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9)
해방 정국에서 동아일보기자가 김구선생님께 물어 보았다 " 선생님 우리나라 보수세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이승만 세력과 한민당 세력에 대한 물음이었다
"보수는 무슨 보수, 보수 떨거지 들이지, ,한마디로 보수는 개뿔 무슨 보수냐 라는 것이었다
28일 서울을 겨우 탈출한 김홍일 육군참모학교 교장이셨던 김홍일 장군은 육군본부가 수원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수원으로 가서
채병덕 참모총장을 만났다 김홍일 장군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육사교장을 두번이나 지낸 원로였다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설치건의를 하고 사령관에 임명되어 한강방어선 구축을 시작했다
올라오면서 안양에 취사장을 설치하고 양제동, 인덕원 방향에서 후퇴해서 오는 국군장병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새로 부대편성을 하였다
장교 건재순으로 선임자를 정하여 무장과 탄약을 추진 하였다 또 북상하여 시흥 보병학교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후퇴해오는 육군본부 참모들을
사령부 참모진을 구성 하여 패닉상태로 무작전 후퇴하는 장병들을 수습하였다 동네 아주머니들 까지 동원하여 보병학교 취사장을 풀 가동하여
주먹밥과 된장국을 만들어 한강변으로 날랐고 후퇴장병들에게 식사를 제공 하였다 무장과 부대편성을 하여서 한강변에 재배치를 하였다
편재를 유지한체 한강을 건넌 부대에게는 식량과 탄약을 보급하여 김포에서 광나루 다리까지 한강방어선을 형성하는데 성공 하였다
29일 맥아더 원수는 수원비행장 으로 와서 한강방어선을 시찰 하였다. OB 맥주 공장 뒷산에서 참호를 파고 여의도 방면을 바라보고 있던
나이어린 병사에게 물었다 자네는 이참호에 언제까지 있을것인가 병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철수명령이 있을때 까지"라고 대답 하였다
통역은 김종갑 대령이라는 분이 했는데 그의 통역은 이보다 훨씬더 길었다 훗날 우덜이 논산 훈련소에 갔을때 교관들이 늘하던 멘트가
이때 이병사의 애기였다 맥아더가 김홍일 장군에게 물었다 3일정도 버틸수 있겠는가...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걍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맥아더는 수원 비행장으로 돌아갔다 마침 대구까지 도망 갔던 이승만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애기를 시작할려고 할때 북한의 야크기가 비행장에 기총 소사를 퍼붓고 있었다 맥아더와 대통령은 엎드렸다
그리고 일어났다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에게" 각하께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다시 말했다 "승리 입니다"
이때 우리국군의 전시작전 통제권이 미군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수원역 바로옆에 있었던 비행장에 미군 전방 연락소가 설치 되었다
미군 전투기가 날아와 북한 공군력을 제거 하였고 한강북방에 북한군에 대한 공습이 시작 되었다 오끼나와에 있던 스미스 대대가
수원비행장으로 공수될예정이었다 3일안으로 한강방어선으로 미군이 투입될 예정 이었다 소총과 탄약 보급은 바로 시작 되었다
이때 보급된 소총이 낙동강 까지의 지연전에 큰 도움이되었다 흑석동, 김포공항 , 여의도 청담동 광나루에서 공방전이 시작 되었다
특히 두개의 한강철교에서는 치열 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 있는것은 국군이나 북한군에서는 사단급 작전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 뿐이 없었다. 1사단장 백선엽은 우리의 독립군을 상대로 중대급 작전도 변변이 해보지 못했다 그곳의 그의 계급은 중위였다
김석원 장군은 대대급이 전부였고 북한군도 대부분 중대급 작전도 해본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 단한사람 그는 김홍일 진짜 장군이었다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 거사할때 완벽한 폭탄을 만들어 주었고 이봉창 의사가 도쿄에서 던진 폭탄을 만들어 주었다 그때 그폭탄을 도쿄까지
운반한 사람이 남자연 의사였다 영화 암살에서 전지연 배우님이 연기한 안옥윤의 실재 인물이었다
김홍일 장군이 사단 참모장일때는 일본군 연대급 여러개를 괴멸 상태로 만들었고 중국 국민당군 19사단장을 했을적에는 일본군 33사단 34사단을
괴멸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괴멸 상태라고 함은 적병력 40% 이상을 격멸했음을 의미한다 그의 작전은 간단했다
적을 깊숙이 끌어드려 보급선을 길게 만들었고 중간 중간 공격을 하여 자신이 지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드는것이었다
영국군이 임팔전선에서 써먹던 전법이었다 그때 일본군은 거의 굶어죽었다.. 우리도 적의 보급선을 길게만들어 미공군력으로 괴멸 시키는 전략이었다
한강방어선에서 국군이 고군 분투하고 있을적에 수원비행장에 있던 전방연락소의 당직 장교가 수원역 넘어로 보이는 건물에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북한군이 수원에 진입했다고 오판하고 통신장비들을 불태우고 철수준비에 들어갔다 뒤에 책임자가 돌아와 취소 했으나 돌이킬수 없었다
때문에 수원 비행장으로 공수하려던 스미스 대대는 배편으로 부산항으로 들어와 오산북방에서 적을 맞는다
6.25 전쟁 3일은 그냥 패닉상태였고 한강방어선구축이후로는 지연전은 작전상 후퇴라고 불렀다 적을 낙동강 방어선까지 끌어드렸고 비행기폭격으로
보급선을 끊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적을 괴멸 시켰다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6.25는 이승만 대통령의 객관성 없는 군인사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신성모도 국방장관은 깜이 아니었고 채병덕은 더욱 아니었다
노란 손수건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