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 출신 손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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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 출신 손들어 보세요

sarnia 27 775

나는 싸르니아인데,,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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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작고하신 우리 모친께서는 자기 출신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효령대군 (킹 태종의 둘째 아들)의 직계 몇 대 손이라는 걸 족보까지 언급하며 설명하시곤 했다.
나는 사실 그런 종류의 이야기에 자부심은 커녕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곤 했던 기억이 난다몇 대 조 할아버지가 효령대군이었건 마포 경강나루에서 삥을 뜯던 양아치였건 그런 게 21 세기를 살고 있는 나하고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 모친님뿐 아니라 나이 좀 드신 대한민국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이 조선시대 누구누구의 몇 대 손이라는 말들을 자랑삼아 하는 걸 본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라는 생각 이전에 그런 말들이 과연 사실일까 거짓일까아니, 그 이전에 그런 말을 하는 본인들은 과연 자기의 실제 족보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곤한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이 왕족과 사대부를 합쳐 전체 인구의 몇 퍼센트를 차지했는지 확인해 보면 현대인들의 조상타령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이야기인지가 바로 드러난다.
자료들을 찾아보니 대체로 전체 인구의 1.9 퍼센트, 100 명 중 두 명 만이 이 계급에 속했었다는 통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삼대 이상 관리로 출사한 적이 없는 무늬만 양반인 사람들을 포함해 사대부 인구를 아무리 늘려 잡아도 전체 인구의 9 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는 공노비 사노비 등 천민들이었다고 한다. 흔히 상놈이라고 부르는, 농업에 종사하는 양민계급만 해도 조선시대에서는 준수한 계급에 속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사람 백 명 중 아흔 여덟명은 당신의 조상은 누구였으며 어떤 일에 종사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 우리 조상은 어느 양반 지주가 소유하고 있는 배추밭에 거름을 주려고 똥지게를 지고 다니던 소작농이였습니다.” 
라든가
우리 집안 X 대 조 할머니께서는 아침마다 주인집 아씨마님에게 세숫물을 떠다바치던 몸종 겸 부엌데기 식모였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정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외국의 경우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다.
캐나다에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만났던 인도계 사람들. 그 중 학교와 전문직 분야에는 힌디계가 많은데, 실례를 무릅쓰고 재미삼아 당신이 어느 카스트 출신이냐고 물어보면 열 명 중 아홉 명이 브라만 출신이라고 대답했다.
조금 정직해 보이는 나머지 한 명만이 '조금 양보해서' 크샤트리아 출신이라고 대답했다. 네 개의 카스트 계급  + 불가촉천민을 포함하여 인도 전체 인구 중 브라만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3 퍼센트를 넘지 않는데 어찌된 셈인지 캐나다에 사는 인도 사람들은 거의 전부 자기가 브라만 출신이라고 하니 좀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오는 25 일 호적상 생신을 맞이하는 예수 선생의 경우는 어떨까?
예수 선생의 가문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가문 역시 뜨르르 삐까번쩍하다. 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예수 선생은 다윗왕가의 자손이다비록 중간에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서 나사렛이란 돋보잡 보리깡촌에서 근근히 입에 풀칠이나 하는 목수 집안으로 전락하긴 했지만, 27 대 선조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유명한 솔로몬 왕이요. 28 대 선조는킹 데이빗이다.
출생지를 아예 나사렛 대신 베들레헴으로 바꾸려고 한 흔적도 보인다.호적신고를 하러 베들레헴에 갔다가 번듯한 여관 하나 잡을 돈도 빽도 없어 마굿간에서 출산을 할 수 밖에 없는 기구한 팔자의 어머니를 두긴 했지만 본적은 엄연히 다윗왕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이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은 마태오나 루가가 예수족보기록에 예수가 분명히 다윗의 자손이라고 스스로 기록했으면서도  다윗의 27 대손 요셉은 예수의 생부가 아니라고 적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보다 수 십 년 전에 먼저 태어난 로마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의 어머니 아티아 처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역시 신의 성령(Holy Spirit)으로 잉태했다. 따라서 예수는 다윗과 생물학적으로 혈족관계가 아니다만일 다윗 가문의 진짜 후손들이 마리아와 예수를 상대로 베들레헴 가정법원에 친생자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면 마리아 모자는 영락없이 패소했을것이다 
마태오나 루가 같은 복음서 저자들은 무슨 의도로 이런 모순된 의미의 족보를 제작했을까?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를 왕의 자손하고는그 격과 차원이 다른 신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왕가의 자손이기도 해야한다는 세속적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욕심도 많지..)
하비 콕스나 마커스 J. 보그 같은 자유주의 계열 신학자들이 쓴 책을 읽어보면 그들조차 하나같이 예수 족보 이야기가 이후에 다가 올 세 세계관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화해 및 결합과 같은) 을 예고하기 위한 전주곡의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는데, 나는 머리가 나빠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당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복음서의 저자들이, 아니 구전의 전달자들이 그렇게 예지가 출중한 사상가들이었다고? 정말???
신의 아들인 동시에 왕가의 자손 이라는 이야기의 은유적 의미가 무엇이든, 그 은유적 의미에 대해 현대 신학자들이 무슨 구라를 어떻게 풀어대고 있든, 싸르니아가 보기에 복음서 저자들은 욕심이 조금 지나쳤던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신의 아들인 동시에 왕가의 자손이기도 해야 한다는, 꿩도 먹고 알도 먹자는 욕심으로,, 반대 방향으로 뛰어 달아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족보를 황급히 제작하다보니까 죽도밥도 아닌 이상한 족보책이 탄생한 건 아닐까    
만일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 족보에서 다윗왕 족보 이야기를 과감하게 빼 버리고 그의 가문이 비천했으며 그의 출생배경은 그보다 더 참담했다고 정직하게 기록했다면 오늘 기독교경전을 읽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암튼 예수 선생 생신이 다가오면 이런 저런 생각이 떠 올라서 한 부분 씩 끄적거려 보고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27 Comments
나마스테지 2013.12.08 21:39  
손1: 흔해빠진 최치원 2?대손? ㅋㅋ
sarnia 2013.12.09 05:34  
최치원? 너무 멀어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찾아봐요.
너무 멀면 신빙성이 떨어지고 너무 가까우면 '니 할아버지 친일파였구나' 하는 덤태기를 쓸 수 있으니까......
나마스테지 2013.12.10 00:01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니혼진에게 재산 다 뺐겼으니 친일파는 아니라 아뢰오ᆞᆞᆞ
구엔 2013.12.09 11:25  
오랜만의 딴지입니다만, 킹태종은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순으로 아드님을 두셨지요.
sarnia 2013.12.09 11:27  
본문이 잘못되었습니다 ^^ 충녕대군이 아니라 효령대군입니다. 충녕대군은 세종이지요.
바꾸었어요..

