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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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필리핀 9 485

  

 

요즘 아프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언론과 SNS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생명평화운동가로 자처하는 황모씨는 SNS아프가니스탄이 미제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미제해방이라는 냉전시대의 낡은 용어를 들먹이는 그의 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비판을 하고 있다.

아프간의 자주권 회복 차원에서 미군 철수는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탈레반의 득세는 아프간 인민들에게는 해방이 아니라 정권교체에 불과할 뿐이다.

탈레반은 이슬람공화국 수립을 위해 결성된 무장조직이다. 1996~2001년에 아프간을 지배할 때 엄격한 이슬람 율법통치를 강행해서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가혹한 인권유린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쳤다.

탈레반 정권은 여성의 교육과 취업, 외출을 규제했다. 눈 부위만 망사로 가린 채 머리부터 발목까지 온몸을 감추는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했고 이를 어기면 돌로 쳐 죽이는 잔인함을 드러냈다. 12살밖에 안 된 소녀를 탈레반 대원과 강제로 결혼시키는 만행도 저질렀다.

때문에 아프간 인민들에게 현 상황은 미국 앞잡이 이승만(가니 대통령)이 물러가자 총칼 들고 설치는 전두환(탈레반)이 등장한 꼴이다.

탈레반의 공포정치를 두려워하는 아프간 인민들은 앞 다투어 국외 탈주를 감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동족을 배신한 부역자들의 탈주라는 의견이 있다. 그렇다면 6.25 때 월남한 사람들도 북한에 숙청당할 게 두려워서 탈주한 부역자들인가? 이미 수백만 명이 인근 국가로 탈출했으며 지금도 하루에 3만 명 이상 아프간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부역자라면 아프간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아프간 민중 대부분이 탈레반을 지지한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신뢰성 있는 기관이 언제 그런 조사를 했는지 궁금하다. 전두환 정권 때 독재타도를 외치는 이가 적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묵묵히 생업에 종사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두환을 지지했던 건 아닐 것이다. 총칼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침묵했을 것이다. 그런 시대를 겪어본 사람들은 누군가를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

아프간 여성의 인권을 걱정하는 이들을 향해 왜 사우디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이런 식의 비유는 유치한 말꼬리 잡기로 논점을 흐리려는 전형적인 궤변이다. 차라리 왜 미얀마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아프간에 대해서만 떠드는 건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어떨까?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만 11세이던 2009, 영국 BBC 방송의 사이트 우르드어 블로그에 익명으로 탈레반 점령지의 억압적 일상과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는 현실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켜서 <뉴욕타임스>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는 등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으나 말랄라의 신분이 노출되고 말았다. 2012109,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말랄라는 파키스탄 탈레반 무장대원이 쏜 총알에 머리와 목을 맞아 중태에 빠졌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말랄라는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송되어 재활치료를 받은 끝에 극적으로 회복되었다.

2021817, 말랄라는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나는 아프간의 자매들이 걱정이 된다>는 글에서 지난 20년 간 수백만의 여성들은 교육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약속된 미래는 사라지고 있다면서 탈레반이 정권을 다시 잡고 있고, 나는 다른 많은 여성들처럼 아프간의 자매들이 걱정된다.”고 썼다. 이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공포는 현실이라면서 이들을 도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말랄라 뿐만이 아니다. 아프간에 있는 많은 여성과 아동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탈레반에 대한 공포를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결국 사회 안정을 위해 광주의 폭도들을 진압했다고 주장하는 전두환을 인정하는 짓과 다름없다.

미국을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건 좋다. 그러나 미국에 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성과 아동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탈레반을 해방군 취급하는 건 심각한 잘못이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여성과 아동은 함부로 희생되어도 좋다는 게 생명평화운동의 정신인지 황모씨에게 묻고 싶다. 아프간의 자주권 회복은 환영하지만, 탈레반의 등장은 염려된다고 하는 게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운동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냉전시대의 패권주의 논리에 함몰된 채 골방에 처박혀서 단순무식한 이분법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구닥다리 지식인의 모습이 애처로울 뿐이다.

탈레반이 예전과는 다른 정책을 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들을 주목하는 세계의 눈길 때문에 일시적으로 유화정책을 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채 외출한 여성이 길거리에서 처형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머지않아 아프간에서 크메르 루즈 시대의 캄보디아처럼 킬링필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박정희처럼 겉으로는 인민을 위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반대파를 마구 잡아들여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을 자행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탈레반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 간의 충돌로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이든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선량한 인민들이다. 숭고한 이념이나 종교, 민족이나 국가보다 중요한 건 개인으로서 인간의 존엄이다. 부디 아프간 인민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기를 기원하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미얀마의 인민들에게도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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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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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2001년 탈레반 정권때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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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고 외출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의해 길거리에서 처형당한 아프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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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미용실에 걸린 여성들의 사진에 탈레반이 먹칠을 해놓았다.

