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기 전에 꼭 보고싶은 것...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과 공포를
제대로 알고 있는 남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들은 과연 페미니즘에 대해 떠들 자격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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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항상 정문에서 제가 사는 동까지 걸어가요. 한 5~10분 걸려요. 남편은 지하 주차장까지 택시를 타고 우리 동 앞에서 내려서 오더라고요. 남편이 저한테 왜 지하 주차장까지 택시를 이용하지 않냐고, 굉장히 답답한 사람이라고 해요. 그럼 전 “여자들은 택시 기사들한테 혼난다, 얼마나 욕을 먹는 줄 아느냐”고 말해요. “요즘 젊은 것들은 편하려고 한다” “택시가 자가용인 줄 아느냐”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봤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설명해도 남편은 이해를 못해요.
저는 밤에 잘 돌아다니지 않아요. 밤에 돌아다니면서 여성들이 겪은 수많은 범죄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요. 누가 저한테 “너 검찰에서 꽃뱀으로 불린대”라는 거예요. 그럼 전 우스개로 “나는 바람피웠다고 의심받아서 일곱 토막으로 잘려 죽은 여자 주검을 봤기 때문에 무서워서 바람 못 피워”라고 말하죠. 남성들은 여자들이 겪는 일상의 공포와 고통을 알지 못하죠. 알지 못하면서 ‘너네가 무슨 차별을 받았어’라고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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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힘차게, 원더우먼처럼 찍어주세요.”
검정색 치마 정장을 입은 그가 카메라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몸을 곧추세웠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인 그는 ‘피해자는 어둡고 슬퍼야만 한다’는 피해자다움을 깨고 싶다고 했다. 지난 1월29일 JTBC 뉴스에 출연해 2010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한테 성추행을 당하고 인사 보복 피해까지 입었다고 입을 연 서지현 검사다. 그는 검찰 조직 생활과 ‘미투’ 피해자들에 대해 말할 땐 눈시울이 붉어졌고, 사법연수원 생활을 이야기할 땐 웃기도 했다. 피해 말하기 이후 행복하기도 슬프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인생”이라며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이야기할 것”이라는 서 검사를 12월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올해 1월 ‘직장 내 성폭력 피해 말하기’ 이후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달라진 게 있다면 출근하지 않고, 집 밖에 잘 안나간다는 거예요. 집안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인터넷도 하고 책도 보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가끔은 굉장히 힘들고 많이 우는 날도 있지만, 그것 역시 인생이라 생각해요.
-집 밖에는 왜 안 나가세요.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힘들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집 근처 백화점에서 지인과 함께 케이크를 먹었는데 그 내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왔어요. 다들 눈썰미가 좋으신가봐요. (웃음) 보통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요.
-외출을 삼가는 것 외에 일상에서 피하는 것이 있나요.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님을 가끔 뵙는데 처음에 제가 굉장히 힘들 때 만났어요. 제가 얘기하면 사무장님이 울고, 사무장님이 얘기하면 제가 울었어요. 사무장님이 해준 이야기가 ‘걱정한 것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되도록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였어요. 그래서 걱정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생각하지 않으려는 걱정과 절망은 무엇인가요.
=음… 가장 큰 두려움은 진실이 끝끝내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가장 큰 절망은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진 찍을 때 밝게 찍어달라고 한 이유가 있나요.
=어둡게 나오는 게 싫더라고요. 피해자는 꼭 어두워야 하나요. 그리고 어둡게 나오면 제 얼굴이 울퉁불퉁해 보이기도 하고 성형하지 않았는데 화면으로 본 사람들이 성형했냐고 많이 물어봐서요. (웃음)
“더 가만히 있을 방법이 뭐죠?”
서 검사는 현재 질병 휴직 중이다. 이후 그는 단 하루도 출근하지 못했다. 10여 년 동안 피의자를 마주했던 검사는 11개월째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불안장애 등의 이유로 현재 병원과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체중도 조금 줄었다. 서 검사는 자신이 아프다고 말하는 걸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약해 보이고 도피하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위경련으로 쓰러졌다. 건강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했던 그가 다시 언론 앞에 선 이유는 무엇일까. 서 검사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아직 달라진 것이 없다.” 서 검사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인사 보복 피해자 자격으로 12월17일 법정 증언대에 선다.
