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제목이 떠 오르지 않는 글
sarnia
10
257
2013.02.18 11:55
----------------------------------------------------------------------
인문적 소양은 독서와 사색의 반영이다. 학습과 훈련에 의해 개발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사람에 따라 독서와 사색, 학습과 훈련으로만 커버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여백이 존재하는 듯 하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공부하고 나이를 먹어도 극복하기 어려운 사고력의 한계가 보인다. 반면에 사람에 따라서는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이나 경력에 비해 탁월한 관점과 직관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인문적 소양이란 좁은 의미의 인문학적 지력이 아닌 탁월한 관점과 본질을 꿰뜷는 직관력을 생산해 내는 지성적 감각체계를 말한다.
온라인에서 수 년간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보았다. 20 대부터 6-70 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직업과 학력도 천차만별이다. 온라인 인연이 오프라인 만남으로 ‘승화’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다양한 만남의 경험들을 통해 받은 강렬한 느낌이다.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목적은 무엇일까? 과연 모든 행동에는 그 행동을 수행하는 목적이 있을까?
만일 목적의 의미가 purpose 나 goal 을 의미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모든 행동에 그런 의미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행동에는 동기 (motivation) 나 이유 (reason)가 존재한다.
싸르니아는 가끔이긴 하지만 종교에 관한 글을 써서 올린다.
원고를 정기적으로 보내야 할 곳에는 오히려 글을 자주 쓰지 않는다. 한 두 군데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자주 올린다. 그게 더 자유롭고 피드백이 빠르기 때문이다.
싸르니아는 왜 그런 글을 써 올리는 걸까?
한국의 교역자들과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성서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을 믿는 무지몽매한 바보들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계몽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리가, 지금이 18 세기 계몽주의 시대인가? 그런 문제로 계몽을 하게,,,)
아니면 어떤 교역자의 말처럼 싸르니아가 뉴에이지 사탄숭배자라 "양 같이 순한 평신도들의 신앙을 파괴하기 위한 활동을 할 목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일까? (정말 ?? 그렇게 씩이나??? )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그 분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다지 관심도 없다. 그건 전적으로 그 분들 개인마다의 선택이고 사상이다.
싸르니아는 기본적으로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원성의 각이 서로 예리하면 예리할수록 톨러런스의 기대치가 확대된다고 믿는다. 복음주의자와 무신론자가 intimacy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예수 선생이 희망했던 공동체일 것이다. (참, 예수를 가리켜 선생이라고 지칭했다고 길길이 뛰는 목사와 장로들은 한국을 가리켜 남코리아라고 불렀다고 설레발을 치는 애국자들과 비슷한 오버를 하고 있는 것인데,, 분명히 말하지만 '선생'은 경칭이고 '남코리아'는 공정한 호칭이다.)
목사의 외손자로 자랐지만, 자라는 내내 예수 선생을 신통치 않게 생각했는데, 그의 뛰어난 인문적 소양을 발견하고 공감’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 1990 년대 초반 criminology 를 공부할 때인데, 어느 학기에 선택 수강한 religious study 과목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28 년 동안 내내 기독교 동아리 안에 갖혀 살면서도 전혀 감흥을 받지 못했던 인물에 대해 캐나다 일반대학에서 교양과목 듣다가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교회도 다녔다. 일년에 두 번이나,,,
터키 디너 (부활절과 성탄절에 열리는 칠면조 고기 파티) 에만 참석했지만 싸르니아로서는 혁명적인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요새는 교회에 가는 대신 일요일 아침마다 인디고 서점에 딸린 스타벅스 소파에 앉아 독서와 명상시간을 가진다. 인디고 서점에 딸린 스타벅스는 인테리어도 휼륭하고 소파도 푹신해서 독서와 명상을 반복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탕약같은 스타벅스 커피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맥카페 커피를 사 들고 간다. 그래도 파란 눈의 스타벅스 직원은 활짝 미소띤 얼굴로 싸르니아를 맞이한다. 물론 케잌이나 머핀은 스타벅스에서 구입한다.
내가 대화와 토론과정에서 가장 흥미롭게 주목하는 부분은 어떤 사람의 정치 종교적 입장이 아니다. 그 사람이 전개하는 논리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 서로 일치하는가 여부이다. 싸르니아는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지 아니면 보수적인지, 종교적으로 fundamentalism 에 빠져 있는지 무신론자인지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사고력과 인문소양에 주목한다.
정보가 개방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정보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개인의 사고력과 인문소양에 따라 토론의 승패가 결정난다. 더 이상 지식이나 스펙 자체가 권위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사고력과 상상력’의 수준이 결국 인간의 격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다. 역사도 환경도 성격도 지력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생각과 너무나 동떨어진 의견이 등장했다고 해서 충격을 받거나 증오심을 발산할 필요는 없다. 지나치게 reactive 한 설레발은 금물이다.
이견이 있을 때는 반론하면 된다. 반론을 차분하게 준비하고 상대방과 토론하는 과정이야말로 자신을 좀 더 강하게 훈련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과학수사
유쾌하게 수사하고 화끈하게 방면한다
쫄지마
싸르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