륜 택시, 푸껫에서는 소형트럭을 개조해 만든다)이 손님을 기다리고, 도로 안쪽 번화가에는 수많은 술집과 음식점에서 나온 ‘삐끼’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붙드는 모습도 예전 그대로였다. 불과 반년 전 쓰나미가 1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난 현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다만 네온사인 물결을 드문드문 끊어놓은 어두운 호텔 공사장과 새로 페인트칠을 하고 새 가구로 치장한 가게들이 그때의 참상을 조용히 웅변해줬다. 한 청년은 쓰나미 참상이 담긴 사진을 한장에 50바트(1500원)를 받고 팔았다.
‘뚝뚝’을 부르는 창백한 형체
“빠똥 해변이 다 복구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아요. 이곳에는 귀신이 살고 있어요. 적어도 푸껫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어요.” 빠똥에 사는 따나돌 퐁칸캄(26)은 지난해 12월26일 쓰나미 참사 뒤로 귀신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 타이 남부에서만 539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해일. 실제로 쓰나미가 할퀴고 간 푸껫주와 인근 팡아주 전역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도 귀신 때문에 한두번 소동을 겪은 터였다. 푸껫의 한 현지 교민은 조심스레 말했다. “지난 2월께 한국 여행업체 직원들이 단체로 관광지 복구 상황을 보기 위해 푸껫에 왔어요. 그런데 한 여직원이 숙소인 까롱 해변의 ㄱ리조트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캬악’ 비명을 지르고 나왔어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의 상체가 침대 위에 놓여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모두 잠을 깨고 방을 바꾸느라 소동이 있었죠. 그 리조트가 한국인 한명이 죽은 곳이거든요.” 푸껫 주민들은 쓰나미의 원혼들이 바다 위를 떠돈다고 믿는다. 한밤중 귀신들이 바다 위를 날아다니듯 걸어다닌다는 이야기, ‘첨벙첨벙’ 물놀이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괴담 수준으로 떠돌긴 했지만, 귀신을 직접 만났다는 사람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쓰나미가 덮친 뒤 2주 뒤쯤이었어요. 새벽 2시쯤 일을 마치고 친구와 위스키 한병을 사서 해변으로 갔죠. 모래밭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데, 옆에 검은 옷을 입은 서양인 남녀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이리 와서 같이 먹자고 말을 걸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어요. 그러더니 도롯가에 있던 뚝뚝 운전사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거예요. 운전사가 바로 달려왔는데, 글쎄,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뚝뚝 운전사와 옆에 있던 사람들 모두 놀라 도망쳤어요.” 타이 전통 마사지사인 쿵 차이토(28)는 “모두가 같이 봤다. 분명히 귀신이었다”며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다음날 아침 빠똥에 있는 사원에 가 귀신들이 편안히 저승에 가달라고 빌었어요. 그 뒤론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도 무서워서 해변에는 나갈 수 없어요.” 푸껫 전역에서 가장 흔한 이야기는 ‘뚝뚝’ 괴담이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러 왔다가 졸지에 저승 신세를 지게 된 관광객들이 고향에 가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뚝뚝 괴담은 농담거리가 될 만큼 푸껫 사람들에게 일상화됐다. 하지만 귀신을 봤다는 뚝뚝 운전사 피삭 카야자이(29)는 지금도 한밤중에 손님 태우길 겁낸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닥쳐온 빈곤
“쓰나미 1주 뒤쯤 밤 10시30분께 손님을 찾다가 지쳐, 푸껫타운에서 빠똥 해변으로 갔죠. 그런데 한 친구 운전사가 20~30대로 보이는 북유럽 남자 3명을 태우고 가더군요. 손님 셋 다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창백한 표정이었어요. 장사도 안 되던 터에 친구를 쫓아갔죠. ‘손님 태우고 공항에 가나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가까이 붙어서 ‘어디 가냐?’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 대답이 ‘응, 집에 가’라고 하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어요.” 대다수 동료를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공포가 덮쳐왔다. 피삭은 다음날 친구에게 ’네가 귀신을 태우고 갔다’고 말하지 못했다. 빠똥 해변의 뚝뚝 운전사들은 이미 빠똥을 떠났다. 쓰나미로 세상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밥벌이 수단인 고물 택시를 잃고 빠똥을 떠났다. 쓰나미의 가장 큰 희생자는 뚝뚝 운전사들이다. 쓰나미 당시, 해변을 따라 이어진 도로 500~600m에서 100여대의 뚝뚝 운전사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덮친 죽음의 물결은 부지런한 운전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튼튼한 리조트에 묵고 있던 외국인 관광객들은 그나마 대피할 옥상이라도 있었지만, 이들은 무방비 상태였다. 지금 빠똥 해변의 뚝뚝은 모두 빨강색 신차다. 운전사들 대부분도 외지인이다. 푸껫주에서 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팡아주의 남켐 마을. 타이의 전형적인 어촌인 이곳은 폐허에 가까웠다. 집과 배의 잔해가 엉켜 나뒹구는 마을을 떠나 주민들은 모두 인근에 있는 8곳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캐나다에서 건축업을 하다가 구호활동을 위해 달려온 강은수(39)씨는 “여기저기서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남켐 마을 건너편에는 코카오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 있다. 남켐에서 페리로 5분 거리인 이 섬은 해발고도가 10m도 채 안 돼 쓰나미 한번으로 모두 씻겨내려갔다. 성시를 이루던 어항에는 서너척의 배만 남았다. 이곳 주민들의 귀신 이야기는 좀더 구체적이었다. “모처럼 10명이 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섬에 다다를 무렵, 사람 크기만 한 둥그런 빛이 쫓아오는 거예요. 하얀 빛을 내는 불덩이였어요.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섬으로 계속 도망쳤어요.” 도깨비불이었을까? 키오 라민(55)은 그 일이 있은 뒤 어부 한명이 열흘 동안 앓아누웠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바다 건너편 남켐 마을에서 밝힌 구조대의 불빛이라고 하지만, 나는 귀신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사건도 소개했다.
