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행소설 <the 풀문 파티>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주는가
현대인은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진학과 취업과 결혼과 승진과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까지. 그런 것들은 문명인으로써의 통과의례를 넘어 때론 심각한 억압이 되기도 한다. 여행은 이러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기회를 마련한다. 자신을 아는 이 없는 낯선 여행지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온갖 풍경을 접하고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크고 작은 사건을 겪기도 한다. 그렇게 일정한 통과제의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자아를 성찰하고 삶의 지평을 새롭게 여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the 풀문 파티』에는 이라크 전에 참전했다가 여자로서 견디기 어려운 능욕을 겪은 제니, 거식증 때문에 한국을 떠나야 했던 문신녀,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평생을 떠돌이로 살기로 작정한 존, 인도에서 힌두 신화를 공부하다가 귀국길에 머문 태국에 뿌리 내린 전 강사 등 저마다 아픈 개인사를 간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만나면서 수임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차츰 실종된 약혼자를 이해하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선택의 순간에 다다른다. 완벽한 일체감으로 행복했다가 갑작스런 몰락으로 크나큰 상실감에 빠져 있던 수임은 결국 자신의 선택을 위해 온몸을 던진다.
우리 삶의 뒷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
『the 풀문 파티』는 길의 두께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특이한 점은 그 두께를 고체인 땅이 아니라 액체인 물로 그리려 한다는 점이다. 길 위를 따라 횡으로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바다 속으로 뻗은 종( O)으로의 여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의 표제인 ‘풀문 파티’는 중의성을 띤다. 태국 팡안 섬에서 보름날마다 벌어지는 해변 파티의 명칭이면서 남자주인공 정한영의 인터넷 커뮤니티 상의 닉네임이기도 하다. 『the 풀문 파티』에는 이처럼 한 몸이면서 서로 다른 의미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최수임과 정한영은 연인이라는 짝으로 묶이지만 일상인과 여행자라는 상반된 신분이다. 땅과 물은 이 소설에서 여행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과 비현실적 공간으로 대비된다. 『the 풀문 파티』에 내재된 이러한 중의성과 양면성은 우리가 오롯이 믿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세상은 이대로만 굴러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도록 만든다.
1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쓴 작품
「살림출판사」와 「시공사」에서 문예지와 국내외 문학 도서를 기획하던 김완준은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훌훌 떠나서 1년의 절반 이상을 정처 없이 방랑하는 여행자로 변신한다. 그렇게 세상 곳곳을 떠돌다가 잉크 빛 바다와 은모래 해변, 그리고 야자수가 무성한 열대의 해변에 심취하여 10여 년 동안 태국만 수십 차례나 방문한 끝에 완성한 소설이 『the 풀문 파티』이다.
잉크 빛 바다와 은모래 해변, 그리고 야자수가 무성한 열대의 해변은 서양인들이 상상하는 천국의 풍경이다. 세계적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과학소설을 조디 포스터 주연 영화로 만든 「콘택트」에 등장하는 가상의 천국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the 풀문 파티』는 천국에 가까운 열대의 해변에서 한 여인에게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의 전모를 흥미진진하게 추적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작가가 세상을 떠돌면서 실제로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밤늦도록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새벽녘에 떨어진 낯선 거리의 길모퉁이에서, 수많은 이들이 오가는 거리의 노천카페에서, 작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순간들을 수첩에 적어 내렸다. 그 와중에 마취강도를 당하고 모든 것을 강탈당하는 위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는 일도 있었다. 그런 생생한 경험들이 소설에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각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라짐과 돌아옴, 소멸과 회귀를 사유하는 소설!”
『the 풀문 파티』는 익숙한 여기, 이곳이 배경이 아니다. 조금은 낯설고 먼 태국의 바다를 그곳으로 선택한다. 작가는 낯선 곳의 바다로 잠수하며 ‘사라짐’과 ‘돌아옴’을 말한다. 소설을 진행시키는 ‘여행’이라는 구도는 소멸과 회귀를 함께 사유하려는 작가의 배려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배려는, 알랭 드 보통의 비유를 빌리자면, 김완준이 글로 쓰기 전에는 태국의 섬과 해변이 이처럼 강렬하게 드러난 적이 없었다.
김완준은 처음부터 지도에 있는 길을 짚어서 가는 여행을 그리지 않았다. 그의 인물들은 모두 지도에는 없는 길을 모색하고 그 방향으로 전진한다. 절벽이 있더라도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비장함은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을 찌른다.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 소설이라고 믿는, 수없이 소설에 가슴이 찔리고 또 찔려본 자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은 그래서 정말 특별하다. 김완준은 마치 이렇게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디 소설의 자리는 어디인가.
-양귀자(소설가)
“위험하지만 한번쯤 빠져들고 싶은 유혹!”
김완준은 자주 여행을 떠나는데 나는 늘 그게 부럽기만 하다. 그는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풍경으로 맛깔스런 소설을 만들어낸다. 카오산의 후미진 골목에서, 어스름이 남아 있는 새벽의 낯선 거리에서, 피로를 싣고 달리는 밤 버스에서, 청춘의 호르몬과 알코올과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변의 파티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들이 이 소설을 이끌어 간다.
『the 풀문 파티』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생각했다. 내 몸에도 여행자의 유전자가 깃들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거대한 불빛을 이루며 도시에 모여살기 이전부터 인간은 안정이나 정착과는 거리가 먼 삶을 동경해왔다. 이 흥미진진한 소설은 우리 몸속에 잠자고 있는 떠돎의 본능을 일깨운다. 한곳에 머물지 말라고, 일상을 부정하라고, 당장 떠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그러니 위험하지만 한번쯤 빠져들고 싶은 유혹 앞에 무장해제 당할 수밖에.
