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카린 물 마시고 자란 아기, 설탕 깡먹고 커서 방콕에서 갓끈 동부에 빠지다.
아기 때, 분유가 모자라 삭카린 물을 멕였다며 불쌍하다고 혀를 끌끌 차시던 모친이 생각난다. 요즘에야 유전자 조작 옥수수가 들어갔네 방목 하지 않은 위험한 소에서 짠 우유로 분유를 만들었네 하며 유난을 떨며,
이왕이면 비쌀 수록 미덥다는 분유의 삐까번쩍 럭셔리 업그레이드 되는 세상이요. 기절 초풍할 초간편 이유식이 인기를 게으른 젊은 엄마들의 손길을 유혹하고 있겠지만,
먹거리 가 씨가 마른 보릿고개를 밤새 힘겹게 넘나들던 그 시절, 뒤주를 털어 겨우 겨우 어렵사리 구한 겨를 차곡 차곡 모아두었다가 솥에 채반을 얹어 쪄낸 개떡만으로도 즐겁던 그런 시절이 있어 봤다.
45원 하는 소고기 라면 하나가 귀하던 시절, 국수와 함께 삶아 내고 허연 국수 한그릇 김이 모락 모락 오를때, 꼬불 꼬불한 라면 면발만 먼저 골라 먹었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주식조차 모자란 보릿고개가 유독 늦봄 뿐 아니라 사시사철 이어졌었다.
먹을 군것질 거리도 변변찮아 친구 집 찬장 동그란 꽃문양 프라스틱 통의 설탕을 한술 덜어내 깡을 해 먹다 국자를 다 태워서 혼나기도 했었다.
그러던, 삭카린 물 마시고 자란 아기, 설탕 깡 먹고 커서, 이제 방콕에서 갓끈 동부에 빠졌다.
20밧도 아니고 21밧을 받는 재미난 가격의 살라댕 역 바로 밑의 [카놈찐] 길거리 식당에 퍼질러져 앉으면, 떼내지도 않은 채 서로 엉겨 붙은 면발을 통째로 삶아 칼로 토막내진 국수 두 덩이에 팍팍 끓은 뒤 은근한 불로 계속 지져대는 매운 맛의 소스를 끼얹고선
한국에서는 먹어 보지 못한 허브과의 나물과 양배추 그리고 생숙주 등등을 한줌씩 더하고나서 잘근 잘근 토막난 갓끈 동부를 한줌 얹어서 먹는다.
허접스런 양철 스푼과 포크 하나로 국수와 소스와 야채들을 버무려 가며 어구적 어구적...
그럼 어김없이 태국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쳐다 보고 웃는다.
"니들이 나를 쳐다 보고 웃지만, 나는 그런 니들을 보고 즐긴다" 라던 광고 문구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먹어 대던 [카놈찐]을 근래들어선 삼간다.
미원이 어김없이 막무가내로 버무려진 국물임에 틀림없고,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잠시 뒤 젓가락 같은 걸로 휘휘 저어 주는 것이 기본인데...무성의하게 삶겨져 국수 라기 보다 수제비 라고 해야 될 정도로 면발은 서로 엉겨 붙은 채로 삶겨져 나온 허연 국수 또한, 함부로 먹기 전에 반드시 건강에 유념해야 할 지금 상황의 내게 이로울리 없겠다는 생각이 앞서고 애써 식탐을 자제 한다.
그렇더라도, 어딜가나 방콕시내 번화가나 변두리 곳곳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커다란 카놈찐 냄비안에서 따끈 따끈한 국물이 보글 보글 거릴때면, 방앗간에 주저 앉는 참새 마냥 그렇게 공연히 멈칫거리며 테이블 위로 손이 저절로 간다.
[아휴. 이거 주저앉아 한 그릇 후딱 먹어치우고 일어서면 딱 좋겠네]
거의 습관처럼 몸에 베어 버린 [카놈찐]중독이지만... 이젠 매사에 사소한 음식하나에도 유념하고, 몸을 망가뜨릴 일은 삼가야 할 만큼 온실의 화초가 되어 버린 나로서는 감정과 욕구가 딱 거기까지만 가야 한다.
[카놈]은 간식이란 뜻의 태국말이며 [찐]은 중국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간식이란 뜻을 형성하게 되는 단어 임에도, [카놈찐]은 태국요리도 아닌 중국 요리도 아닌 국적불명의 간식도 아닌 주식도 아닌 어정쩡한 요리인 셈이다. 게다가 [카놈찐]은 변변한 식당에서는 팔지도 않는다. 그저 길거리 행상 식당들이나 먼지 폴폴나는 더러운 길거리에서 생선 같은 것을 푹 고아서 멀건 어죽을 만들고 갖은 양념을 하고 싸구려 어묵 알을 섞어 놓고 끓여서 국수와 함께 내 놓는다.
그나마 잘 나가는 식당들의 야채 들은 싱싱하고 양이 많지만, 대체로 길거리의 허접한 식당들은 말라 비틀어진 야채에 파리가 들들 볶아 대는 그런 먹거리를 얹어 놓고 장사를 한다.
그래도 손님은 늘 있다는 것이 신기 하긴 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시작되고 난 이후 부터 내게 생긴 새로운 습관이 하나가 있다.
[카놈찐] 식당을 지나칠때면, 테이블 위로 습관적으로 손이가서는 그리고, 어김없이 집어 드는 [갓끈 동부]
몇 조각 잘근 잘근 씹어 먹으며 애써 달래고 식당주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생글 생글 웃어 준다.
좀 바지런을 떨면, 시장에서 싱싱한 것을 골라 사서 깨끗이 흐르는 물에 씻어 내고 토막 토막 썷어서 뜨거운 물에 대쳐내거나 각종 요리에 버무려 익혀 먹으면 더욱 고소하고 아삭아삭 할텐데,
성미 급한 나는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갓끈 동부]가 손에 잡히면 그냥 우거적 우거적 씹는다.
그 천박함과 촌스러운 비린맛에 나는 한동안 사로잡혀 있다.
오늘도 딸랏 끌롱떠이에 가서 25바트 어치 한 뭉치를 사왔다.길쭉하고 실쭉 셀쭉 꼬여진채, 자라나는 푸른.... 콩 줄기를 먹는 것이니 콩과 곡류 라고 해야 옳은지, 푸른 줄기를 먹다 보니 아직 영글지 않은 생콩도 함께 먹게되는 것 뿐이니 야채라 해야 할지 모를 애매 모호한 고놈을 한뭉치 사들고 왔다.
이것이 농약으로 버무려 진채 길러질텐데 날걸로 이렇게 먹어도 괜찮은 걸까?
PS :
[갓끈 동부], 롱빈(Long bean, long china bean,Vigna.unguiculata, Aspalagus bean)이라고 하며 대체로 중국토산 식물처럼 여겨지지만, 우리 재래의 작물이라 한다. 한국 재래 작물 [갓끈 동부] 누군가 속시원히 이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쳐 줄 사람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