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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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12)

노란손수건 0 14

1824년 10월 28일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마을에서 새벽 닭이 울때쯤  한아이가 태어남니다  건너편 산에서는 천둥이 울었고

아이의 울음 소리는 우렁찼다고 합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태어날때 이야기 입니다

대대로 학문을 하는 집안이었고 먹고 살만한 집안 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천주교가 한참 들어오던 시절이었고 

조선의 사상의 근간이었던 유교를 배신하고  조상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하여 엄청 박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누가 왼쪽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도 내어주라,

천주교가 가르키는것이 뭐 부처님 반토막도 아니고 뭐 ...암튼 대대로 유학자 집안이었든 수운 선생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는 천주교를 서학이라고 불렀으며 천주교인을 서학쟁이라고 하여 들켜서 붙잡히면 무조건 처형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처형될때에 전혀 두려운기색도 없이 편안하게 받아드리는 모습에 더욱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는 이미 유학이라는 학문이 갈때까지 가서 어찌해볼 수도 없는 상황인것은 대부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지방의 양반네 자제들은 서원에 모여 자신들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하인들을 시켜 붙잡아다가 매질을 하며 즐기거나 

재물을 빼앗거나  온갖 패악질을 하기로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오죽하면 대원군이 집권을 하면서  서원 철페령을 내려 

사원을 없애버렸습니다  부당하다며 상소가 빗발쳐도  공자와 맹자가 살아온다해도 안된다며 묵살해 버렸습니다

새로운 학문이 절실히 필요 하다는 생각에 수운 선생의 아버님이 공부하시던 용담이라는 곳에서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세상을 구하는 학문은 무엇일까 하며 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드디어 안개가 피어오르는  용담의 새벽에 

득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 人乃天 (인내천) 人即天( 인즉천 ) 사람이 즉 하늘이다 "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다"  프란스 혁명 의 인권선언서 보다 너무도 알기 쉽고 간단하고 명문이었다

하늘님 아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 합니다   사람들속에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하느님이 하늘님이다    서학에 반대의 의미인 동학의 시작이었다

유교사회였던 그당시에는 이것이 악마였다  위험한 사상 이었다.  즉시 대구감영에 고발되었고  체포되어 붙잡혀 갔다

한양으로 압송되려던 때에 한양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난다  갑자기 파발이와서 그의 한양행이 보류된다 

그추운날 대구감영 정자아래 묶여 있었다   그는 제자인 해월 최시영 선생에게 글을 내린다

고비원주(高飛 遠走) 높이날고 멀리가라  새로운 동학을 높고 멀리  전파하라는 부탁 이었다

그리고 한양에서 파발이 와서 한양으로 데려오지 말고 대구에서 처형하라는 명이 내려온다

그는 현재 대구의 염매시장 터에서 처형된다   죄목은 서학쟁이 였다

사형 판결을 내린 사람은 교과서 에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종두법을 도입한 사람으로 배운  지석영 이었다

제자 해월 최시영 선생은 전국을 돌며 동학을 전파 한다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다

이간단한 말은 사람들에의 맘속에 쉽게 각인된다 전파도 빨랐다  동학이 평안도 함경도 까지 전파되고  있을때

전라도 고부(고창)에서 민란이 일어난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노골적으로 뇌물을 받고 노골적으로 탐관을 했다

상부기관인 전주의 전라감영에 하소연도 하고 해서 파직 당학고 익산 현감으로 발영 난다

하지만 익산으로 부임하지않고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다시 고부군수로 재임명 된다 인근 수령들도 부르고 유지들도 불러서 

크게 잔치를 벌이고 있을때에  동학군이 들이친다 조병갑은 붙잡히고 귀양을 가고 감독관이 내려온다 

그도 까탈스러운 사람이었다  은밀하게 한양 에서 경군이 내려온다  동학의 고부 접주인 전봉준 은 이를 눈치체고 

다시 봉기한다 순식간에 전라도를 석권하고 전주성을 함락시킨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우선 전라도에서 동학을 완전히 전파하고 다른도에서 반응이 있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집강소를 열고 모든 사람들에게 동학을 설파 하고 치안을 엄격히 유지한다  한양에서온 경군과 협상이 잘되어서 

평온한 일상이 유지된다  그런데 한양에서는 일본군 정규 2개 사단에 의한 경복군 범궐이  이루어 진다

외국 군대가 일국의 궁궐을 점령 한 것이었다 고종이 일본군에게 인질로 잡힙으로서 근위군이 저항을 멈춘다

참담한 그 자체였다 이로서 조선에서 대규모 병력을 가진것은 동학군 뿐이었다

고종은 동학군에게 밀서를 보낸다  전봉준은 충청도 동학군에게 연락을 보낸다

한양을 가기 위해 금강을 건너 공주로 향했다  공주를 가려면은 우금치 고개를 넘어야 했다

동학군은 인즉천 깃발을 들고 행진 했다 이미 우금치 고개에는 일본군이 중기관총 여러개를 배치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관총 앞으로 전진했다 앞선 사람이 쓰러져 죽어도" 사람이 하늘이다"  라고 외치면서  쓰러져갔다 

인명피해가 너무나자 동학군 지휘부는 후퇴 명령을 내렸다  후일 우금치 고개의 희생을 안타까워 하던 사람들이

원혼을 위로하는 굿을 하였는데 무당이 굿은 못하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평등한 세상을 원했던 동학군 원혼들이  기가 

너무 셌다고 함니다 퇴각해서 금강을 넘엇을적에는 전라도는 "전부 경군에게점령 되었다고 합니다  동학군 잔여병력은

대둔산, 마이산,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쫒기는 신세가 됨니다  전봉준과 지휘부는 모두 체포되었고 한양으로

압송 되었고  동비라는 이름으로  가족까지 죽였다고 합니다 고종에게 속았다고 밖에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조선이 망하고 의병이 일어났는데 충성의 대상은 조선  왕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인즉천 이었습니다

후일 상해 임시정부를 만들적에  조선왕조를 복원하자는 주장 은 바로 배척되었습니다 

조선은 고종이 동학군을 배신했을때 이미 망한것입니다  조선의 동학군은 의병이 되었고  독립군이 되었습니다

김구 선생님도 동학군 황해도 접주였습니다  한때는 우리 헌법에 올리자고 하였고  독립군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전봉준과 지휘부도 한양으로 압송되어 건물내부에서 처형 되었고 해월최시영 선생도 처형 되었는데

사형 판결을 내린사람이 고부군수 조병갑 이엇다고 합니다  지금 그의 증손녀는  국민의 힘 조모 의원이라고 합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창포장수 울고간다


 노란 손수건이었습니다

 

ebs 에서 제작한 도올선생의 한국독립운동사 2편 용담의 새벽 많이 참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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