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 보고서 (대한민국=잔소리 공화국)
나더러 대한민국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해 보라고 한다면?
글쎄...... 우선 ‘잔소리 공화국’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9 년 가을 그 나라 이곳 저곳을 싸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소회는 그렇다. 잔소리를 적어 넣은 스티커들이 도처에 붙어 있었는데 특히 지하철 과 기차역에 많았다.
잔소리 항목별로는 ‘우측보행을 하세요’ 라는 말과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두 줄로 타세요’ 라는 말이 압도적이었다.
‘두 다리가 멀쩡한 인간들은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세요’ 라는 말은 없나 살펴 봤는데 정작 필요할 것 같은 그런 말이 적힌 스티커는 발견하지 못했다.
기차 객실 천정에 매달려 있는 오버헤드 비디오에서는 아예 그 잔소리를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제작해 수시로 방송까지 하고 있었다.
“여보, 내리실 때 쓰레기는 가지고 내리셔야지요”
“손님,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된 답니다”
자원봉사는 좋은데, 왜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아무튼 좀 선선했던 이 날은 10 월 17 일, 유신선포 37 주년. 그 날 저 길건너 동아일보사 앞에는 집총한 군인들이 서 있었다.
멀쩡한 사람들을 바보취급 하는 이런 잔소리 문화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부활한 것인지, 아니면 줄곧 있어왔는데 그 동안 뻔질나게 한국을 드나들면서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1979 년 에 서울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무지막지한 반말지거리 교통안내판을 기억할 것이다.
‘차도에 못 내려. 인도에 딱 붙여’-서울시 경찰국-
당시 어린 마음에도 어떤 인간이 저런 안내판을 만들었을까 하고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왜 이 사진만 크게 나왔지? Anyway 청계천 여성 팔씨름 대회다. 역시 팔 힘이 가장 센 분은 결혼 10 년 차 마흔 살 쯤 된 전업주부
아무튼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준법정신이 강하고 협조를 잘하는 편인 나는 처음에 우측보행을 해 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우측도 좌측도 아닌 보행도로의 중앙선만 따라 걸어 다녔다.
걸어가면서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혀도, 좁은 길에서 앞에 가는 사람을 부득이 추월할 때도 ‘미안합니다’ 라든가 ‘실례합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실정에 합당하게 조성된 문화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 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서로 가볍게 신체를 접촉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불가피해 보였다. 다반사로 벌어지는 불가피한 일을 가지고 그때마다 말로 사과를 연발한다면 상대에게 쓸데없는 부담만 주고 소음공해까지 일으키는 민폐가 될지도 모르겠다
갈 때 마다 뭐가 하나씩 새로 생기는데, 올해는 광화문 한복판에 이런 걸 또 만들어 놓았다.
나는 개인이건 집단이건 어떤 행동으로 인한 결과가 서로에게 불편을 주면 자연스러운 자각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쪽으로 진화하게끔 되어있다고 믿는 편이다. 서울 못지 않게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도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스티커로 잔소리를 써 붙여 놓은 것을 본 기억은 없다.
통행을 양방향으로 분리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아지면 그냥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각각 한 방향으로 흐름이 형성되어 자발적인 양방통행길이 형성되곤 한다. 그게 우측이 되든 좌측이 되든 그건 그 때 그곳을 걷는 사람들의 이심전심에 달려 있다.
우리들 유전자 안에는 이렇게 서로 배려하는 착한 문화적 속성을 바탕으로 자발적인 시민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이미 내장되어 있다. 그런데 쓸데없이 인위적으로 가는 길까지 간섭을 하려고 드니 오히려 더 뒤죽박죽이 되어 나 같이 어리둥절한 방문객은 결국 길 가운데로만 다녀야 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명동입구다. 한 가지 반가운 점은 관광객이 아닌 거주자로 보이는 외국인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다. 고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이슬람 침투' 운운하면서 종교적 인종적 편견을 드러내는 대한민국의 일부 기독교 피플들이 하루빨리 문화적 진화를 이루어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정말! 진짜!!
이빨이 별로 튼튼하지 않은 분들은 고구마 튀김은 갓 튀겨낸 걸 찾아 사 드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