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빈둥거리기] 현장스케치 - 쏭끄란 축제
치앙마이는 지금 대규모 시민군(?)들이 거리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은 현재 물총과 빠께쓰로 무장, 아군과 적군의 구분없이 마구잡이로 물을 쏘아대고 있다.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 대규모 물싸움 축제의 현장을 가까이서 취재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종군기자'를 자청했다.
시민군들의 공격으로부터 카메라를 방어하기 위해 조잡한 방수커버를 만들었다. 방수커버 제작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10분만에 완성됐다. 뷰파인더와 상단 액정만 투명비닐(담배포장비닐)을 사용했고, 탑스 수퍼마켓에서 협찬한 비닐봉지가 기본 재질로 이용됐다. 대물렌즈 부분이 노출된 것을 제외하면 완벽한 방수시스템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렌즈만 버리고 바디는 보호할 수 있다. 카메라 방수장비는 이걸로 끝이다. 계속 보고 있자니 눈물겹다.
집을 나서자마자 순식간에 물벼락을 맞았다. 시민군의 표적은 카메를 들고 있는 종군기자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는다. 어깨에 물을 뿌리며 이들은 하나같이 말을 건넨다. '싸왓디 삐마이나 캅~(새해 인사)' 쏭크란은 태국의 설이다. 이럴때는 그냥 가벼운 미소나 '캅폼'으로 대응하면 된다.
정오를 넘기자 거리는 갈수록 통재가 어려워진다. 이미 아스팔트 위에는 전쟁터의 탄피같은 빈 맥주캔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닌다. 어느나라건 축제의 현장에 술이 빠질수는 없다. 한켠에서는 최신 유행가가 스피커를 통해 볼륨을 높이고 있다.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한무리의 젊은이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물싸움을 한다.
센탄지구 현장은 이미 만원이다. 백화점 주변에는 인근 나이트클럽과 호텔에서 대형 무대를 설치해 더 많은 시민군들의 집결을 유도하고 있다. 무대 위에는 예외없이 복장을 통일한 예쁜 처자들이 춤을 추고 있다. 시민군들은 각양각색의 물총을 하나씩 들고 있다. 간혹 평범한 관광객이던 외국인들도 오늘만큼은 물총 게릴라를 자청했다. 비록 날은 덥지만 표정만큼은 즐겁다.
적군에게 웃으면서 총을 쏘아대는 모습이 재미있다. 특히 힌티셔츠에 검은색 브라를 한 처자는 시민군들의 집중포화를 받게 마련이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특정회사에서는 단체로 픽업차량에 올라타 조직적인 전투를 벌인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전투현장에 나선 처자들은 그러나 뭇 사내들의 집중공격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물세례가 멎은 틈을 이용, 현란한 댄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해자똥물지구 현장도 시민군의 물세례와 아우성, 노래소리가 뒤섞여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특히 해자 안쪽 도로보다는 바깥쪽 도로에서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진다. 총알을 공수하기 위해 해자의 더러운 물을 빠께쓰로 연신 퍼올린다.
물세례를 맞다 못한 일부는 숫제 해자 속으로 ‘풍덩’ 소리와 함께 몸을 던진다. 해자 주변 잔디에는 전투에 지쳐 휴식을 취하는 시민군과 가족이나 친지들과 간식을 먹는 축제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취재진에게 노출을 피하기 위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도 있다. 물론 물총은 하나씩 차고 있다. 재미있는 율동을 선사하며 즐거움을 더해주는 모양이 영락없는 문선대다.
전쟁은 늘 용감한 영웅을 만든다. 뚝뚝 위에서 춤을 추는 여성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속옷이 비치는 흰옷을 입은 여성도 복장만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계산된 연출일지도 모른다.
꼬맹이들은 종군기자 최대의 적이다. 물세례로부터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렌즈를 아래로 향하고 이동해야 하는데 꼬맹이들은 그 특유의 저자세로 웅크리고 있다가 느닷없이 아래에서 위로 쏘아댄다. 정면으로 맞을 경우 렌즈에 치명적이다.
쏭끄란 축제의 시민군은 남녀노소가 따로없다. 모두가 전쟁의 주인공들이며, 이 전쟁의 기간동안 태국사회를 지배하는 양극화는 어디에도 없다. 원래 쏭크란은 태국의 새해를 뜻하며 그 시작을 이웃들과 함께 축복을 비는 축제이다. 적어도 이 기간동안 만큼은 ‘해원상생, 대동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저 거리의 낙관적인 표정처럼 태국인들 모두에게 올 한해 행복한 일들만 계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