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빈둥거리기] 아침시장 풍경
치앙마이도 3월부터 르두런(여름)이 시작됩니다. 한낮에 바나나 껍데기를 베란다에 던져 놓으면 과자처럼 바싹 마를 정도로 엄청난 더위가 도시를 뒤덥지요. 그러나 몇 년 살다보니 나도 어느새 태국인이 다 됐나 봅니다. 두툼한 잠바를 걸쳐입고 아침을 보러 콘도를 나섭니다. 새로 이사온 콘도에는 예쁜 싸우(츠자)는 안사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조용해서 좋기는 한데 현재 비어있는 옆방에 얼른 예쁜 싸우가 이사를 와 친하게 지냈으면 더 좋겠습니다.
창푸억 문에서 라차팟 대학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평소의 번잡함과는 달리 매우 한가합니다. 하늘을 보니 덥고 건조한 하루가 시작될 모양입니다.
뚝뚝이가 아침부터 시장엔 왠일 일까요. 아마 간단한 요기로 아침을 때우고 한시라도 빨리 영업을 뛰려나 봅니다. 뚝뚝이 기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태국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대상 1호라고 생각합니다. 뚝뚝이가 뿜어내는 매연만 없다면 치앙마이 공기가 지금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대기오염의 주범이지요.
태국에서는 어디를 가도 아침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인 스님들의 탁발입니다. 무언가 잔뜩 든 비닐통투를 들고 가는 탁발승들은 수행중이기 때문에 맨발입니다. 탁발승이 지나는 길가의 어딘가에는 꼭 탁발승에게 시주할 음식단지를 팔고 있는데, 그걸 사서 바로바로 지나는 탁발승에게 전해줍니다. 어쩐지 정성이 담긴 시주와는 좀 멀어보이지만, 어쨋든 하루가 이와같이 시작되는 걸 보면 틀림없는 불교의 나라입니다. 도촬을 하다가 눈매가 매서운 스님에게 들키자 움찔했는지, 사진이 초점도 안맞고 심하게 흔들렸군요.
이른 아침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많군요. 잠시 후 시작될 정신없는 하루를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걸까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입니다. 일찌감치 나온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남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합니다.
드디어 가게가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어느 주인은 가게 앞에 오늘도 무사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하며 향을 피워 놓습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준비한 음식인지는 모르지만 두꺼운 파인애플인만큼 껍질을 조금이라도 벗겨놓으면 좋을텐데 약간 아쉽습니다. 그래도 뚜껑을 따 놓은 야자수 열매에 빨대는 필수입니다.
시장의 내부는 잠시 후 들이닥칠 손님에게 팔 음식을 내어 놓느라 손길이 분주합니다. 남찜(양념장)과 남프릭눔(고추장과 비슷한 북부 고유의 음식)을 작은 비닐에 담아 팔고 있는 아주머니는 어제 별로 안좋은 일이 있었는지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질 않는군요. 하긴 부족한 잠을 깨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쉬지도 못하고 바로 가게로 나왔을텐데 신나는 표정일리는 만무합니다.
정육점은 가장 바쁩니다. 오늘 들어온 고기를 부위별로 분류하고 썰어 놔야 때맞춰 신속하게 팔 수 있겠지요. 시장과 붙은 길 한켠에는 생선차가 다가워 생선가게 주인들을 하나 둘 모읍니다. 한 아주머니는 차에 올라가 직접 고르는 군요. 죽은 녀석들을 고르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쁠라톳(튀김)으로 쓰일 모양입니다.
야채가게엔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더불어 가게마다 따끈따끈한 시장표 음식들이 진열대이 하나 가득 채워집니다. 태국인들은 대체로 외식을 즐깁니다. 가뜩이나 더운데 좁은 집에서 음식 만들어 먹는 것도, 또 남은 음식을 안상하게 보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지요. 밖에서 사먹는 게 식구가 적은 경우 여러면에서 오히려 경제적이기도 합니다.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까요. 재래시장 대신에 현대식 마트에나 어울릴 것 같은데, 갖가지 유산균 음료가 얼음물 속에 어지럽게 담겨있습니다.
슬슬 먹거리를 골라야겠습니다. 뚜어라(마리당) 25밧이라고 적힌 생선이 먹음직스럽게 보이는데, 어쩐지 손이 가지는 않는군요. 조금 큰 놈들은 30밧인가 봅니다. 육포도 보입니다. 태국의 소고기는 우리와 달리 유난히 질기고 맛이 없는데 육포는 맥주와 먹으면 봐 줄만 합니다. 그러나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지는 않으니까 그냥 지나칩니다.
아니 아침부터 누가 이 튀긴 닭을 먹겠다고 하는 걸까요. 그런데 어느새 카메라를 떠받치고 있는 왼손 손가락에는 이 녀석들의 날개와 다리가 하나씩 들어간 비닐봉지가 걸려있군요. 이렇게해서 오늘 아침 메뉴는 예상밖에 까이텃(닭튀김)과 카우니여우(찹쌀밥), 그리고 남프릭눔이 되었습니다.
앗, 그런데 뒤를 돌아보자 훨씬 맛있게 보이는 까이양(닭구이)이 숯불 위에서 붉게 익어가고 있군요. '저 녀석으로 살껄'하는 생각이 스칩지만 아침부터 과식할 수는 없어 참습니다. 역시 작은 것일지라도 충동구매는 후회를 부릅니다. 다음번 아침 메뉴는 저 녀석으로 잠정 결정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