-다시 인터뷰에 나섰는데요.
=제가 현직 검사지만 현행 법과 제도로 (피해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론에 나왔던 것이거든요. 그러다 조사단이 꾸려지고, 조사하고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진실이 밝혀질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사가 진행되는 것을 쭉 지켜보니 조사 의지도 의욕도 능력도 없고, 형식적인 조사와 형식적인 기소를 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희망이 사라졌죠. 한 달 전쯤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떤 분이 ‘대부분의 남자들은 서 검사가 굉장히 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좀 있어라’고 했어요. 집 밖에도 나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더 가만히 있을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아직 가해자에게 1심 선고도 나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시 해보자는 생각이에요.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어요. 법을 다루는 검사인데도 범죄라는 인식이 없나봐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직에서 싫어할 텐데…. 제가 2004년 처음 검사가 됐을 땐 단 하루도 성희롱을 당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여자 동기 검사 20명이 함께 임관했는데 그때 검찰청에서 난리가 났어요. 처음으로 여성 검사가 100명이 넘은 거예요. 전체 검사 2천 명 가운데 100명이었죠. ‘여검사 100명이 넘었으니 우리도(검찰 조직도) 끝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여성 검사가 없을 때 했던 성적 희롱과 행동을 여성 검사가 많아졌을 때도 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지금은 그때보다 성폭력 부분이 많이 줄었어요.
-피해 말하기 이후 검찰이 달라진 게 있나요.
=몇몇 여성 검사한테 ‘회식이 없어지고 회식자리에서도 조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는 달라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검찰이 지금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제2의 서지현’이 나오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간부들이 똘똘 뭉쳐서 더 이상 욕할 수 없을 만큼 제 욕을 하고 있어요. 그런 걸 봤을 때 전혀 달라지지 않다고 생각해요.
-간부들이 서 검사를 비난하는 건 어떤 메시지를 주나요.
=제2의 서지현이 나오면 너희도 서 검사처럼 비난받고, 조직에 돌아올 수 없고, 조직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고, 배척되고 온갖 음해를 당할 것이라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나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고, 여성과 약자가 겪는 고통임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미투 관련 법이 160개 정도 상정됐는데 하나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고 해요. 그래도 ‘여성 인권이 좋아질까요’라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죽기 전에 보고 싶어요’예요. 그런데 ‘검찰이 변할까요? 개혁될까요?’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자신 있게 ‘제가 죽기 전에 못 볼 것 같아요’라고 말해요.
변호사도 못한 걸 각오하고 한 일
서 검사는 올해 초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자신의 피해가 담긴 긴 글을 올렸다. 그는 당시 글을 게시하기 전 이미 사표를 준비했다고 한다. “조사단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시점에 사표를 내기로 대리인단과 합의한 상태였다. 검찰 출신으로 변호사를 하면 검찰하고 친하지 않고서는 변호사를 하기 어렵다. 내가 검사 그만두고 변호사도 할 수 없겠구나 각오한 일이다.” 그는 2009년, 2012년 형사부, 과학수사 분야에서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2~2017년 12차례나 형사부, 과학수사, 강력부 등에서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 업무 능력이 우수했던 12년 경력의 검사는 낮은 연차 검사들이 가는 통영지청으로 발령받았다. 안태근 검사가 법무부 검찰국 국장으로 부임한 뒤였다.
-이프로스에 글을 올리기 전 사표를 준비한 이유가 있나요.
=검찰 안에서 검찰 문제를 이야기한 임은정 검사도 승진에서 3년 동안 누락됐고, 조직에서 임 검사를 손가락질했거든요. 박병규 검사는 임 검사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가 유일무이하게 적격 심사에서 탈락해 쫓겨나기도 했잖아요. 그런 걸 봤을 때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올해 초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딸을 낳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딸을 낳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하죠. 현행 법과 제도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제가 나와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 달라진 게 없잖아요.
-최근 페이스북에 정치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썼습니다.