흠, 근데 실시간이군요. 오랜만입니다.
Robbine 2013.12.09 13:38  
정몽주 포은파 2?대손 쳐주십니까? ㅋ
sarnia 2013.12.09 23:07  
헉,, 그렇다면 로빈님의 조상과 우리 모친님의 조상은 서로???
효령대군의 아버지가 로빈님의 조상님을 개성에 있는 선죽교에서 첥퇴로......
앙큼오시 2013.12.10 19:52  
쏘리~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흉하게 했구나...ㅠㅠ
Robbine 2013.12.10 23:48  
미안하면 수비니어~ㅋㅋㅋㅋ

아, 근데 그거 받는다고 내 맘대로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여튼 우리 제부도에서 봅시다 ㅋㅋㅋㅋ
Robbine 2013.12.09 22:08  
이제서야 본문을 읽고..
(폰으로 보기에는 싸르니아님 글은 폰트가 너무 작아요)

캐나다의 인도인들이 대부분 브라만계급인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보여요. 대체로 비행기에 타는 인도인 승객들 중에 진상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남을 배려하지 않고 부리기만 하고 살았던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주로 비행기에 타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실제로 카스트는 4계급만 있는게 아니라네요. 저도 잘 모르지만 수천가지 쯤 된다고 해요. 그래서 그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그 일만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빨래하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밥 지어주는 사람 등등.. 높은 계급의 인도인이 진상인 이유 중 하나가, 아랫계급 카스트의 사람들이 하는 일을 자기 손으로 하면 그 카스트로 떨어진다고 믿는대요. 그래서 외국나온 인도인들 중에 진상이 그렇게 많다고.... (승무원 불러서 자기 자리 창문 내려달라고 하고 불 꺼달라고 하고 막 그런다고 하죠;)

예수 선생 출신이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그래서 왕이라고 한거구나.... 몰랐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의 이야기 전개가 이런 식의 혈통적 정당성을 주인공에게 부여해서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거에요. 굳이 그런식으로 DNA가 특별하다고 도장박지 않아도 주인공의 다른 면을 부각시켜서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을텐데 작가(영화, 드라마, 만화 등등 모두)들이 참 게으르다는 생각 많이 하죠. 결국 DNA부터 특별하지 않다면 우린 주인공이 될 수 없는건가 싶게 만드는 동심을 파괴하는 스토리라인.. 정말 별로죠.
Robbine 2013.12.09 22:13  
인도인들의 카스트제도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느꼈던 일화 중 하나에요.

