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 킷와 폼 마짝나이 캅? 콘 이뽄~
태국에 오기전 2년간을
치열하게 법정 다툼을 벌였답니다.
피해자인 저로서는 피해를 보상받아야 했고
진실을 가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가해자와 법정 투쟁을 벌인것입니다.
1심에서 가해자는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항소심을 진행중
법정과 여러 경로를 통해 가해자는 저에게 간곡히
용서를 구했고 더욱이 건강히 극도로 좋지않다는 하소연을 했습니다.
용서했어야 했습니다.
깨끗이 용서를 했어야 했습니다.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그를 용서했어야 했습니다.
저의 차갑고 매몰찬 마음으로 용서 없이 재판은 이어졌고
항소심 진행중 허무하게 한사람의 생명이 꺼져버렸습니다.
네가 직접 죽인게 아니라 지병으로 삶을 마감한 것이라며
자책하는 저에게 주윗분들과 가족의 달램이 있었지만
용서하지 못한 못난 나의 행동으로 인하여
한사람의 생명이 이르게 꾾어졌다는 자책감을 떨쳐낼수 없었고
피해액의 일부라도 돌려 받고
합의 보기를 수도 없이 종용하던 처가까지도
진실나부랑이 찾는다며 송사에만 매달려
집안 돌보지 않았다는 질책이 뒤따랐고
고집을 부린대가는
가장 위로를 받고 싶어 했던 아내에게 까지
결혼을 후회한다는 말까지 저는 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독한놈 하나가 내나라를 떠나
외국생활을 선택할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언제든 필요한 존재가 되려 했는데....
나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에게 까지
필요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구나 라는 서러움을 만나게 되었고
서럽고 분한 가슴을 지울수 있는
어떠한 원만한 해결책도 나는 내나라에서 찾을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추접스런 모습 구차한 모습을 보이느니
싫다면 떠나 주마가 나의 결정이였고
어디 쳐박혀 사랑과도 헤어지고 우와와도 헤어지고
떨거지처럼 헤매다 쪼다 육백치는 놈처럼도 살아뿔고
미친뇬 널뛰듯 촐랑거리기도 하면서 살다 때되면 가자했습니다.
지난날 나는 사라졌고 이제는 없다고
오기하나 끌어안고 태국을 찾은 것입니다.
이제는 없는 품위를 억지로 만들어 더덕 더덕 꿰맞추는 삶도
몸뚱아리에 쳐발라 광내는 삶도 태국에서 나에게는 없을것이고
남위에 올라서 목소리 높일 일도 없을것이고
오면 반갑고 가면 가셨나보다 이고
더우면 웃장까고 눕고
비오면 낼름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와 빗소리를 섞어 그음악에 미쳐서 놀고 자빠져 보고
사람이 그리우면 우와와는 작별한 군상이니
격에 맞춰 수쿰빗 나가 길거리 몸파는 아가씨 옆자리 차지하고
배배 꼬이는 발음 되도 않는 태국어로
“낀 카우 르양”도 떠벌리고
타올라이? 해서 달라는 돈외에 듬뿍 언저서
미친듯 질러 깜짝 놀래켜보기도 하고
다만 에이즈 걸려 죽음 가문의 개망신이니
너는 그방에서 자고 나는 내방에서 처질르고
다만 밤은 언제나 겁나니 온 집안불 절대 끄지 말고
아침이 되어 날 밝으면 집에가라 하고
좋아서 생글생글 웃으며
오래 살다보니 별미친것을 다만나네 하는 모습에는
그래 미친것이다 너는 몸파는 뇬이고 나는 미친것이고
만나도 제대로 만난거다 하고 맞짱구도 쳐줍니다.
언뇬은 대박터진 하루도 만족 못해
집안뒤져 바트화도 챙기고 돈 될만한 것
카메라 핸드폰 만년필 몽창 쌥쳐 튀었지만
열심히 일해야 하는 명분 생겨 좋고
똑같은 걸로 또 사면 되지롱 요뇬아~하고
업어간거 팔아서 헛트게나 쓰지마라 합니다.
읽기에 개운치 못한글 짜증나는 미친글 푸념글은
요기까지 떠벌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그래서~
이제 독하고 모질게만 알았지
용서를 모르고 살아온 못난 인생은
스님이 내나라 떠나기 전
타국으로 가는 길에 저에게 전해주신 말씀~
“악도 인정하고 다만 선을 크게 존중하라”를
가슴에 가지고
남보다 몇배는 더 반성하며 선하게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끝없이 빌어주며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핏 콘 까올리 카오짜이 씨 캅~
(한국사람 실수 이해해 주세요~)하며
다시는 나와 만날 일이 없는 내나라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태국분에게 작은 돈을 마음을 담아 전해주고는 합니다.
태국에서 내자신이 태국분들에게
고운사람으로 비춰지게 하기 위한 배려 보다는
태국에서 가끔은 있는 내나라 분의 잘못됨을 일부나마 지우고자
나는 좋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해 돈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이 잦답니다.
똑똑치 못해 내나라에서 나는 애국을 하고 도움준 일이 없기에
군대 다녀온 것 외에는 애국이라고 해본 적도 없을 것이기에
나는 한국인으로 남나라 태국에 나와 살며
태국분들이 내나라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기를
간절하게도 소원하며 내나라에 대한 작은 애국심을 가져본답니다.
“쿤 킷와 폼 마짝 나이 캅?
(당신은 내가 어느 나라에서 온것 같은가요?)
답은 태국사람이 저에게 성의를 보이려는 마음으로
“콘 이뽄“(일본 사람)이리 답을 해줍니다.
태국사람은 한국보다 일본을 긍정적으로 보기에
설사 제가 일본사람같지 않아도 예의상 그리한다는 것을 알고는
맘이 착잡했답니다.
태국은 온통 일본 것 천지입니다.
일본 기업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문화까지도 깊숙이 일본화 되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 것은 근래 들어 내나라 드라마나 음악이
태국분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 서고 있는 정도입니다.
태국에서 뭐하나 제대로 내나라 것이
번듯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음과
내나라 분들이 한국인이라는 명함하나만 가지고는
태국에서 대접을 받지 못함이 억울하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도 싫어하는 일본보다
태국에서 무엇하나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면서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이나라 사람들을 무시할수 있고
이나라 분들에게 대접을 받으려 할수 있겠는지요.
“마음”
따스한 마음 하나만이라도 이겨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른 것에 아직 일본을 따라잡기에는
모든 것이 역부족이지만
이곳 태국에서 사는 날까지
일본인 보다 몇배는 따스한 진심을 가진
한국인으로 저는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중심 못잡고 마구 헤매던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첨부사진은 제방 베란다에 자리한
선물받은 나무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