=너무 웃기는 것 같아요. 왜 피해자에게 어떤 목적이냐고 물어보는지, 왜 피해자의 업무 능력이나 인간관계를 물어보는 것인지요. 제 인간관계나 업무 능력에 대해서 어떤 부끄러움도 없지만, 업무 능력이 낮고 인간관계가 나쁜 피해자는 입을 열 수 없다는 건가요? 특히 법조 출입 기자들은 ‘그분들’이랑 형·동생 하고 지내느라 그분들 말을 믿고 계셨어요. 저한테 ‘JTBC 방송 출연 때 샤넬을 입었다면서요?’라고 물어보기도 해요. 저는 그럼 ‘샤넬 아닌데요, 레노마인데요’ 하고 보여줘요. 사치하고 인간관계가 나쁘면 범죄 피해를 입어도 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 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2차 가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나요.
=저를 인간관계나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검사로 만들 게 뻔하다고 예측했어요. 예측한 대로 똑같은 일이 일어났죠. 사실 좀 우스웠어요. (웃음) 상상력이 저 정도밖에 안 되나, 저 매뉴얼밖에는 없나. 우습기도 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죠. 제가 딱 서른 살에 검사가 됐거든요. 검사가 되려고 20대 때 열심히 공부했고, (울음을 참으며) 30대 때… 검사가 돼서 내 젊음을 바친…. 내가 15년 동안 근무했던, 내가 사랑하는 직장의 사람들이 더는 욕할 수 없을 정도로 제 욕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파요.
-아직 복직을 못한 건 2차 피해 우려가 있어서인가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동료들을 고소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고소를 못하니 시민단체에서 고발했어요. 그게 4~5월인데 아직 수사 개시조차 하지 않아거든요. 저를 공공연하게 명예훼손하고 사건을 은폐한 사람들은 좋은 자리로 영전했어요. 그런 걸 봤을 때 검찰이 저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죠.
피의자는 다 보는데, 피해자는 자신 조서만 열람
-피해자로서 겪은 검찰과 법원은 어땠나요.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수사기록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현행법상 가해자는 기소되고 나면 모든 증거기록을 열람할 수 있어요. 상대방과 관련자가 어떻게 얘기했는지 모두 알 수 있죠. 피해자는 자기 조서만 복사해서 볼 수 있어요. 자기 진술은 알고 있으니까 필요 없잖아요. 소송이나 소송 진행에 대응할 수 없죠. 또 수사기관과 검찰·재판기관의 성감수성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도 생각했고 지금도 절실히 느끼는 부분이죠.
-진술 열람 문제는 피해자가 되면서 느끼신 건가요.
=이전에도 왜 피의자에게는 다 공개하고 피해자에게는 안 되나 의문을 가졌지만, 개인 검사 한 명이 법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한국 경찰엔 여성청소년과가 있고, 검찰에도 성폭력 전담 검사, 또 피해자 지원 체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을까요.
=성감수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수사하면서 오히려 수사기관에 의해 2차 가해를 당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거든요. 성폭력과 가정폭력도 그렇고, 일단 피해를 당하는 여성을 색안경 끼고 보는 시선이 있어요. 그것이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하죠. 최후의 수단으로 믿고 찾아가는 곳에서 오히려 수치와 모멸을 당할 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성폭력 사건을 맡아본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죠. (웃음) 대부분 성폭력·가정폭력 사건을 여성 검사에게 전담시키기에, 저도 특수부 가기 직전까지 주로 성폭력 사건을 맡았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수사 과정에 나도 저랬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나요.
=음… 일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최선을 다해서 일했지만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진실을 아는 것이 어렵잖아요. 제발 제게 진실을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매일 기도했어요. 하지만 어떤 당사자에게는 부족했을 수 있죠. 그때도 지금도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여성의 처지와 입장, 잘 알지 못하면서
올해 초 서 검사가 언론 앞에 나서 ‘피해 말하기’를 하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직장 내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서 검사의 피해 말하기 이전에도 숨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직, 그것도 법을 다루는 검사인데도 직장에선 직업인이 아닌 ‘여성’으로 소비되는 현실의 민낯을 보게 된 것이다. 서 검사의 ‘#미투’는 피해자 개인에게 지웠던 성폭력 피해 책임이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월 미투 당시 피해자들한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용기 내서 입을 열고 나오세요’라고 할까요, 아니면 ‘나오면 더 고통스러울 수 있으니 평생 입을 닫고 사세요’라고 할까요.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생각해요. (서 검사는 여기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피해를 얘기하는 것에 두려워하는 범죄는 성폭력밖에 없어요. 피해자가 보호받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지, 피해자에게 ‘용기 내세요’라고 하는 건 무의미해요.