 

 

9 Comments
cafelao 2021.08.20 10:19  
좋은 글 공감합니다
제가 아프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나서 부터입니다.
아프간이라 하면 제겐 참 먼고 먼 잘 모르는 나라이지요
안다는것은 고작 뉴스나 아프간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 뿐...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쓴 작가가 쓴 책으로
연을 쫒는 아이, 그리고 산이 울렸다
이 세권을 읽고 아프간에 관심이 많아졌던 계기라고 할까요
아침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필리핀 2021.08.20 16:42  
아프간을 소재로한 좋은 작품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못본 작품이 있는데 찬찬히 읽어봐야겠네요^^
비육지탄 2021.08.20 10:41  
여행금지국이어서라도 저는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입니다만
(세계일주 하는 사람들중 아시다시피 이란즈음에서 굳이 아프간 국경 넘어갔다 오거나,
국경에서 하다못해 스템프만이라도 받으려 하고 사진을 찍거나 화폐를 얻어와서 허세떠는 사람들을 특히 경멸했어요ㅋ)
이 글은 저와 완전히 같은 의견입니다
필리핀 2021.08.20 16:43  
카라코람과 힌두쿠시를 여행하는 게 오래 전부터 꿈이었어요.
하루 빨리 그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sarnia 2021.08.20 10:50  
과부 수절하듯 20세기식 원론만 주구장창 움켜쥐고 있으면 변절하지 않은 지사소리나 들을까 하고 헛소리를 늘어놓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어요. 

황 씨만이 아니지요. 통일운동을 한다는 427 연대 장 모 영감님도 미얀마 사태에 대해 노망난  소리를 늘어놓다가 돌팔매질을 당했어요.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이야기하면서 '민족의 자주권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적 절대가치'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철학이 빈곤한 사람이 무슨 작가 타이틀을 달고 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예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가치전도라는 면에서는 도긴개긴이지만 차라리 '국가의 자주권'이라고 했으면 그래도 논리의 틀은 갖추었으니 봐줄만 했을텐데요. 

황 씨 글은 공론장에 올라왔으니 이름이나 전문을 숨기고 말고 할 게 없어요. 전문을 보고 각자 판단하는 게 더 낫겠죠.

이런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와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 는 소리를 겁도 없이 지껄이는데,  황 씨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주권의 본원적 주체가 개인인지 국가인지부터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고 무엇이 무엇을 위해 우선적으로 복무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기지도 못하면서 날기부터 한다고 시건방지게 제국주의를 배우라 말라하며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소리하지 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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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황 모 씨 글 전문 (펌)

