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M'
빌려온 글입니다만
태국살기를 원하는분들께 멧세지가 있는거같습니다 ^^
40대 MBA인 뉴요커 M씨는 이혼 후 사업을 정리하고
푸켓에 왔다.
연간 1000만달러 매상의 애완견 껌 공장을 18년간 운영한 경험으로 경영에는 자신이 있었다.
해변가에 집을 사고,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빨간색 스포츠카를 구입했다.
스킨 스쿠버, 사냥, 승마도 배웠다.
싱가포르, 홍콩을 여행 하거나 아니면
종일 비치에서 빈둥거렸다.
놀기만 하는 것에 무료해지자 다시 사업을 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고급호텔의 부티크를 운영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가죽 제품을 취급키로 하고 태국인 파트너로 T변호사를
골랐다.
지분 51%가 T의 이름이지만 명목뿐이고 약간의 커미션 수입으로 족했다.
인테리어 공사 때 M은 일꾼들에게 발끝으로 이곳저곳을 고칠 것을 지시했다.
T는 태국인에게 발로 지시하는 것은 굉장한 모욕이라 했으나, ‘내가 고용인이니까, 내 방식에 따르던지 싫으면 그만둬라’며 듣지 않았다.
오픈 행사에 스님들을 초빙하는 것도 ‘사업이 내 종교’ 라며
일소에 붙였다.
그날 M은 카페트에 튀어나온 못에 걸려 넘어지고 발목을 삐었다.
또 M은 배달된 가죽지갑, 자켓, 신발 등을 찾고자 공항에 갔으나, 세관 직원과 싸우고 빈손으로 왔다.
이를 수습하는데 T가 10분 이상을 전화로 빌고 빌었다.
그럼에도 원가 두 배의 통관비용과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M은 세일즈 할 때 프론트 직원에게 사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이에 담당자를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외국인인 사장을 만나길 원하지 태국 직원과 시간낭비
하고 싶지 않다’고 일갈했다.
결국은 아무도 못 만나고 명함을 남기지만,
명함도 그가 로비를 떠나기 전에 쓰레기 통으로 버려진다.
매상은 없고 지출비용은 늘어날수록 태국에 대한 인상은 나빠졌다.
태국인이 존중하는 것을 일부러 무시하기 일쑤고,
태국어 한미다도 배우려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주위 태국인 역시 M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 집에 도둑이 들었다.
다음 주에는 오토바이를 타는데 돌이 날라 왔다.
점점 재산은 바닥을 보인다.
열대 휴양지에서,
그것도 본국 보다 훨씬 비싼 가격의, 가죽 제품은 흥미로운
쇼핑 품목이 아니었다.
결국은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일 정도가 됐다.
하지만 그 집도 공유지에 건축된 불법 건물로 일주일 내 철거하라는 통지가 날라 왔다.
M은 파산을 하기로 하고 재고품을 원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떨이 세일’을 했다.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서는데 경찰관이 들어 닥쳤다.
침대에서 마리화나를 찾아냈다.
M은 평생 마약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혐의에 풀어나기 위해선 마지막 한 푼까지 다 써야 했다.
출소해 가까스로 뉴욕행 편도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다.
그가 푸켓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났다.
현재는 사촌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장부정리 일을 한다. 아무도 그가 떠난 것에 놀라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1995년7월4일 태국 ‘네이션지’에 게재된 Steve Rosse의 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