학교 어떤 실험실에 인도인 교수님과 대학원생이 각각 한 명씩 왔어요. 교수님은 크샤트리아계급 쯤 되는거 같았고, 대학원생은 브라만중에서도 아주 높은 계급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브라만 학생은 크샤트리아교수님 인사는 받아주었는데, 기숙사의 다른 인도인 학생들과는 말도 섞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인사도 모두 무시. 겁나 거만했다고 해요. 크샤트리아 교수님은 브라만 학생에게 경어를 쓰고 깍듯하게 인사했다고 하고요.
sarnia 2013.12.09 23:02  
로빈님 이야기 (대부분 브라만일 가능성) 에 저도 동의해요. 이곳에 사는 인도계 중 힌디계는 교육수준이 대체로 높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편입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이 브라만 출신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죠.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불가촉천민이나 수드라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독립이민 투자이민을 하겠어요.
조금 특이한 것은 캐나다의 경우 시크.. 펀잡 출신 이민자들이 숫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밴쿠버 근처 서레이나 랭리의 경우 인구의 절반 정도가 펀잡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인도 전체 인구 중 시크계는 2 퍼센트에 불과한데 이곳으로 이주한 시크계 수가 많은 것은 이유가 있겠지만, 1980 년대 인도종교분쟁 당시 캐나다가 그들을 난민으로 많이 받아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가족이 많아 나중에 친척들까지 초청을 하고 어쩌고 하면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것이죠.
sarnia 2013.12.12 11:13  
롸빈님이 쓰신 마지막 부분 (혈통정당성 부여)를 이제야 정독을 했네요.
언젠가 자신의 인문소양 한계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소양의 천재성이 번득이는데요.
나마스테지 2013.12.16 00:20  
형님~~~한국서는 로빈이라 아뢰오 ㅋㅋ
sarnia 2013.12.16 02:03  
근데 다들 어디가신건지 ~~ 안 보이는 분들이 많아요.
안 보이던 분은 나타나셨는데,,
fisherman 2013.12.10 09:57  
저희 집안의 족보상 태조님은 려초에 절강에서 망명 해 오신 寅자 卿자 쓰시는 어른이십니다.
인 자, 경 자 할아버님 윗세대 어른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싶어
절강성 닝보대학교의 문헌관리를 하시는 교수와, 그곳에 재직중인 주재원 한분과 함께
닝보 박물관등 남,북송시대와 요나라 때 문헌을 찾아 보았지만,
워낙 방대한 분량의 사료들 속에서 한미한 가문의 뿌리의 근원을 찾는다는게...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읍니다.

다만,  노비계급이나 농공상 계급은 아니었고,
문, 무인 계급이었을것이다라고 확신 하는것은,
인자 경자 할아버지께서 망명 해 오셔서 고려왕실로 부터 바로 본관 및 性氏, 공(公) 작위와 함께 벼슬을 내려 받으셨지요.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功이던 逆이던 역사적으로  크게 명성을 떨치신 어른은 없으셨지만,
대를 이어 면면히 대제학과 부제학 교리, 정언 등등 주로 문科적 성향이 짙은 일을 하셨던 조상님들이 많으셨읍니다.

孫이 귀한 가문(유전적, 혈통적, 아님 풍수지리적??)인지 선대 어른들께선 대체적으로
독자, 또는 2남 정도로 후사를 두셨으며, 물론 후사를 두지 못하신 분도 계셨고,
제 경우 무자 입니다.

비록 명문 세도가 집안은 아니었지만,
정쟁에, 부를 축적하기 위한 야합 따위 등에  휘말려서  피를 본 적 없는..
한미한 문인가문의 28代 枝孫이지만
그 어떤 명문세도가 못지 않은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

이곳은 치앙마이 입니다.
차고 시린 새벽공기가 좋아서 창푸악 게이트에서부터 치앙마이게이트 까지
집사람과 손 잡고 새벽운동을 하고 왔읍니다.

해자가 내려다 보이는 아모라 타페로 숙소를 정한것도 잘한것 같네요.

아름다운 곳이네요.

몇해 전 쓰신  사르니아선생의 여행기 속 예쁜 미소의 소녀는 아직 못 보았읍니다.

