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하고 지도상에서 사라진 도시
사일러스
2
240
2018.02.15 12:18
나는 지금 지도상에서 사라진 옛 도시를 찾아 어제 밤 이곳으로 왔다.
내일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새벽 어둠을 틈타 비슷한 생김새의 얼굴들이 아래층으로 조용히 모여들겠지?
.....
그들의 대화는 어김없이 대폭발로 시작된다.
40년 전 쯤인가? 어느 겨울 밤.
꽝!!!!!
담장이 넘어가고, 날아온 파편에 장독이 깨지고....
전쟁이다!!!
아이고, 서울로 공부나간 아들딸내미, 일나간 새신랑은 어찌되었나?
젊은이들 생사 걱정에 밤새 애간장이 녹았다.
이 대목에서 시간의 절대값은 완전히 무시된다.
당시 비록 흑백이긴 했지만 한 두 집이 TV를 갖고 있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는 이야기의 대목이 있는데.... 그렇다면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바로 알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가족들 생사 걱정 1초가 어찌 하루보다 짧다고 할 수 있으며 1분이 어찌 일주일보다 짧다고 할 수 있겠나 생각하면 머리 아닌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긴 한다.
반면, 서울 나가있던 당시 청년들의 본가 걱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뉴스에선 난리인데, 당시 전화가 흔치 않았고 전보라는 것으로나 연락할 수 있었다니? 전설에 의하면 당시에는 전화 한 대 살 돈이면 집이 10채 값이었다나???? 믿거나 말거나. ㅋㅋ 그럼 나는 지금 집 10채를 손 안에 쥐고 조물락 거리고 있으니 얼마나 부자인겨?
.......
반복의 효과인가?
하도 들어서 그런지 나 혼자 대학로에서 극을 올려도 되겠네. ㅎㅎ
..........
고딩 때, 처음으로 나 혼자 여기를 가야 했었다.
동서울 버스 터미널
기억 속에 또렸한 이름을 당당하게 외친다.
“이리요!”
??? 매표소 젊은 누나가 기계음으로 묻는다.
“죄송합니다만, 고객님! 목적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리요!”
????
....
아참! 내가 지금 모라 하능겨?
“죄송합니다. 익산이래요.”
........................................
40년 전 이리역 열차 폭발 사고로 우여 곡절~~~~~지금은 지도상에서 지워진 이름 전라북도 “이리”시!
하지만 설날의 신화 속에서,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다.
당시 이재민들은 인근에 성한 가옥이라도 있으면 문을 두드렸고 동네 사람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기꺼이 이들을 맞아 들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훈훈한 인심인가? 과연 지금 같은 시대라면 가능할까?
......
전주 한옥 마을을 찾는 분들이 많다. 가까운 익산에 보석단지가 있고 4월(5월?)에는 보석 축제도 열린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들이 한 번 가 볼만한 코스가 아닐런지?
전설에 의하면 전주가 양반 마을이라고 하지만 양반집 자제들은 간재 전우 선생에게 공부를 배우기 위해서 익산으로 구름떼(ㅋ 구름 떼의 기준은 정확치 않음) 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학당을 기반으로 의병이 일어나기도 했다. 예비 태교 삼아서??? 보석 축제 후엔 여기도 꼭!
터미널에 가면 “익산”이라고 하지 말고 “이리”라고 한 번 해 보시길....매표소 직원의 표정이 재미있을 것이다. 하긴 앱에서 다 하는 데 무슨....
내일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새벽 어둠을 틈타 비슷한 생김새의 얼굴들이 아래층으로 조용히 모여들겠지?
.....
그들의 대화는 어김없이 대폭발로 시작된다.
40년 전 쯤인가? 어느 겨울 밤.
꽝!!!!!
담장이 넘어가고, 날아온 파편에 장독이 깨지고....
전쟁이다!!!
아이고, 서울로 공부나간 아들딸내미, 일나간 새신랑은 어찌되었나?
젊은이들 생사 걱정에 밤새 애간장이 녹았다.
이 대목에서 시간의 절대값은 완전히 무시된다.
당시 비록 흑백이긴 했지만 한 두 집이 TV를 갖고 있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는 이야기의 대목이 있는데.... 그렇다면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바로 알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가족들 생사 걱정 1초가 어찌 하루보다 짧다고 할 수 있으며 1분이 어찌 일주일보다 짧다고 할 수 있겠나 생각하면 머리 아닌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긴 한다.
반면, 서울 나가있던 당시 청년들의 본가 걱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뉴스에선 난리인데, 당시 전화가 흔치 않았고 전보라는 것으로나 연락할 수 있었다니? 전설에 의하면 당시에는 전화 한 대 살 돈이면 집이 10채 값이었다나???? 믿거나 말거나. ㅋㅋ 그럼 나는 지금 집 10채를 손 안에 쥐고 조물락 거리고 있으니 얼마나 부자인겨?
.......
반복의 효과인가?
하도 들어서 그런지 나 혼자 대학로에서 극을 올려도 되겠네. ㅎㅎ
..........
고딩 때, 처음으로 나 혼자 여기를 가야 했었다.
동서울 버스 터미널
기억 속에 또렸한 이름을 당당하게 외친다.
“이리요!”
??? 매표소 젊은 누나가 기계음으로 묻는다.
“죄송합니다만, 고객님! 목적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리요!”
????
....
아참! 내가 지금 모라 하능겨?
“죄송합니다. 익산이래요.”
........................................
40년 전 이리역 열차 폭발 사고로 우여 곡절~~~~~지금은 지도상에서 지워진 이름 전라북도 “이리”시!
하지만 설날의 신화 속에서,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다.
당시 이재민들은 인근에 성한 가옥이라도 있으면 문을 두드렸고 동네 사람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기꺼이 이들을 맞아 들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훈훈한 인심인가? 과연 지금 같은 시대라면 가능할까?
......
전주 한옥 마을을 찾는 분들이 많다. 가까운 익산에 보석단지가 있고 4월(5월?)에는 보석 축제도 열린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들이 한 번 가 볼만한 코스가 아닐런지?
전설에 의하면 전주가 양반 마을이라고 하지만 양반집 자제들은 간재 전우 선생에게 공부를 배우기 위해서 익산으로 구름떼(ㅋ 구름 떼의 기준은 정확치 않음) 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학당을 기반으로 의병이 일어나기도 했다. 예비 태교 삼아서??? 보석 축제 후엔 여기도 꼭!
터미널에 가면 “익산”이라고 하지 말고 “이리”라고 한 번 해 보시길....매표소 직원의 표정이 재미있을 것이다. 하긴 앱에서 다 하는 데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