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풍파 일으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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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에 조용히 비상이 걸렸다. 지난 주 국무부 고위관료에 임명된 한 인물 때문이다.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자리에 임명된 그 인물은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어떤 자세로 한국과 조선을 상대할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대조선강경인사들을 대거 포진시킨 바이든행정부의 심상치않은 코리아반도 정책기류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맘이 불편했던 청와대는 대통령인수위를 거쳐 미 행정부에 등장한 그 인물로 인해 긴장에 휩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인물의 이름은 Jung H. Pak이다. 성이 박가고 이름이 정(Jung)이다. 한국 이름은 박정현이다. 나이는 올해 47 세. 맨하튼 양품점 집 딸로 태어나 줄곧 뉴욕에서 자랐다. 학부는 Colgate 를 다녔다. Colgate는 치약만드는 회사 Colgate가 설립한 학교는 아니고(약간의 관계는 있음), 뉴욕주 해밀턴에 있는 아트칼리지다. 컬럼비아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므로 컬럼비아 패밀리에 속한다.
정 박은 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태평양 특작본부(East Asia & Pacific Mission Center) 책임자를 지냈다. 국내 16 개 정보기관을 총괄지휘하는 국가정보국(DNI)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부책임자도 역임한 첩보전문가다.
청와대가 긴장에 휩싸인 이유는 정 박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 박은 조선의 리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중립적인 평가를 한 바 있다. 2018 년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학 석좌로 재임했을 당시 그는 김정은 위원장을 가리켜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말을 하면서 조선의 선제공격에 의한 전쟁가능성을 일축한 적이 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정부에 대해서는 극단적이라고 할만큼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이런 입장은 단지 대조선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정에 해당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행동전반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가 한국정부의 사고방식과 정책전반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가 최근 기고한 글 ‘North Korea’s Long Shadow on South Korea’s Democracy’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기고문에서 문재인 정권을 가리켜 ‘군사정권이 사용하던 대본을 뒤집어 반대자를 찍어누르고 있는 (flipped the script, aiming to squelch opposition) 독재유산의 상속자’라는 식의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기고문의 문맥과 용어를 살펴보면 노선 차이에 대한 비판을 넘어 한국정부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감정적 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감정적 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런 그가 Deputy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Asian and Pacific Affair라는 긴 이름의 직책에 임명된 것이다. 보통 직책의 이름이 길면 십중팔구 별 볼일 없는 한직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자리는 긴 이름에도 불구하고 별볼일없는 한직이 아니다. 대통령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전문가그룹의 총책임자다.
5 개의 동아시아태평양담당부차관보 자리 중 그가 맡게 될 분야는 보나마나 한국과 조선을 전담하는 자리일 것이다. 세계의 권역별 실무총책임자인 국무부 부차관보 직무특성상 그는 직속상관인 차관보 성 김(Sung Kim)이나 부장관 웬디 셔먼(Wendy Sherman)을 통할 필요없이 장관 엔터니 블링컨(Antony Blinken)에게 직보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대통령과의 독대도 가능하다.
정 박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첩보요원 출신인만큼 분석과 판단능력이 탁월할 수 밖에 없고 정책결정과정에서 작용하는 그의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게 아니다.
한국인들이 2 세 이하의 한국계 미국 고위관료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냉정하고 현실적인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나이브한 한국인들은 그가 한국계이니만큼 ‘한국의 입장을 잘 살펴줄 것’이라는 택도 없는 헛된 기대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정 박이 문재인 정부의 노선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의 입각을 좋아라하며 희희낙낙하는 한국 국내의 보수진영을 보면 한심한 나머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 박 같은 사람들은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살다 이민간 1 세와도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미국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미국의 공무원일 뿐 털끝만치라도 한국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감성적 민족주의를 인종주의와 거의 동일한 종류의 하급사상으로 취급하는 평균적 미국인들보다 훨씬 더 미국적인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깝다. HR 인성검사와 적성검사에서 인종-민족적 사고경향성의 편린이 조금이라도 노출됐다면 그런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건 비단 한국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출신 미국인들도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대부분 민족단위로 국가를 구성하여 각축을 벌이고 있는 세계무대에서 다양성이 고도화된 미국같은 다문화국가가 압도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갈등을 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중국같은 나라가 미국의 지위를 위협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뿐만아니라 조선과 같은 특수한 체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전혀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조선의 민족주의나 IS의 이슬람국가주의나 백인민족주의나 다 비슷비슷한 위협요소일 뿐이다.
이 글 초중반에 정 박이 김정은 위원장을 가리켜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했다는 소개를 했는데 이 말을 달리 오해하면 안된다. 그의 평가는 ‘그가 몰락을 자초할 행동을 할만큼 무모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의미이다. ‘조선의 선제공격에 의한 전쟁가능성은 없다’는 정세판단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참고한 리더인물평일 뿐이다.
며칠 전에는 개뚱딴지 같은 소리를 자주 하기로 유명한 한국의 보수논객들이 비교적 불개입주의성향이 강한 Bonnie Jenkins 국무부 무기통제 및 국제안보담당 부장관을 친북인사로 비난하고 있다는 보도를 읽었다. 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바이든을 헐뜯기 위해 조작한 소리인데, 한마디로 풀뜯어 먹다 죽은 호랑이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비난이든 지지든 자기입장을 표명하려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이야기하기 바란다.
Bonnie Jenkins 는 대조선말살정책을 밀어부치고 있는 강경파 소굴인 국무부 상층부에서 견제의 균형을 이루어 코리아반도에서 긴장조성위험을 삭감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온건파 관료들 중 한 명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인사균형이 조금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직책의 명칭은 원래 국무부 국제안보 및 비확산 담당 부장관(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International Security and Non-proliferation)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 자리에는 한국계인 주순 엘리엇 강 (C.S Eliot Kang, 한국이름은 강주순)이 재직했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직책이름도 함께 변경되어 아프리카계 여성인 Bonnie Jenkins가 새로 임명된 것이다.
Bonnie Jenkins 와 Jung H. Pak은 브루킹스연구소에 함께 몸담은 적이 있다.
Jung H. Pak이 코리아반도의 미래에 골치아픈 존재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의 대조선 정책노선이 강경하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동맹 파트너인 현재의 한국정부를 극도로 혐오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코리아반도를 담당하는 실무책임자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부모의 고국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발언과 행동은 가급적 자제해 주기 바란다.
2021. 1. 30 1830 (MST)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