그때 여행기 잘 읽었읍니다.
sarnia 2013.12.10 11:15  
그때 여행기를 열어보니 다섯 명의 소녀가 등장하더군요. 말씀하신 소녀는 제 짐작에 선데이마켓에서 꼬치를 팔던 분 같습니다. 제 기억으론 당시 22 세 였습니다. 지금은 26 세...... 전 처음에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요.

그 때 치앙마이에 간 이유는 순전히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에 나오는 골든트라이앵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이트바자에서 가까운 두웡타완인가 하는 호텔에서 지냈지요.
근데 갔다와서 사진들을 보다 생각지도 않게 어딘가 낯익은 장면이 나와서 혹시나 하고 확인을 해 보니 실제로 그 영화를 치앙마이의 한 재래시장에서 찍었더라고요.

  https://thailove.net/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87814&sca=&sfl=wr_name%2C1&stx=sarnia&sop=and&page=8

와오롯 시장에 있는 금은방이 그 장소였지요.

fisheman님의 조상님들 직책 (조선조)을 보니 주로 삼사에서 근무하신 엘리트들이셨네요. 홍문관과 사간원 직책같은데, 삼사는 각각 지배이념을 수립하고 왕권을 견제하고 사대부를 감찰하는 핵심기관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새하루 2013.12.10 17:41  
아래 글은 아주 오래전 어느 책에서 본기억으로 적은겁니다

옛날에는 서양인들도 성이 없어서 그저 산동네 한스
대추나무집 찰리 이렇게 불렀대요
그러다가 근세에 와서야 성을 갖기 시작했다네요
인구가 늘어나 사람을 구분할 필요에 의해
직업에 따라 성을 붙이기도 했다네요

서양인들의 성을 보면 그 조상의 직업을 알수있다고
베이커는 빵공장 카펜터즈는 목수 스미스는 대장장이 ...
미국의 전대통령 카터는 그럼 마부? 
아프리칸들이 노예해방된뒤 얼마나 자유인이 되고 싶었으면
프리맨 (영화배우 모간 프리맨)이나 화이트 라는 성을 가졌을까
싶기도 하구요

하여튼 우리 민족도 근세까지 상당수가 성이 없었는데
일제시대대 일제의 인구조사때 성을 강제로 갖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부자집에서 종살이나 머슴살던 사람들에게
부자집에서 자비를 베풀어 성을 나누어주고
그성을 쓰게 했다고 하는 글도 본기억이 나네요

사르니아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우리나라 인구조사해보면 천방지축마골피 빼고는 다 양반의 몇대 후손이니...
아닌 사람 손들어보라고 하면 ㅎㅎㅎ

예수님 탄생신화 역시
그당시 중근동지역에서 유행하던 영웅설화에 등장하는
성령잉태나 명문혈족의 직계손 설화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정도로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 역시 로마의 동신제 영향으로 12월 25일로 정해졌으니
참 아이러니하지요

크리스마스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다고 보니 할로윈 이야기도 하고싶네요

할로윈의 기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북구의 산신설화에서 시작되어 유럽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유입된
20세기 초반에서 부터 풍속이 대중화 되기 시작했다고합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 한국교회에서는 할로윈 퇴치운동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할로윈의 기원이 마귀 사탄을 숭배하는 풍속이니
절대 금지해야 한다는겁니다

미국의 어린이들의 가장큰 즐거움중의 하나가
할로윈때 커스텀을 입고 사탕 얻으러 다니는것인데
한국 교회에 다니는 부모님의 반대로
할로윈 당일에는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얌전히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한다네요

그리고 사탕얻으로 오는 아이들을 받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집을 비우고 교회로 가거나 외식하러 나갑니다
심지어는 불을 다끄고 집에 없는척을 한답니다

실제로 제 주변의 일입니다

미국은 청교도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며
아직도 미국의 근본이념은 철저한 청교도 정신입니다
그런 기독교 국가에서 행해지는 할로윈풍습을
왜 궂이 한국의 근본주의 개신교계에서는 반대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상업주의의 상술에 기인한 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가정과 직장에서 거부감없이 즐기는 풍속입니다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고요
그런 아이들의 기쁨을 빼앗아 버리는게 너무 잔인해보입니다

할로윈이 북구의 산신령 설화에서 비롯되어
받아들일수 없다면
크리스마스의 기원 또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것 아닐까

해마다 할로윈때마다
집에 불을 끄고 숨을 죽이는 어느집 아이들이 생각나서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호루스 2013.12.10 23:17  
할로윈에 대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자생적인 축제가 아닌 할로윈은 발렌타인 데이처럼 상술에 놀아날수 밖에 없죠.

