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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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살기

옙타이 9 2758
1.

1999년 12월 31일
자정을 향해 내달리는
지하철 안에는
살썩는 냄새로 진동을 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면
빗장처럼 채워진 겨울 냉기마져
사람의 온기로 녹일줄 알았다면
그건
동화 같은 얘기였다.

잠시 짧은 숨이라도 내쉴라 치면
그 역겨운 냄새가...

으으...


그렇게 내달려 사람들은
종로에 집결했다.

여전히 떼지 않고 너덜거리는
종말론 어쩌고
밀레니엄 어쩌고 하는
거무틱틱한 영화 포스터들이 겨울밤 찬바람을 머금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종각에서는 치는 타종과 함께
폭죽과 불꽃을 터트렸다.




2.


1011년 하고도
어느새
1월 4일
세월은 어느틈엔가

나를 이곳에
이렇게
발가 벗겨 놓고서

붙잡을 수 없을 만큼 저어만치 달아나고 있다.

거짓말 처럼
아니...
영화처럼


삽시간에 엄청난 시간을 내 앞에 접어 버렸고

접혀진 10년의 시간 사이에
이런 저런 잡다한 기억들만이

남겨졌을 뿐...

접혀져 버린 시간에

덩그라니 발가벗겨 놓고

나를 버린 시간을 향해

눈물 흘린다




시간은 이미 내가 잡을 수 없다.




3.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작은 소망이
꼭 있다.

2000년을 맞이하던 나는
세상을 그제야 볼줄 아는 눈을 가졌다며
20대를 미련없이 훌렁 벗어 버렸고

눈오는 날 누렁이 마냥
기쁨을 맞으며 폴짝거렸었다.

이젠 아무리 다른 나라
개수작을 갖다 붙인다 해도
내 나이는
40대에서 도저히 뺄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하고 많은 사람은 여전히
나이는 커녕
거울속의 미소마져 제대로 거들떠 볼 겨를 없이

먹고 사는 문제에 바쁠테지만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나는
섣불리 맞이해 버린 40대를 푸념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어리다면..

더 건강하다면...




할일은 많고 욕심도 많고...





4.


사람들은 모른다.

으슬 으슬 춥고 허기지는 태국의 겨울을

여전히 사람들은

나시티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더위에 헉헉대는 관광객들로

도심가에 넘쳐 나지만


그 저쪽 한귀퉁이에서
추위에 벌벌떨고

가죽점퍼를 꼭꼭 여미는
내 행색에 키득 댄다.


태국에서 사는 나는

여전히 춥다.



자고 일어나면
아랫목까지 냉기가 나고
찢어진 문풍지 사이로 밀고 들어온 찬바람에

냉수 사발마져 얼리던

그때의 그 80년대 고향땅의
겨울이.....


그곳을 떠난지도 한참이고
그곳과 떠난지도 한참인데


춥다.



왜 태국에는 차가운 내 두손을 들이밀고
차가운 내 두발을 들이밀고

밤새
따듯할 그런 아랫목이 없는 걸까?






9 Comments
촌놈포차 2011.01.05 00:51  
가슴이저려옵니다 남의애기가아닌 내애기같은 어느덧 40이넘어 앞만보고달려온 인생길이 허망하게 느껴질때 미래가 불안할때 가슴이 더욱 시리고 외로워질때 ......한국의아랫목이 너무도 그리울것같은......그래서 나도 동남아에서 뭘바라보겠다는건지...헛된욕심일까요?허황된 망상 치기어린 철부지일뿐일까요? 이대로 수렁에 빠져들어 되돌릴수없는 길을 갈수도있다는 ...그냥 늦은밤 님의 시에 제가 푸념한번했습니다
치앙마이정 2011.01.05 16:23  
50대  후반의  도전 인생도  있습니다  저보다  10년은  더  도전할수있는  시간이  있으니
보이지않게  한번만  더  주먹을  움켜  지시고  한발자욱 식만  앞으로  앞으로  가시면 
어떨까요?  가까이  계시면  그냥  소주  한잔에  님의  격정을  날려  드리고  싶은  데
힘냅시다~~~~
딸록탱 2011.01.06 22:25  
ㅎㅎ저역시 가슴이저려오네요!!남의얘기가아닌,내현실이 되어버려쓰니,하지만 열씨미 발버둥치며 살수밖에없는것이 인생인걸~!! 아무쪼록 아프지말고 건강하기만을 바랄뿐이지요!!^^
manyto 2011.01.10 12:25  
화이팅 합시다!!
대왕람세스 2011.01.19 18:03  
휴~~~ 읽고나니  심난하내요..  힘내새요  생각을 바꿔도 보시구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황제여행 2011.01.26 18:07  
아~ 같은 40대에, 느끼는바가 크고 슬프네요.
저도 늘 10년만이라도, 어렸으면 하루하루 날가는게 너무 서럽네요.
40대라는 애모 모호한 나이, 여기서 나오면 갈덴 애매하고,
회사에서 맨날 공상에 빠져사는 1인 같이 넋두리해봅니다,^^;
촌놈포차 2011.01.30 10:10  
오늘도 아마 내일도 태국이란나라 아니 타국이란곳에 환상에 빠져서 지금 자신이있는곳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탈출구 돌파구의 대안으로 태국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것입니다. 저도 구정지나서 바로 여행가지만 이번여행은 좀더 현실을 직시하고 유연하게 대처할수있는 힘을 키우고 현재의 삶에서 보다큰 만족과 비젼을 찿을수있는 여행이 되길 바라고있습니다.삶은 잠깐인데 순간의 선택은 냉엄 하겠지요.......
방보통메오식당 2011.04.03 21:01  
글이 시적이고 상당한 수준의 글이네요.. 품위있으십니다.
hyul3 2011.04.23 21:13  
너무나 외롭고 스산하고..하지만 진심으로 멋진글.. 맘먹기에 따라서 햇살이 유독 따뜻한 날 그러날이 잇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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