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적은 어디인지
1. 주적론 대두 배경
팀스피리트(주한 미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합동 군사훈련)는 1976.부터 시작되어 매해 이루어졌었으나,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국제적 흐름에 맞춰 1992. 실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출범 직전인 1993. 1.경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한다는 사실이 발표되었고, 북한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며 남북관계 중단을 경고하였으며, 1993. 3. 팀스피리트 훈련이 실시되자 북한은 1993. 3. 12.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였고, 1993. 11. 23.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강경 입장을 함에 따라 남북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이어 북한 대표 박영수 조평통 부국장은 1994. 3. 19.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교환 실무회담에서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그쪽이 전쟁을 강요하는 데 대해서는 피할 생각이 없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라는 소위 '서울불바다' 발언을 하였고, 이어 54분의 회담 내용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2분 40초 분량의 테이프가 방송사로 넘겨졌으며, 방송사는 이 중에서도 반말이 섞인 격양된 1분을 편집해서 방송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김영삼 정부는 협상의 길목을 차단하면서, 북핵 문제를 위기의 길로 몰아갔고, 사재기를 결과적으로 부추겼으며, 결국 1994. 6. 13.부터 3일간 강남 부유층을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사재기 열풍이 불었고, 각 방송사는 김영삼 정부의 요구로 연일 전쟁 고조감을 부추겼으며, 1994. 7. 8.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과 평화협상을 하던 김일성이 사망하였고, 1994. 9.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 2척과 함정 33척이 원산 인근 동해에 집결해 영변의 핵시설을 공습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다행히 1994. 10. 21. 북한과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의 대가로 북미수교, 북미 간 평화협정, 북한에 대한 경수로 발전소 건설과 대체 에너지인 중유 공급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제네바 합의를 하여 어느 정도 진정은 되었으나, 대한민국에서의 인위적으로 조성된 위기감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2. 국방백서에서의 주적론
이에 국방부는 1995. 국방백서(국민들에게 국방정책을 알리기 위해서 국방부에서 발행하는 보고서 형태의 책자)에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2000. 6.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경의선 연결 작업이 진행되는 등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북한 주적론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2002 국방백서는 따로 작성되지 않고 대신 2002. 12. 국방백서 대신 “1998∼2002 국방정책”을 발간하였고, 위 책자에는 대북 주적개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결국 노무현 정부의 국방부는 2005. 2. 초 발간된 국방백서에서 “주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였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에도 주적 표현 삭제가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3. 뜬금없는 주적론 대두
가. 2017. 4. 19. 2017 대선 당시
2017. 4. 19. 2017대선 당시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회에서 바른미래당 유승민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북한이 주적인가”라고 물었고 문재인 후보는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 측 상임선대위원장인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2017. 4. 20.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겨냥해 “엄연히 우리 국방백서에는 주적이 북한으로 나와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황당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안보 팔이, 색깔론 등 구태의연한 주장들이지만 위에서 보신바와 같이 이미 국방백서에 삭제된 것이어서 주적론을 주장한 자들이 행한 바보들의 행진이었습니다.
나.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2017. 5. 24일 열렸는데, 이날도 대선 과정에서도 논란이 일었던 “북한 주적론”이 자유한국당에 의해 다시 제기되었습니다.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경북포항시남구울릉군)은 2017. 5. 24. 국회에서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이낙연 후보자에게 “북한은 주적인가”라는 질문을 하였고, 재차 “국방백서에는 북한이 적으로 돼 있다.”고라고 까지 주장하였습니다.
4. 헌법, 헌법재판소 결정, 대법원 판례 - 북한은 반국가단체
대한민국 최고법인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구한말영토승계론과 국제평화지향론의 의미를 가지고, 규범적으로는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뿐이고, 휴전선 이북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불법적으로 점령한 미수복지역이 되며, 따라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배체제를 찬양하거나 지지하는 자는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1997. 1. 16. 선고 92헌바6, 26, 93헌바34, 35, 36(병합) 사건<서울형사지방법원 91고합1357(92헌바6 사건), 서울형사지방법원 92노851(92헌바26 사건), 서울고등법원 93노949(93헌바34 사건), 서울고등법원 93노1281(93헌바35 사건), 서울고등법원 93노936(93헌바36 사건)에서 제기된 각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위한되는 여부에 대한 위헌법률심사>에서 “북한이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소위 남북합의서의 채택·발효 및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등의 시행 후에도 적화통일의 목표를 버리지 않고 각종 도발을 자행하고 있으며 남·북한의 정치, 군사적 대결이나 긴장관계가 조금도 해소되고 있지 않음이 현실인 이상, 국가의 존립·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신·구 국가보안법의 해석·적용상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이에 동조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헌법이 규정하는 국제평화주의나 평화통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여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1961. 9. 28. 선고 4292 행상 48 사건에서 “북한지역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는 한반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므로, 이 지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칠 뿐 대한민국의 주권과 부딪치는 어떠한 주권의 정치도 법리상 인정될 수 없다.”라고 선고한 이래, “북한괴뢰집단은 우리 헌법상 반국가적 불법단체이다.(대판 1983. 3. 22. 선고 82도3036)”, “북한이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는 분명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당국자의 명칭을 사용하고, 남북동포간에 자유로운 왕래와 상호교류를 제의하였으며, 남북국회회담 등과 같은 회담을 병행하고, 나아가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였다거나 ‘남북사이의화해와불가침및교류·협력에관한합의서’에 서명하였다는 등의 사유가 있다 하여 북한이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대판 1992. 7. 24. 선고 92도1148)”라고 판시하였고, 가장 최근에는 대법원 2017. 11. 29. 선고 2017도9747 판결로 이를 확인하였습니다.
