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김마루.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가 있습니다.
다음은 그 한국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울음이 많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슬픈 영화라도 볼라치면 수도꼭지가
되어버리곤 했던 그런 소년이었지요.
그 아이에겐 할머니의 품안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흔히 할머니가 기른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이도 여린 구석이 많았고
모든 걸 쉽게 포기하곤 했습니다.
아이는 자라나며 할머니가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동생들의 엄마가 자신의 엄마라는 것.
젊고 예쁜 엄마대신 언제나 파파할머니의
손을 잡고 등교하던 아이는
동생들을 참 많이 부러워하며 자랍니다.
30년만에 처음으로
"어머니"란 말 대신 "엄마" 라는 말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전화선을 타고 흐를 때
그 아이의 엄마는 조용히 흐느끼시더군요.
아이는 자라나며 책벌레가 됩니다.
할머니가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지식은
자신의 과거사가 고작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역사는 아이의 역사가 되고
남편과 며느리에 대한 증오가
아이에게 세뇌되어 가면서
견딜 수 없었던 아이는
책 속으로 도망가버립니다.
책 속에는 그 아이가 늘 꿈꾸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언제라도 아이는 자신만의 상상속에서
늘 웅크리고 잠들 수 있었지요.
포근한 꿈을 꾸며 말입니다.
언젠가 자신도 이런 글 들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면
볼이 빠알개지곤 했답니다.
소년은 책을 사랑하면서 자라나
청소년이 됩니다.
수줍움을 잘 타며
남모르는 열등감도 많았던
그런 소심한 학생이 되었지요.
고 3을 얼마 앞두고
할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버스문에 발이 끼어
꽤 멀리도 질질 끌려가셨더군요.
팔을 자르고 다리엔 쇠심을 박고....
그렇게 자리에 누워
그토록 미워하던 며느리의 수발을
십 년 넘게 받으시다
아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
돌아가십니다.
고 3 학생이 된 아이는
늘 탄광으로 도망가
광부가 된 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잠깁니다.
그 아이 곁에
자그마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고아라고 소개했던 그 친구.
아이를 사랑한 첫 번째 남자입니다.
어이없게도 첫 키스를
남자에게 당한 아이는
갑자기 세상이 어두컴컴해 집니다.
이 후 아이는 대학을
두 군데나 옮겨다니며
혼란스러운 청년기를 맞이합니다.
모든 일에 자신이 없었고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은
내성적인 지방 대학생.
첫미팅에서
너무나 손을 떤 나머지
설탕그릇을 뒤집어 엎은 후
커피라는 걸 마시지 않게 된
청년이
이등병이 됩니다.
6월 항쟁의 넥타이 부대가
도로를 뒤덮었을 때
이등병이 된 아이는 충정봉을 들고
진압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때까지 여자라곤 사귀어본 적이 없던
아이는 첫면회를 온 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말년 휴가를 6개월 앞 둔 병장이 될 때까지
아이는 짝사랑의 늪 속에서
일병과 상병 생활을 거칩니다.
겨울 동계훈련의 칼바람 속에서도
그녀는 아이와 함께 하였고
한 여름 밤 모기 회식 속에서도
아이는 그녀를 생각 했습니다.
전역을 6개월 앞 둔 아이가
포상휴가를 나갔을 때
친구는 애인과 헤어졌다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합니다.
그 후 삼개월
아이는 매일 세 통의 편지를
친구의 전 애인에게 보냅니다.
삼개월 후
그녀에게서 첫 답장이 온 후
아이는 군대에서 천국을 맛봅니다.
제대와 동시에 지옥도 맛보았지만
아이는 그래도 살아야 했습니다.
"딸 애는 이대를 나왔는데
서울대 정도는 다녀야 사귈 만 하지..."
자그마한 지방대학 신입생으로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한 아이는
천사를 만납니다.
다시는 사랑이란 걸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이에게 천사는 사 년 내내 헌신합니다.
아이는 졸업과 동시에 천사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아이와 천사의 행복한 신혼은
본가의 화재로 일순간 사라집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시아버지의 병간호등으로
지친 천사에게 할머니의 장례식마저 찾아옵니다.
어느날 아이는 천사를 데리고 캐나다로 떠납니다.
그 해 겨울
아이와 천사는
눈 속을 헤치며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합니다.
"서울대 나온 친구들도 직업을 못잡아
방구석에서 빌빌대는데
그 정도 영어실력 가지곤 힘들거야..."
아이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천사를
몰래 숨어 지켜보며 이를 악뭅니다.
직장을 잡았다는 소식에
해 맑게 떠올리던 천사의 미소를
아이는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이는 주식에 손을 대고
큰 돈을 벌기도 하지만 전 재산을 날리기도 합니다.
아이는 천사의 사랑을 저버리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결국
송정 바닷가에서
폐인이 된 아이는
자살이란 걸 생각합니다.
밥 한술 뜨지 못하고 소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이는
"치앙마이란 곳이 있어요...." 란
부산 친구의 말에 이끌려
태국 땅을 밟습니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지 햇수로 3년,
연수로 2년이 된 아이는
지금 태국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 곁을 떠난
부산 친구 마루가
찍어준 수 많은 사진들을 매일 매일
글과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 베트남을
버스와 오토바이로 함께 여행했던
내 친구 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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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평소에 마루가 자주 들렸던
태사랑 게시판에 마루가 찍어준 사진을
아이의 글과 함께 올립니다.
사적인 사진이지만
동남아의 많은 모습들이 담겨있으므로
부디 너그럽게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요즘은
엔돌핀의 "남땜깨우"(남:물,땜:가득차다,깨우:잔 = 물이 가득찬 잔)와
롯소의 "십시이클랑"(십시:14, 이클랑:다시 = 다시 열네살이 되어)을 흥얼거리며
반태국인이 되어가는 아이에게
태국을 소개해 준 좋은 내 친구 김마루.....
고맙다..... 마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