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사람과 한국 사람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잘 맞느냐 안맞느냐를 영어권에서는 'chemistry'로 표현합니다. 둘 사이가 잘 맞으면 케미가 맞다고 표현하죠. chemistry는 말 그대로 화학이라는 뜻으로, 아마도 분자와 원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분이 인간관계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데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민족이라도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르지 않다면 그만큼 인간은 다양하지 않다는 의미이고, 다양하지 않은 모든 생물종은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멸종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은 서로 공유하는 바가 있죠. 역사, 문화, 법과 같은 제도 등. 이와같이 같은 민족이 공유하는 것은 그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와(和)를 중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어 개인들간의 충돌을 극도로 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섬나라 안에서 서로 다르다고 치고 받고 싸우면 결국엔 모두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과거 시대에 만들어진 문화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선 타인을 배려하는 정신이 발달하게 되었죠. 영국에서 신사라는 말이 나오고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나라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같은 민족 공통의 문화가 과거에는 각 나라의 민족이 생존을 하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면,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부터는 오히려 국가 발전을 막는 장애가 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교통과 통신 수단, 인터넷이 발달하면서부터 꽤 오랫동안 정체성 문제를 겪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이죠.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소위 말해 꼰대 문화, 헬조선 문화로 불리우는 권위주의 문화는 사실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던 문화이기도 합니다.
권위주의 문화는 윗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전제가 되어야 함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특유의 오리지날리티를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맹목적으로 믿게 하기 위해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어떤 상징이 필요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를 종교가 대신했지만, 우리나라는 유교라는 예의범절문화에 이 역할을 맡깁니다. 중국, 몽골, 거란과 여진등 북방 이민족과 일본 사이에 껴서 역사적으로 3천번이 넘는 크고 작은 침략 속에서 한국민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단결 뿐이었습니다.
국가를 10명 정도되는 개개인으로 축소시켜 생각해 본다면, 좌우 양쪽에서 10명씩 쳐들어온다 하더라도 10명이 모두 단결해 있으면 쉽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적을 물리친 많은 전투들이 정신승리의 결과였기도 합니다. 내 나라 내 민족을 지켜야 한다는... 그리고 국민들이 유사시 모두 단결하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왕과, 한국이라는 (조선 등)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집단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죠. 이 믿음은 어떤 논리도 참견해서는 안되고, 그저 맹목적이어야 합니다.
만약 10명 중에 배신자가 2명 정도만 있어도 이 상황은 뒤집힙니다. 밖에서 10명이 쳐들어오는데 배신자가 2명이면 배신자를 빼고 8 대 10으로 맞붙을 것 같지만 2명이 쳐들어오는 10명에 붙으니 실제로는 8대 12가 되죠. 게다가 배신자 2명은 말 그대로 한국의 10명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는 사람들이죠.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권위주의 문화는 현재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실 정치권의 최순실 사태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죠. 위에서 지시내리는 것에 모두가 알면서도 입닫고 있는 상황..
이에 비해 태국 사람들은 어떨까요?
1차대전부터 2차대전을 거쳐 냉전 시기까지 태국이 어떻게 해서 자국을 지켜왔는지를 보면 태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나타납니다.
영국이 미얀마에, 프랑스가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관심을 갖고 식민지화 하려던 것을 미리 알아챈 태국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줄다리기 외교를 통해 줄 건 주면서 중립국을 지켜냅니다. 1차 대전 당시 친독일 노선을 가다 독일의 패전이 짙어지자 바로 반독일 정책으로 바꿉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침략하자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일본에 길을 내주죠. 그러면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 형식적인 선전포고를 합니다. 다만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자 미리 정부와 국왕 차원에서 손을 써 친미 정책을 통해 미국에 협력함과 동시에 연합국 측에 붙습니다. 6.25전쟁이 터지자 우리가 알기로는 태국이 한국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파병했다 하지만 실은 2차대전의 패전국 지위에서 벗어나 연합국에 협력하고 미국 편에 붙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에 파병을 합니다. 전후 베트남 전쟁때도 꾸준히 미국에 협력 하여 오늘의 파타야가 탄생했죠.
태국은 대외적으로 반공 국가 입니다만 사실 주변 베트남, 캄보디아 등 공산주의 국가들과 친하게 지낸 나라이기도 하죠.
우리나라 사람들과 태국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전략에 있어 근본적으로 반대인 사람들입니다. 민족의 생존 전략이 다른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 케미스트리가 맞는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각 민족의 DNA에 각인된, 생존을 위해 무엇을 더 중시 여기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태국 사람들의 기이한 개인주의라던가 한국인으로서 이해 못할 부분에 대해 욕을 하거나 후진국의 면모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한국민족 특유의 기질에서 벗어날 수 없듯, 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것은 각 민족이 여태껏 생존할 수 있었던 전략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과거 지중해에서 스파르타와 카르타고가 왜 멸망했을까요? 두 나라 모두 강한 남자, 강력한 군사력에 치중한 나머지 집단적으로 유통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전세가 불리할 땐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죠. 무조건 용맹한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옳다면 현재 지구상엔 물리력이 강한 나라들만 살아 남아있어야 할 겁니다.
우리나라에 만약 태국 사람들이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일본과 최대한 쇼부를 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 일본 역시 무턱대고 한국을 점령하자! 하는 과격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애초에 정한론 자체가 당시 일본 내부의 혼란한 정세에서 몰락 무사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택했던 전략이었으니까요.
결과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네요.
일본과의 쇼부가 성공 -> 일본에 많은 이익을 안겨주고 나라를 지킨다. 그러나 일본 패전시에도 경제적으로 일본에 지속적으로 매여 있는 경제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일본과의 쇼부가 실패 -> 일본에 나라를 넘겨주고 일본의 통치 하에서 편하게 사는 길을 선택. 마이뺀라이~ 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우리의 민족성 자체와는 크게 상관 없었지만, 벗어났든 벗어나지 않았든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끝까지 일본에 저항했을 것입니다. (아마 현재도 저항하고 있었을지도..)
태국에서 사는 한국 분들이 아마 태국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기묘한 사고 방식은 어쩌면 민족성 자체에서 기인한 것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바꿀 수도 없고, 잘못된 것도 아니죠. 그 나라의 과거 생존 무기였던 셈입니다.
태국 사람들은 이와 같은 면 때문에 우리보다 융통성이 더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 융통성이 항상 긍정적인 의미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뚝심도 없고 끈기도 없을 수 있죠. 2차대전 당시 요리조리 붙을 수 있었던 것엔 사실 국민들 사이에서의 암묵적 동조가 필요했을 겁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줏대 없는 사고 방식이, 그들에게 있어선 나라를 끝까지 서양열강과 일본으로부터 중립국으로 지켜냈던 전략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들의 사고 방식은 오늘날 태국을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국가로 만들어 놓기도 했죠. 우리식 사고 방식은 특유의 밀어붙이는 끈기를 통해 한국을 기적적인 경제 발전의 선진국으로 올려놓기도 했구요.
한편으로 경제 수준이 낮지만 태국 국민들이 좀 더 느긋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이 경제 수준이 무척 높지만 행복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이기도 하겠죠.
개인 수준에서도 그렇지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결코 변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