4. 역사에 있어서 주적
가. 중국의 칩임
중국 세력이 우리나라에 침입한 것이 약 120여 회 정도이나, 무엇이 남을 중대한 침입은 대부분 ‘중국’이 아니라 중국을 위협하거나 중원을 해체한 이민족, 특히 한반도 북쪽 유목민 또는 유목농경민들이었습니다.
고구려를 침입한 수나라는 양견이 북주의 마지막 황제 정제의 선양을 받아 세운 나라이고, 비록 양견이 한족이지만 그 기반인 북주는 선비족이 주류였으며, 수나라가 무너지고 세워진 당나라 역시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으나, 당나라를 세운 이연 역시 수나라 황실의 종친이었으나 역시 선비족이었습니다.
요나라 성종의 명을 받은 소손녕이 993. 고려를 침입한 것도 중국이 아니라 북방 거란족이었고, 13세기 고려를 휩쓴 것도 중원을 무너뜨린 원나라의 몽골군이었습니다.
또한, 1627. 정묘호란, 1636. 병자호란을 일으킨 후금의 태종 애신각라 황태극은 만주족이었습니다.
나. 일본 세력의 침입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받은 외침이 총 900 여 회 정도이고, 그 중 781 여 회는 일본세력에 의한 침입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시대이전에 20여 회, 삼국시대에 84회, 남북국시대에 110 회, 고려시대에 380여 회, 조선시대 187여 회라고 합니다.
우선 조선시대 주요 침입만을 살펴보면, 1510. 삼포왜란, 1555. 을묘왜변, 1592. 임진왜란, 1597. 정유재란, 1875. 운양호 사건, 1876. 강화도조약, 1895. 을미사변, 1905. 을사늑약, 1910. 경술국치 등입니다.
다.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의 침입
야만인에 불과하였던 유러피안(극히 제 졸견임)은 르네상스 이후 어느 정도 문화적으로 눈을 뜨더니 지리상 발견 이후 차츰 부를 축적하였고, 이윽고 산업혁명을 통하여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서양세력은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식민지를 분할 점령하였고, 아프리카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결국 그 눈을 동양으로 돌리는 서세동점이 시작되었습니다.(인도, 인도차이나, 중국, 필리핀은 논외로 하고, 조선만 언급하기로 함.)
조선은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를 일으킨 미국과 1882. 불평등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고, 이어 영국(1883), 독일(1883), 러시아(1884), 프랑스(1886) 등과 불평등조약 맺어 강제적 문호개방을 하였습니다.
결국 조선은 “임자 없는 포도밭”으로 전락하여, 열강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각종 수탈을 당하였습니다.(각국의 싹쓰리 수탈 내용은 논외)
5. 현재 외국에서의 주적 문제
외국의 경우, 탈냉전 이후 정부 공식발간물에 적 개념을 명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할 만큼 드문 일이 되고 있다.
미국은 구체적인 국가를 명시하지 않고 가상상태에서의 적, 위협, 도전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추세이고, 러시아 역시 특정 대상국을 지칭하지 않고 근본위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며, 독일은 냉전시기에 군사적 위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다가 통일 이후 불특정 위협이라는 의미로 도전(Herausforderung)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고, 우리와 유사하게 실제적인 대치관계 혹은 적대관계에 놓여 있는 국가들도 공식문건에서 상대방을 적이나 주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피하는 추세입니다.
6. 대한민국 내면에 있어서 주적은 어디인가?
가. 북한 주적론의 문제점
북한이 주적인가에 대하여는 이미 국방백서에서도 삭제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북한주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강한 국가보안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주적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해야 하는데, 이는 헌법 제3조에도 반하고, 헌법재판소 결정례나 대법원 판례에도 반하는 것으로, 오히려 국가보안법 위반(제7조 찬양·고무등)으로 처벌될 수도 있습니다.(국가 아닌 반국가단체를 국가로 인정하여 북한에 금칠을 하여 주는 것은 반국가단체를 찬양하는 것이므로, 강한 국가보안법을 주장하는 자가 오히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 될 수도 있음.)
나. 북한, 중국 주적론의 문제점
북한 주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의 주적이 북한과 중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관점에서의 주적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본을 슬그머니 제외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기생하는 일본의 앞잡이들은 자신들의 친일매국과 일본의 만행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기를 쓰고 북한, 중국 주적론을 주장하면서 일본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보수적 가치는 바로 매국친일, 군부독재, 지역감정조장에 의한 국론분열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를 이제 동서로 갈라놓은 자들이 주로 하는 소리가 바로 북한, 중국 주적론입니다.
7. 역사적으로, 현재 그리고 앞으로 주적은 어디인지?
가. 제 졸견은 역사적으로는 일본이었고, 현재나 미래에 있어서 잠재적인 주적인 역시 일본이 아닌가 합니다. 원숭이 버릇 개 못 주기 때문입니다.
나. 고견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