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와 한국인 포로 감시원
어제 KBS TV 수요기획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나는 전범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칸차나부리의 콰이강의 다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태국 여행시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칸차나부리는 가보지 않았지만
태국이라는 나라가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지켜봤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콰이강의 다리와 태국-버마간 철로를 연합군 포로가
인간 중장비의 역활을 하며 건설을 했는데 고된 노동, 질병, 굶주림으로
하루에도 수백명씩 죽어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일본군은 모든 악랄한 짓을 자행했지만 결국에는 조선인들이
B급, C급 전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당했다고 하더군요.
조선인은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감시원으로 왔지만 실제로는 포로와 똑같은
입장이었는데 말이죠.
보면서 참 가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콰이강의 다리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세운 일본인 위령비가 그리도 많은데
우리나라 조선인들을 위한 위령비는 하나도 없고..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 일본인 위령비를 보면서 한 말이 가슴에 남네요.
"이게 나라있는 국민인가.. "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그냥 콰이강의 다리 앞에서 사진찍고 돌아 오는 것보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
아픔도 같이 느꼈으면 하고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콰이강의 다리에 가실 분은 KBS TV 수요기획 한번 인터넷으로 보고 가세요.
그 것과 관련된 책도 있던데 그 것도 읽어 보고 가시면 좋을듯 하네요.
(책이름은 오해가 있을까봐 적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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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수요기획’(밤 12시)
소설 ‘콰이강의 다리’ 작가 정동주와 함께 역사의 현장을 찾아간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군수물자 보급을 위해 건설했던 태국 ‘콰이강의 다리’.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된 조선청년 300명은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군으로 간주돼 전범재판을 받아 23명이 사형당했다. 관심 받지 못한 그들의 아픈 흔적들을 살펴본다.
제목으로 칸차나부리의 콰이강의 다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태국 여행시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칸차나부리는 가보지 않았지만
태국이라는 나라가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지켜봤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콰이강의 다리와 태국-버마간 철로를 연합군 포로가
인간 중장비의 역활을 하며 건설을 했는데 고된 노동, 질병, 굶주림으로
하루에도 수백명씩 죽어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일본군은 모든 악랄한 짓을 자행했지만 결국에는 조선인들이
B급, C급 전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당했다고 하더군요.
조선인은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감시원으로 왔지만 실제로는 포로와 똑같은
입장이었는데 말이죠.
보면서 참 가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콰이강의 다리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세운 일본인 위령비가 그리도 많은데
우리나라 조선인들을 위한 위령비는 하나도 없고..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 일본인 위령비를 보면서 한 말이 가슴에 남네요.
"이게 나라있는 국민인가.. "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그냥 콰이강의 다리 앞에서 사진찍고 돌아 오는 것보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
아픔도 같이 느꼈으면 하고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콰이강의 다리에 가실 분은 KBS TV 수요기획 한번 인터넷으로 보고 가세요.
그 것과 관련된 책도 있던데 그 것도 읽어 보고 가시면 좋을듯 하네요.
(책이름은 오해가 있을까봐 적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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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수요기획’(밤 12시)
소설 ‘콰이강의 다리’ 작가 정동주와 함께 역사의 현장을 찾아간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군수물자 보급을 위해 건설했던 태국 ‘콰이강의 다리’.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된 조선청년 300명은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군으로 간주돼 전범재판을 받아 23명이 사형당했다. 관심 받지 못한 그들의 아픈 흔적들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