어린이 집에서나 설레발이지 동네에서 할로윈이라고 방문한 경우는 전혀 못보았는데...

더구나 이웃사람과 교류도 없는 삭막한 도시에서 부모가 이웃집에 가서 사탕 얻어올수 있게끔 배려할것 같지도 않고요.

어릴때 복조리가 생각나요.

복조리를 사고팔기보단 차라리 설에 아이들에게 복조리라도 들려보내 이웃집에 하나씩 돌리고 그 답례로 떡과 과일이라도 받는 우리의 세시풍속을 부활시켜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Robbine 2013.12.10 23:52  
참새님은 한국에 계신게 아닌거 같아요^^;
호루스 2013.12.11 20:15  
아, 그렇네요.

엉뚱한 답글 미안하게 됐습니다.
Robbine 2013.12.10 23:54  
교회다니는 한국인들 여기나 거기나 뭔가 좀 극성스러운 느낌이네요.
오죽했으면 미드 <오피스>에서도 한글이 적힌 교회 승합차 에피소드가 나왔을까요 ㅠㅠ

근데 사탕 안주고 집 비우면 애들이 trick 하지 않나요??
집이 엉망이 될거 같은데...
fisherman 2013.12.11 10:37  
저도 그런 글을 읽은적이 있읍니다.
케빈 코스트너?? 인가  하는 배우의 영화제목 '늑대와 함께 춤을'
인디언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세비야엔 정말 바베로 (이발사) 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명이 들어간 로시니의 가곡때문인지
그 지방엔 자부심을 가지고 오랜기간 대를 이어 이발업에 종사한 가문이 있다고 합니다.
sarnia 2013.12.11 11:15  
성이 Shortdick 인 사람, Pusey 인 사람은 학교다닐 때 놀림깨나 받았을 것 같아요. 조상이 누군지도 궁금하고......

할로원이라면 추억이 있어요. 무서운 복장으로 처조카를 거의 기절시킬 뻔 한 일이 있지요. 왜 그런 옷 있잖아요. 월하의 공동묘지같은 영화에 나오는 하얗고 긴 원피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함께 참여하곤 했는데, 아이도 다 크고 제가 혼자 살기 시작한 후 부터는 해마다 10 월 31 일 저녁만 되면 집 안의 불을 모두 끄고 사람이 없는 척 합니다. 귀찮아서요.

캐나다교회나 미국교회나 한인교회들은 참 유난합니다. 저야 한인교회 발걸음도 안 합니다만 (반찬거리 파는 바자회할 때는 가 봄), 2005 년에 있었던 일은 정말 황당했지요. 그 해 연방의회(국회)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가 됐는데, 그 법안에 상정되자마자 캘거리에 있는 어느 대형한인교회에서 법안통과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었어요.
學而時習之 2013.12.16 10:25  
저는 동래정씨 참의공파 정경철 선생님의 손자입니다.
거창하게 독립운동까지는 아니지만, 재산의 절반을
독립운동하는데 기부하셨다고 합니다. 선친께서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씨개명도 절대 하지 않으셔서 마을에서 유일하게
고초를 겪으셨다고 합니다. 그 윗대에도 유명한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선친께서 할아버지만 본받아도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릴땐 형한테는 500원짜리 지폐주시면서 저한테는 100원짜리
동전을 줘서 많이 울었던 기억밖에 안나지만요...;;;
sarnia 2013.12.16 10:44  
그러시군요. 재산의 절반을 독립운동에 기부하셨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 입니다. 그 시절 (태평양전쟁 이후)에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셨다는 건 말 그대로 '독립운동' 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회영 선생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그 분도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 하는데 사용하고 결국 현병대에 체포되어 장렬한 죽음을 당하셨지요.
제 본가는 독립운동 비슷한 것이라도 했다는 소리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으나, 사돈 중에 정암 이종훈 선생이 계십니다. 독립선언 33 인 중 한 분이고 손병희 선생과 사돈인데, 이 분의 증손자가 제 사촌매형,, 언젠가 이 분 손녀 (제 당손녀)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군요.
sarnia 2013.12.20 16:00  
13 대 면,, 대충 300 년 전이라고 치고
숙종 경종 영조 때 이신가요?
조금만 힌트를 주시면 제가 지금 심심하니까 어느 분이었는지 열심히 찾아보려고 합니다만,,,,,,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