관광산업 타격 받자 종교의식 금지하다
“20바트를 받고 남켐과 코카오 섬을 오가는 뱃사공이 있는데, 5분이면 갈 거리를 20분이 걸렸다는 거예요. 앞으로 가도 무엇인가가 끌어당겨 뒤로 가고, 다시 앞으로 가도 또 뒤로 밀려나고…. 그렇게 해서 20분이 걸렸죠.” 취재진은 뱃사공을 찾아가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국인 기자였기 때문인지,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귀신 이야기를 꺼내길 꺼렸다. 타이 정부는 현지에서 떠도는 귀신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정부 세입의 3%를 채워주는 푸껫에서 자칫 관광객을 내몰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타이 주민들은 귀신을 보면, 당시 현장이나 사원에 찾아가 귀신을 위로하는 제를 올린다. 무려 33명이 몰살된 빠똥 해변의 한 지하 슈퍼마켓은 손님들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승려 50명을 초청해 제를 올렸다. 하지만 정부는 쓰나미 참사 100일 뒤인 지난 4월5일부터 해변 등 공공장소에서의 종교의식을 금지시켰다. 표면적으로는 사망 뒤 100일 전에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의식은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제사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서다. 빠똥 소완키리웡 사원의 크루 상카라트 승려는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차례 쓰나미 원혼을 위로하는 천도제를 올린다. 그는 “이전에는 빠똥 해변 등에서 거의 하루에 한번씩 쓰나미 원혼을 위로하는 제를 올렸지만, 지금은 주로 신자의 집을 방문해 제를 올린다”며 “너무 많은 종교의식 때문에 해변이 소란스러워질까 염려해 금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며 정부 방침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정부는 민간에서 떠도는 귀신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언론에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타이 언론은 ‘쓰나미 귀신’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고 있다. 가장 큰 사건은 지난 2월 저명한 법의학자인 폰팁 로잔아쑤난(50)이 귀신 2명과 함께 찍힌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타이 최대 발행부수의 <타이라스>는 이 사진을 ‘과감히’ 1면에 실었다. 서방 언론의 비틀린 오리엔탈리즘도 ‘재난 귀신 증후군’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프라니 사쿨피빠따나 푸껫대 교수는 “가지각색의 영혼이 인간과 함께 산다고 믿는 타이 불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귀신을 서양의 유령으로 등치시키는 몰이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은 6월26일 북유럽 등 서양 관광객에 비해 한국 등 아시아 관광객이 좀처럼 찾아들지 않는 이유를 귀신 소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푸껫의 한 여행업체 관계자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지 않는 이유는 큰 변을 당한 곳에는 가지 않는다는 한국인의 정서 때문”이라며 “푸껫 귀신 이야기는 아직 한국에 알려지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정부의 노파심
사회병리학자들은 재난이 발생한 뒤 일정 시기까지 귀신 이야기가 동심원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말한다. 정부의 꾸준한 입단속과 계몽 때문인지, 쓰나미 귀신 출몰 소식이 꽤 줄어들었다. 7월7일 푸껫 라자바트대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쓰나미 직후 나타난 귀신은 공포스러웠지만, 지금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하얀 티셔츠에 검은 치마를 입은 학생들은 귀신 경험담을 말하며 까르르 웃었다. 주민들은 귀신을 보면서 쓰나미를 상기한다. 아니, 쓰나미를 잊지 못해 귀신을 보는지도 모른다. 쓰나미 이후 2만8천명의 실직자가 발생했다. 이들에게 쓰나미는 일상을 집어삼킨 공포 그 자체다. ‘호텔 르메르디앙 푸껫’에서 일하는 따나돌은 수입이 3분의 1로 줄었다. 다행히 실직을 면했지만, 호텔 영업이 중단돼 한달 1만바트에 이르던 봉사료 수입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가져다준 일상의 몰락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관광 가이드 등 돈이 될 만한 부업이라면 무엇이든 나서고 있다. 귀신을 보진 않았지만, 그 또한 귀신을 믿는다. “지난 7월4일에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집의 가구가 흔들렸어요. 또 왔나 싶어 간담이 서늘했죠. 지금도 쓰나미 원혼들이 주변의 바닷가를 서성일 텐데, 또 한번의 쓰나미가 온다면….”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정부의 과도한 노파심 속에서 타이 사람들은 귀신을 만나고, 귀신을 위한 제를 올리고, 귀신을 저승으로 편안히 떠나보낸다. 공포를 대면하고 공포를 쫓아내길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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