-‘검사도 성추행을 당하는구나’라고 많은 사람이 이해했어요. 하지만 피해 확인을 증명하라고 요구받는 사람도 많았는데요.
=저도 가해자가 성폭력 부분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간 거지 인정하지 않았다면 오해를 받았겠죠.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고, 업무량도 워낙 많고 끔찍한 범죄를 상대해야 해요. 저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시부모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어요. 힘든 상황에서 정말 어렵게 검사 생활을 15년 동안 했어요. 제가 검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목소리를 들어준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힙합에서도 페미니즘 이슈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항상 정문에서 제가 사는 동까지 걸어가요. 한 5~10분 걸려요. 남편은 지하 주차장까지 택시를 타고 우리 동 앞에서 내려서 오더라고요. 남편이 저한테 왜 지하 주차장까지 택시를 이용하지 않냐고, 굉장히 답답한 사람이라고 해요. 그럼 전 “여자들은 택시 기사들한테 혼난다, 얼마나 욕을 먹는 줄 아느냐”고 말해요. “요즘 젊은 것들은 편하려고 한다” “택시가 자가용인 줄 아느냐”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봤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설명해도 남편은 이해를 못해요.
저는 밤에 잘 돌아다니지 않아요. 밤에 돌아다니면서 여성들이 겪은 수많은 범죄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요. 누가 저한테 “너 검찰에서 꽃뱀으로 불린대”라는 거예요. 그럼 전 우스개로 “나는 바람피웠다고 의심받아서 일곱 토막으로 잘려 죽은 여자 주검을 봤기 때문에 무서워서 바람 못 피워”라고 말하죠. 남성들은 여자들이 겪는 일상의 공포와 고통을 알지 못하죠. 알지 못하면서 ‘너네가 무슨 차별을 받았어’라고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안태근과 국가를 상대로 강제추행과 직권남용에 따른 보복인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서 “피해자라면 누려야 할 권리”라고 말했어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성폭력의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거봐, 돈을 노린 꽃뱀이야’라고 거의 100% 비난을 받기 때문에 굉장히 두려워하죠. 당연히 피해자로서 받아야 할 권리이고 피해자로서 행사해야 할 권리인데도 하지 못하죠. 그래서 민사소송도 제기한 거예요.
-현재 치료 중이신데 산업재해 신청 계획도 있나요.
=네, 대리인들과 논의하고 있어요.
‘해피 걸’에서 ‘정의로운 걸’로
-요새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혐오 관련 책을 읽어요. (웃음) 최근엔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었어요. 홍 교수도 굉장히 많은 욕을 먹고 있더라고요. 혐오를 반대한다는 데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여성을 동등하게 대해달라는데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혐오를 공부하는 게 검찰에 복귀해서도 도움이 되겠네요.
=그렇죠. 책을 읽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웃음)
-전자우편 주소가 인상적이었어요. (서 검사의 전자우편 주소는 ‘행복’과 ‘웃음’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가 포함돼 있다.)
=17~18년 전 전자우편이라는 걸 처음 만들면서 가진 아이디예요. 연수원 시절 때 별명이 ‘해피 걸’(happy girl)이었어요. 잔걱정 없고 항상 행복하고 감사해하며 살아왔거든요. 인생의 방향이 이렇게 틀어지리라곤 생각을 못했죠.
-지금은 무슨 ‘걸’인 것 같아요.
=정의로운 걸? (웃음) 검사잖아요. 입을 연 이유 중 하나가 검사이기 때문이에요. 대한민국 검사라면 정의로워야 하잖아요.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미투를 말하고 후회한 적은 없나요.
=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이야기할 것 같아요. 저는 검사니까요.
인터뷰를 마친 뒤 짐을 다 챙긴 서 검사는 마지막으로 검정색 마스크를 썼다. 인터뷰에서 본인 생각을 막힘없이 말했던 서 검사는, 어느새 얼굴의 반 이상을 검은 마스크로 가리고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피해자가 됐다. “피해자는 범죄 피해를 입고 고통받은 걸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거든요. 그런데 왜 가해자에게 관대할까요.” 그의 일상을 바꾼 가해자들을 사람들은 기억할까.
장수경 <한겨레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