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점차 영어로 소통하는가
[한겨레] 경제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가 영어를 “아시아의 제1언어”라고 칭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영어가 제1언어라는 건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든 논란을 불러 올 명제다. 아시아의 작은 두 나라 부탄과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70만명이 사는 부탄과 면적 640㎦의 싱가포르 모두 정부와 학교에서 영어를 주 언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부탄에서는 모국어인 드종카도 정부에서 함께 쓰이며, 다양한 중국어 방언이 제1언어로 구사되는 싱가포르에서는 말레이어, 만다린어, 타밀어가 공식 언어로 함께 쓰인다.
아시아의 식민지 관리들이 두려워한 것
그렇다고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가 억지 기사를 썼다는 말은 아니다. 첫째 많은 아시아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잡지가 타깃으로 삼고 있는-은 다른 언어보다 영어를 선호한다. 인도, 필리핀이 그렇고 아마도 말레이시아와 파키스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둘째 영어는 점차 아시아의 다른 나라끼리 소통하는 언어가 돼 가고 있다. 서아시아의 아랍어, 중앙아시아의 러시아어, 남아시아의 우르두어(힌두어의 일종),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어, 동아시아의 만다린어 등 특정 지역에서 통용되는 ‘국경 간 언어’가 있긴 하지만, 영어는 이 모든 곳에서 통용된다. 이를테면 캄보디아 사람이 타이 사람, 이스라엘 사람이나 터키 사람에게 말을 걸 때, 그는 영어를 쓸 것이다.
아시아에서 영어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는 정치·군사적 침략으로 대표되는 식민주의의 역사 탓이기도 하다. 15세기까지만 프랑스어를 선호하던 서구의 엘리트들은 아시아에 진출하면서 각각 영어와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등을 쓰며 세계 각지의 해안 무역도시를 네트워크로 묶었다. 정치적 압력과 무역 압력, 군사 위협과 함께 영어는 영토를 넓혀 갔다. 하지만 영국 제국주의 역사에서 일부러 영어를 장려한 지역은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식민지 관리들은 아시아 언어를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어떤 관리들은 아시아인들이 영어 배우는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식민지 통치자들이 읽는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사상을 받아들인 아시아인들과 노동시장에서 경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영국인들의 경우 단 몇 년의 모국어 수업만 들을 수 있었다. 반면 대부분의 식민지 주민들은 자신이 알아서 영어를 배워야만 했다. 영국 문화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영어가 경제적 이익을 주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어를 가르치면 노예화” 간디의 역설
미국이 제국주의적 형태를 띤 건 한참 뒤였다. 1898년은 하와이와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필리핀을 미국이 합병한 해다. 영국과 달리 미국은 교육·문화 정책을 우선했다. 1918년 이미 필리핀인 7%가 영어를 사용했고, 20여 년 뒤인 1939년에는 26%로 늘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말미까지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아시아를 지배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영어의 영토가 이렇게 확장되리라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식민주의가 영어의 확장을 제도화한 건 확실한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공식적 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 나타난 신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도 영어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기여했다. 간디는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수백만 명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그들을 노예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도 독립투쟁도 그의 찬란한 영어 구사력 때문에 잘 알려지고 효과적으로 기능했다는 점도 사실이다.
번역 남종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