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와 이야기하기 전에 태사랑에 먼저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난민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지난 6 월 29 일 올렸던 그 글을 찾다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떤 분이 제 당시 글 상당부분을 발췌인용하여 출처표시도 없이 오마이뉴스에 올렸네요.
제 글은 2018 년 6 월 29 일 오전 10 시 45 분에 태사랑에 등록됐지만, 글편집을 위해 운용하는 제 블로그에 먼저 올렸으므로 실제 등록시간은 그보다 빠릅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신 분은 제가 태사랑에 그 글을 올린 시간보다 만 33 시간 늦은 6 월 30 일 오후 19 시 43 분 등록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저 글이 제 글을 표절한 것인지 아니면 출처밝힘을 잠시 잊고 인용을 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일부 글의 내용이 유사해졌는지는 오마이뉴스측과 글의 필자를 직접 만나 그 의견을 들어보고나서 판단할 것 입니다.
만일 인용이라면 인용출처를 밝히지 않고 기사를 실은 오마이뉴스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아 낼 것이고,
매체와 필자측이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한다면 대한민국 법원이 그 '우연의 일치'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그 판단결과를 기다려 볼 것 입니다.
제가 이 알림을 하는 이유는 '누가 내 글 출처인용없이 표절 비슷한 걸 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걸 공연히 광고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해당 원글을 태사랑에 올렸으므로, 일단 이런 사실을 태사랑에서는 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알립니다. 제가 거꾸로 저 분 글을 출처표시없이 인용했다고 덤터기를 쓸 수 있으니까요.
그 중 한 가지 무지하게 웃기는 것은
저는 원글에서 분명히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난민규모는 약 6 백 여 만 명이었다.
적지 않은 수의 전쟁난민들이 미국, 캐나다, 유럽 각국, 호주, 남미, 심지어 인도와 같은 제 3 세계국가로 흘러들어갔다.'
라고 분리된 문장을 사용해 두 가지 별도의 사실에 대한 인과관계를 단절했는데
저 분은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난민 규모는 600 만 여명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남미, 인도로 흩어졌고, 가까운 일본으로도 갔다.'고 써 놓았네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도 제 글을 그렇게 읽었으니(만일 저 분이 제 글을 인용한 것이라면) 강희제님이 제 글을 보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시는 걸 무조건 비난할 수 만은 없겠습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지만, 저렇게 여러 사람이 오독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제 본의는 아니나 결과적인 misleading truth 가 되었군요.
아래는 태사랑에 올린 글과 33 시간 후 오마이뉴스에 올라 온 칼럼을 비교한 것 입니다. 해당되는 부분만 가져 왔습니다.
태사랑 2018. 6.29
...지금의 유엔난민기구는 한국전쟁 중인 1951 년 1 월, 이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을 위기에서 탈출시키고 그들을 구호하기 위해서 구성된 국제조직에서부터 출발했다.
그 이전에도 국제난민기구가 존재했지만 UN 이 창설되고나서 처음 만들어진 난민구호조직의 중심에는 1958 년까지 운영된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가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난민규모는 약 6 백 여 만 명이었다.
적지 않은 수의 전쟁난민들이 미국, 캐나다, 유럽 각국, 호주, 남미, 심지어 인도와 같은 제 3 세계국가로 흘러들어갔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일본에 정착한 난민 또는 탈출민들도 많았다.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전쟁난민을 수송한 배는 미국상선 매러디스 빅토리호다.
이 배는 세계 전쟁사에서 마치 난민수호천사처럼 우뚝 서 있는 상징적 존재들 중 하나다.
이 배가 수송한 전쟁난민은 물론 한국난민들이었다.
이 배는 1950 년 12 월 22 일 죽음의 흥남항을 출발했다.
...당시 선장의 결단과 미국군 수뇌부의 양해로 이 배에 승선할 수 있었던 피난민은 1 만 4 천 여 명이었다.
이 배에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부모도 승선하고 있었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약 800 만 명에 달하는 한인인구 중 1960 년대 이후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등으로 이주한 이른바 이민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거의 모두 난민과 그 후손들이라고 보면 된다.
...며칠 전 이 나라 인구의 10 만 분의 1 에 해당하는 숫자의 예멘난민이 제주도에 도착하면서 이 나라가 갑자기 난민문제로 시끄러워졌다.
오마이뉴스 2018. 6.30
유엔 난민기구는 한국전쟁중인 1951년 이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을 위기에서 탈출시키고,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구성된 국제조직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종전 초반 무상원조가 없었다면 적게는 수백만명 많게는 인구 절반이 극심한 기아상태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난민 규모는 600만 여명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남미, 인도로 흩어졌고, 가까운 일본으로도 갔다.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난민을 실은 수송선은 미국의 메러디스 빅토리호인데 1950년 12월 22일, 1만 4000 여명의 난민을 수송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배에 탔던 사람 중에 문재인 대통령 부모님도 있었다. 현재 해외거주 800만 여명의 한인들은 1960년대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로간 이민자들을 제외하고 거의 난민 출신들이다. 제주에 500명의 예멘 난민들이 들어와서 나라가 온통 난리다. 우리나라 인구의 10만분의 1정도가 들어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