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분강개만 하지말고......
일본이 한국을 ‘서방 27 개국 안보우방리스트’에서 삭제하고 ‘고정밀화학소재’에 대한 단계적 수출규제조치를 단행하고 있는 배경에 백악관의 동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국제자본간 밸류체인의 일부가 손상되는 부작용을 감수하고 일본정부가 저런 조치를 단행하려면 동맹차원의 전략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이런 추론을 가능하게 합니다.
알려진대로, 일본은 핵심기초화학소재분야에서 독점에 가까운 최고급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 입니다.
이번에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절차를 통제하기 시작한 3 개 품목 중 하나인 차세대 감광액 리시스트만 하더라도 그 가격이 갤런당 3 천 달러가 넘는 초고가이자 초고난도 제조기술이 필요한 용액으로, reliable 한 고급제품의 제조,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일본기업이 유일합니다.
일본이 ‘고정밀 화학소재’의 공급규제를 무기로 한국의 ‘반도체 조립공정’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 입니다. 그 규제가 경제적 동기가 아닌, 미일양국 정부의 전략적 결단과 합의를 바탕으로 감행되고 있다면 대규모의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는 군사강국이었다면 일본을 상대로 국지적 군사조치를 감행한다해도 별 무리가 없어보일만큼 일본정부의 행동 및 향후 예상되는 확대조치들은 과격합니다.
일본은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가 버린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측으로부터 원하는 보상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7.1 조치를 거두어들일 명분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규제대상을 점차 확대해 나가는 전면적 대결국면으로 사태를 악화시킬 개연성이 높습니다.
규제대상은 한국의 제조산업공정의 핵심고리를 쥐고 있으면서 그 기술적 라이센스를 일본이 독과점하고 있는 첨단소재와 부품들이 될 것 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정부는 ‘독자기술개발 등 장기적 희망’이외에 다른 대책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고국의 언론들은 일본기업들도 타격을 받을 것이므로 결국 아베정권이 고립되고 조치를 철회할 것이라는 식의, 사태의 본질과 동떨어진 소리들을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늘어놓고 있는 중 입니다.
우파논객들은 제 세상을 만났다는 듯이 그저 문재인 정권이 궁지에 몰리게 생긴 현상에만 고무되어 불이 난 집이 자기 집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아직 일본의 요구가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들은 다음 두 가지를 기본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첫째, 한국정부가 일제강점기 징용배상에 대한 2018 년 10 월의 한국 대법원 판결이 집행되지 못하도록 실효적 제동을 걸어 줄 것.
둘째, 1965 년 양국이 상호비준한 청구권협정을 포괄적 배상이 포함된 개념으로 재확인하고, 한일양국의 국제법상의 권리의무관계가 완결된 것으로 인정할 것 등입니다.
아베정부와 일본극우 정치집단의 한국에 대한 감정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어 있어서, 아마도 그들은 한국에 대해 1077 년 카노사의 굴욕이나 1637 년 삼전도의 삼궤구고두레에 준하는 백기항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목표가 일본으로서는 경제적 이득은 없으되 한국에 대해 정치적으로 완승하는 구도로 짜여져 있을 것이 거의 분명합니다.
즉, 일본의 입장에서는 약 800 억 원 가량 되는 징용배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일본에 적대적인 한국 국내의 진보-리버럴 세력에 대해 씻을 수 없을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 당분간 재기불능상태로 만들겠다는 분명한 정치적 목표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어쨌든,
일본이 위와 같은 요구사항을 조건으로 내세우며, 만일 한국정부가 자기들의 요구조건을 수락하지 않을 경우 반도체, 자동차, 기계, 석유화학 등 한국의 기간산업 전분야에 걸쳐 기본소재공급을 제한하는 전면적 봉쇄작전을 벌이겠다고 협박할 때,,
즉,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의 백기항복을 요구할 때,
만일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라면 어떻게 대응하겠는지,,, 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사태에 관련해서는 ‘애국적 비분강개’만 하지말고,
또 외교실패를 빌미삼아 문재인 정부를 당파적으로 비난할 생각만 하지말고,
이념의 좌우을 떠나 '과연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좀 솔직하고 이성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