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운 - (4) 다정도 번뇌가 되어
[그래 무엇이 더냐?]
[큰스님, 몇일째 소운 스님 께서...]
[그런 거라면 마음을 주지 말거라. 아직 속세의 때를 다 씻어내지 못하여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야]
[그래도....몇일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아요]
[허허허! 배가 부른게지]
[아니요. 큰스님. 공양을 받기에 마음이 부끄럽다시며..]
[허허허! 그게 배가 부른 게지.. 배가 고프면 먹을게다. 마음 쓰지 말거라]
[아이참...]
동자승은 큰스님의 무심함에 마음이 더욱 무겁게 소운 스님에게로 쓰여진다.
[허허허!!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 질테고 그럼 소운도 발우공양에 함께 할터이니 염려 말거라. 소운스님 안 드시고 남긴 것 니가 다 먹지 그러느냐. 허허허!!]
뒷짐을 지신 큰스님은 느긋한 여덟팔자 걸음으로 뉘엇 뉘엇 멀어저 가시고 동자승은 무심하게 멀어지시는 큰스님을 먼산 보듯 한 없이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소운스님이 기거하고 계신 방을 한번 쳐다 본다.
방문 앞 나무 마루 밑으로 귀퉁이가 부서져 다듬이돌로 쓰지 못하자 댓돌로 쓰고 있는 하얀 돌 덩이가 놓여 있다.
몇일전 바깥 속세에서 찾아 오신 손님들이 벗어둔 , 요란스런 신반들로 가지런히 놓여 있던 그 댓돌이었건만, 몇일이나 지났다고 흙먼지가 뿌옇게 쌓여있다.
소운 스님께서도 문 밖 출입이 뜸하시고 밖에서 들어가는 이 없으니 소운스님의 하얀 고무신과 그 아래 하얀 댓돌의 흙먼지만 뿌연 것이다.
동자승은 쪼그리고 앉아 소운 스님의 고무신을 고이 받아들고 자신의 승복 오지랍을 한겹 접어 흙먼지를 닦아낸다.
그리고 나서는 댓돌위에 쌓인 흙먼지 도 손으로 탈탈 털어낸다.
쌓여 있던 흙먼지가 못내 마음이 아팠던 모양이다.
[으흠...]
소운스님 계신 방문 앞에서,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기색을 보였으나. 아무런 내색이 없자.
[으흠..으흠...]
하며 연신 헛기침을 해대는 소운,
아직, 아동의 티를 벗지 못한 동자승의 어른스런 헛기침 소리는, 세월의 쏜살같은 소리인양 그렇게 어색하고도 조용히 절간을 흔들어 놓고.
[뎅그렁~ 뎅그렁~]
절간을 지나던 바람 하나가 동자승에게 [마음을 쓰지 말라~]라고 말이라도 하듯 그렇게 처마 끝의 풍경을 흔들어 댄다.
[소운 스님, 저랑 산책 좀 시켜 주세요. 소운 스님]
동자승은 애가 타듯 그렇게 방안을 향해 소리질러 보지만, 감감 무소식.....
[에휴~]
동자승은 체념하듯 한숨을 내 뿜으며 댓돌 위로 털썩 주저 앉는다.
마당에 떨어져 있던 죽은 감나무 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 흙마당 위를 끄적 끄적 그어 대며 나즈막히 불경을 외기 시작하는 동자승.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그러다 다시 기척 없는 소운 스님을 향해 혼잣말을 시작한다.
[소운 스님. 저는 알아요. 스님이 어디가 아프신지]
[저도. 어머니 다녀가시면 아파요. 그것은 심장이지요. 그것은 마음이지요]
[소운 스님 찾아 오신 손님들이 스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거지요. 저도 알아요. 속세의 업을 쌓던 분들이 오시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신지. 우리 어머님께선,
지난번에 여기 오셨을 때, 태국으로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태국에도 절이 있다 하시면서 태국에서 스님이 되면 사람들의 존경도 받는다시며...]
[그런데, 저는 알아요. 어머님이 저를 데려가시려는 이유가 저와 함께 살고 싶으시기 때문이시란 걸..]
[그래서 저는 태국으로 갈수가 없어요. 저는 부처님께 귀의 해야 하기 때문에..어머님을 아프게 할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태국으로 따라 갈수 없어요.
어머님 따라 태국 가서 절에 들어가게 되면 어머님은 더 자주 저를 찾아 오실테고, 그럼 더욱 자주 아프겠지요.]
[소운 스님도. 마음이 아프시지요? 저는 알아요.]
그렇게 혼잣말로 얘기를 하던 동자승은 다시 불경을 한 구절 왼다.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괘碍)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의반야바라밀다 고(無괘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依般若波羅蜜多 故)
[그제 오신 손님들 께서 내려가자 하신 거지요? 하지만 소운스님께서는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신 몸이시니 그럴수 없다 하셨겠지요?]
[스님.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저도 잘 참잖아요. 제가 삼진 스님 노래 불러 드릴까요?]
[소운 스님이 제일 좋아 하시는 그 노래요. ]
동자승의 똘망 똘망한 여린 목소리의 노래가 시작되자, 절간을 기웃대덧 여러 바람들도 잔잔히 잦아들고, 모른척 하시던 안채의 큰 스님 께서도 조용히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이신다.
노래를 부르는 동자승의 눈망울에 조금씩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자. 동자승은 일부러 라도 더욱 음과 박자가 흐트려 지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 세우고...
방안에서 침묵하던 소운 스님께서도 부처님만 느낄수 있도록 아주 조용히 울기 시작하신다.
나에겐 친구가 있었네~
나를 사랑해준 친구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