아프가니스탄 해방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인 오늘 아프가니스탄이 미제로부터 해방되었다.
탈레반 지지자도 이슬람 교도도 아닌 내가 오늘의 역사를 기뻐하는 이유는 단 하나, 민족의 자주권 옹호 차원에서다. 미국의 패배를 기뻐한다고 하여 ‘빨갱이’라는 소리는 말기 바란다. 언젠가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한 소련을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녹색평론> 2008.8월호). 소련은 1979년에서 1989년까지 연인원 65만명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하여 전쟁을 벌였다가 결국 패퇴한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까지 치닫는다. 미국은 2001년에서 2021년까지 20년 동안 무려 2조 달러의 돈을 들여가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미국에게 있어 아프가니스탄은 명백히 ‘제2의 베트남’이다(아래 사진).
미국이 원시부족을 깨우쳐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민주사회를 만들어주려 했는데 무지하고 폭력적인 이슬람근본주의자들에게 졌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무리 좋고 이상적인 것이라 해도 그 나라(지역) 민중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쓸데없는 간섭이 된다. 로힝야, 에스키모, 이누이트, 아이누, 아메리카 인디언 등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근대체제에 편입되어 불행해진 소수 부족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의 칭찬을 받을 만큼 미국적 가치를 성공적으로 실현했음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라며 스스로 저주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미국의 가치는 좋은 것인데 부패하고 무능력한 지도자들 때문인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와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 보수언론이 제공하는 자료는 충분히 봤으니까 됐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른 자료를 통해서. 그래야 균형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 아닌가.
‘민족의 자주권’ ‘미제’라는 단어가 나오면 사람들은 “엇, 주사파다!”하고 바로 색안경을 낀다. ‘자주’와 ‘제국주의’는 정치학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일반 명사인데, 북한이 자주 쓴다고 하여 남한에서는 금기어가 된 참 억울하기 짝이 없는 용어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북한 사람이 먹는 밥도 먹지 말고, 북한 사람이 타는 자동차도 타면 안 된다. 21세기에 이 무슨 코미디같은 일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는지... 사실은 지금까지 이 나라의 지도층이 ‘비자주적인 제국주의 이념’에 따라 통치해왔기에 이 말만 나오면 자지러지는 것이다. 그나마 현집권당은 ‘친미자주’를 해보려고 애를 쓰고는 있으나 중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국은 그마저도 용인하질 않는다. 결국 남한에서는 익숙한 ‘비자주적 친미’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빵이다. 월남 패망 직후 박정희가 극단적 반공체제인 ‘유신체제’를 가동했듯이, 아프가니스탄을 잃은 미국은 다음 대선에서 ‘비자주적 친미 정권’을 강력히 바랄 것이다.
어렵다. 힘 없는 자주, 무능한 자주, 폐쇄적 자주 등은 모두 강대국의 장기놀이에 희생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제국주의 패권놀음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독일, 이태리, 일본, 소련 등이 다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어지럽고 복잡한 국제정치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법칙은 ‘Balance of Power’라고 한다. 힘의 균형에 따라 우방이 적이 되기도 하고 적이 우방이 되기도 한다. 한 나라(민족)의 운명은 힘이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를 잘 보는 데에 달려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패퇴하고 말았지만, 향후 국제 정세의 요동에 따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민족의 자주권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다. (작가 황 모 씨의 글)
sarnia 2021.08.20 11:16  
황 모 씨의 글에 대한 독후감 한 마디 (글 읽은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에 대한 디테일한 지식과 이해가 없으면서 거시적인 통찰을 하는 척 하는 글은 삼가고, 당장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약 1 만 여 명의 아프간인들에 대해 한국정부가 어떠한 인도적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는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귀하의 첫 문장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인 오늘 아프가니스탄이 미제로부터 해방되었다.”은 참 요령부득입니다. 나라면 “승전기념일인 오늘, 전승국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전하였다”라고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글이 저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사소한 거지만 지금 보니 역사적 사실도 틀리게 기술하고 있네요. "월남 패망 직후 박정희가 극단적 반공체제인 ‘유신체제’를 가동했듯이" 라고 썼는데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가동한 건 월남패망 3 년 전인 1972 년 10 월 17 일이고, 그 직접적 동기는 닉슨톡트린과 미중접근 등 입니다. 베트남 통일의 단초가 된 파리협정도 1973 년 이므로 유신과 베트남은 그다지 관계가 없습니다.
필리핀 2021.08.20 16:55  
수년 전에 황모 씨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때 그분은 전남 영광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종교집단 같은 분위기여서 실망한 기억이 납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꾸준히 변화하면서
세상에 대한 맑은 시선을 유지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지요...
자연의 2021.08.20 17:53  
왜 우리의 관점에서만 아프간을 생각할까요
오랜기간 러시아침공 혔을때도 미군이 주둔했을때도 아프간 탈레반은 무너지지 않았죠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알고있는 단순한 이슬람 과격무장단제 일까요
수십년을 강대국에 맞섯고
지금은 아프칸을 점령 또는 해방이라고 할까요
그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상황을 잘 모르는 나는 이분법적 단정은 할수가 없겠죠
하지만 그 오랜기간 존속하고 지금의 결과가 있기까지  대중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존속할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필리핀 2021.08.21 07:20  
6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어리둥절할 때가 있는데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아프간에 대해 얼마나 알겠어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를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할 뿐이죠.

제가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위에 있는 댓글에서 사니아님도 강하게 비판을 했듯이,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재집권한 것을 ‘민족해방’이라고 하는 건 잘못이에요. 아프간에는 해방시킬 ‘민족’이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혼란스러운 거죠.

아프간은 식민지 제국주의 시절에 영토가 정해지면서 언어와 생김새와 종교가 다른 부족들이 모여 형성된 나라예요. 때문에 단일한 민족(국민) 정체성이 만들어지지 못했어요. 때문에 아프간에 ‘민족’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대한 개념도 느슨합니다. 이와 같은 부족 중심 사회는 그 부족의 질서와 전통만 존중해주면 더 강력한 정치권력에게 머리를 숙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탈레반은 아프간 최대 부족인 파슈툰족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적 이념조직이에요. 우리나라에도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조직(정당)을 묻지 마 지지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탈레반이 지금껏 존속하는 이유도 그런 관점으로 해석하면 이해가 빠르겠죠.

과거 탈레반 집권 시기에 끝까지 저항했던 북부동맹은 아프간 제2의 부족인 타지크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반 탈레반을 선포한 세력들이 북부동맹의 근거지인 판지시르 지역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탈레반의 재집권은 민족해방이 아니라 정권교체일 뿐이며,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부족들 간의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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