-안도현(시인, 우석대학교 교수)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태국만 50번 다녀왔다”
『the 풀문 파티』의 작가 김완준은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예대와 경희사이버대를 거쳐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수채화를 즐겨 그리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 꿈은 화가였으나 중학생이 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문예반 선배였던 안도현 시인의 권유로 고2 때 시로 전향, 1986년 신경림 시인의 심사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했다. 문학청년 시절에는 장정일, 윤대녕, 이인화 등과 교류하는 한편 「살림출판사」와 「시공사」에서 문예지 및 국내외 문학도서를 기획했다. 1997년 무한 경쟁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한국을 떠나 오세아니아를 1년여 동안 여행한 것을 계기로 유럽, 동남아, 일본, 중국 등을 떠돌아 다녔다. 천국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열대의 섬에 심취하여 태국만 수십 차례 방문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the 풀문 파티』를 구상했다. 현재 대학에서 틈틈이 학생들에게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베트남 하롱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 왓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하여 동남아 3부작을 완성할 계획이다. 그동안 다수의 여행도서와 소설집, 시집, 동화책을 출간했다.
인간은 원래 물속에서 살던 존재였다
여성지 기자 최수임은 바캉스 부록을 위해 여행정보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배낭여행전문가 정한영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수임은 한영의 도움으로 바캉스 부록을 완성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짧은 연애를 거쳐 결혼을 약속한다. 태국으로 약혼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풀문 파티를 즐기려고 꼬 팡안을 찾는데, 그날 밤 한영이 실종된다. 일주일 동안 꼬 팡안의 바다와 인근 섬까지 샅샅이 수색을 했지만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영은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고 수임은 모든 꿈을 놓아버린 채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 후 5년이 흐른다. 한 달 전부터 해괴한 꿈에 시달리던 수임은 취재차 만난 유명 무속인으로부터 그 꿈이 한영과 관련 있다는 말을 듣는다. 더욱 놀라운 건 5년 전에 죽은 한영이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무속인의 말은 황당했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해괴한 꿈에서 헤어나고 한영과 원죄처럼 얽혀 있는 운명의 끈을 매듭짓기 위해 수임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영의 흔적을 찾아 5년 전 여행길을 답습하기로 한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무작정 태국으로 떠난 수임은 여러 사연을 지닌 인물을 만나고 온갖 사건을 겪으며 한영의 실체에 한 발 한 발 다가서게 된다. 수임을 만났을 때 이미 세상에 딱히 거처를 두지 않고 떠도는 유목민의 모습을 하고 있던 한영은 누구보다도 물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물속에 들어가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호흡을 참으며 수직으로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내려가는 그 기분. 원래 인간은 물속에서 살던 존재잖아요. 어머니 뱃속에서 양수에 둘러싸인 채 10여 개월을 살다가 세상에 나오는 거잖아요. 물속 깊이 들어가면 시간과 공간이 모두 정지해버린 것처럼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죠. 어머니 뱃속 양수의 세계가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에요.”(본문 250페이지)
길 위의 여행과 바다 속으로의 여행
심연의 세계를 탐닉했던 한영의 삶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영은 어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공부를 잘했던 쌍둥이 동생은 대학에 가기 위해 도시로 떠난다. 첫 여름방학을 맞아 모처럼 만에 집에 온 동생과 잠수를 하다가 동생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쓰러져 요양원에 모셔진다. 한동안 시름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던 한영은 동남아 오지에서 흔적 없이 스러지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정식으로 다이빙을 배우게 된다. 다이빙을 하면서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물의 세계에 눈을 뜬 한영은 동남아의 섬과 해변을 찾아다니며 다이빙을 즐기다 태국 남부의 섬 꼬 따오에서 다이빙 강사로 정착한다. 그리고 매달 음력 보름 때마다 인근의 섬 꼬 팡안으로 가서 다이빙을 한다.
한영은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다 속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고 믿었다. 바다 깊은 곳에 지구의 중심으로 통하는 길이 있으며 그 길로 들어가면 지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있는데 그곳에 동생이 살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수중세계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는 꼬 팡안 앞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는 것이었다.
한영의 내력을 알게 된 수임은 그를 만나려면 먼저 그가 매료됐던 세계를 알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이빙을 배우기로 한다. 한영이 그토록 바다를 좋아하고 다이빙을 사랑했던 게 단순한 취미 생활이나 밥벌이 때문이 아니라, 목숨과도 바꿀 만큼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서였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임은 마취강도를 당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였지만 자신의 폐와 물안경에만 의지한 채 수중 30미터까지 잠수하는 일에 도전한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30미터 잠수에 성공한다. 그 순간, 실체인지 환영인지 모를 한영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토록 애 타게 찾아 헤매던 한영과의 만남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는데…….
‘풀문 파티’의 유래
‘풀문 파티(full moon party)’는 태국 남부의 섬 꼬 팡안에서 음력 보름 때마다 열리는 축제이다. 20여 년 전 꼬 팡안 핫린 해변의 파라다이스 방갈로에서 투숙객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파티였는데,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이제는 세계적 축제가 되었다. 평소에는 한적한 바닷가이지만 매월 보름달이 뜰 무렵이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술과 음악과 춤으로 흥청거리는 파티가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