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문재인을 완전히 잘못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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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문재인을 완전히 잘못봤다

sarnia 12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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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씨를 임명한 사건은 말 그대로 사건이다.

근데 그게 왜 사건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 핵심을 찌르는 목소리가 드물다.

 

한국매체들을 읽어보면 언론들조차 아직 자기 나라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정치의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큰 관심도 없지만,

이 사건은 한 나라의 '정치적 사건'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 조금 언급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의 대통령과 서울중앙지검장 (과거에는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청와대 지하사격장에서 닭피로 언약을 맺은 운명공동체' 라는 오래된 전설이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그 자리에 대한 정파적 권력행사를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쓴 것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은 정말 의외이고 인상적이었다.


싸르니아는 법무부 지휘계통과의 인사협의없이 대통령에 의해 직접 임명된 윤석열 검사 스토리를 읽으면서 문득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떠 올랐다.

로버트 뮬러는 '트럼프 러시아 간첩단' 사건을 수사할 미국의 특별검사다.
백악관을 공포외 패닉에 빠뜨리고, 가뜩이나 좀 정신상태가 이상한 트럼프를 더 미쳐 날뛰게 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의 인물이다. 

미국의 시스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도대체 대통령의 각료인 법무부 부장관이 임명한 특별검사 때문에 왜 최고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공포와 패닉에 빠질 수 있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공무원 조직에서 로버트 뮬러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자칫 대통령을 잘못 선택했더라도
시스템이 존재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한, 나라 전체가 멸망의 위기까지 치닫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은 어떨까?  
이 나라는 잘 정돈된 시스템이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나라다. 
적어도 지난 정권까지는 그랬다. 

우선 이 나라 공무원 조직에서는 로버트 뮬러같은 사람을 찾는다는 게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런 자질을 갖춘 사람이 적어서 그런게 아니라, 
임명권자가 그런 사람을 절대로 중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런 연유로 지금 현재까지도  
어느 조직이건 그 상층부에는 온통 쓰레기같은 인간들만 우글거릴 뿐
자신에게 부여되고 보장된 임무와 권한을 법과 원칙에 따라 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직 한국에서는 자기 방에 상급자가 들어오면 자기 자리를 그 상급자에게 내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상급자와는 엄연히 다른 업무범위가 있으므로 자신의 업무공간은 상급자 할애비가 들어와도 내어줄 수 없다는 자세는 상급자에 대한 무례로 통하는 문화다.    

어쨌든
이런 조직들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조직이 검찰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검찰처럼 권력이 막강한 기관도 없다.
아마도 청와대 다음일 것이다.
1987 년 이후 안기부(현재의 국정원)와 권력서열이 뒤바뀌었다.
실제로 87 이후 출범한 노태우 정권 시절부터 검찰총장 출신들이 안기부장에 임명되어 국가정보라인까지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 검찰은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독점하고 있다는데,
이 기네스북에 오를만큼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조직이
사법연수원 기수를 기준으로 선후배 관계와 상명하복 관계를 지키면서
심지어 그 상명하복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후배기수가 조직의 상부에 올라오면 선배기수는 별 이유도 없이 사표를 쓰고 조직을 떠나야한다는,
사교집단이나 조직폭력배 비슷한 조직운영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조직에서 윤석열 같은 타입의 정상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자가 50 이 훨씬 넘은 나이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게 기적같은 일일 것이다.

사실 싸르니아는 문재인 씨를 약간의 자유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그저 그렇고 그런 야당 정치인 이상으로 보아오지 않았었다. 
사람을 잘못 본 것같다.

 

그는 보기보다 아주 강할 뿐 아니라, 
참 건강한 삶의 철학을 가진 사람임에 분명한 것 같다.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보면서,
보다 더 정확하게는 그 자리에 임명된 사람의 프로필과 과거 행적을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적폐청산의 표적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설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하게 됐다. 

자신이 파멸하는 한이 있다라도 부여된 임무와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해야 한다는 철학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서 행사할 다음의 행정명령은 과연 무엇일까가 궁금해 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런 거 하나도 안 궁금했다)        

그는 이미 비서실 인사에서 이 나라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인 이른바 '학번위계'를 뒤집었을 뿐 아니라, 
1989 년 평양청년학생축전 대표파견사건과 1985 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사건에 관련되어 미국 국무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각각 비서실장과 방미특사단 주요멤버에 포함시킴으로써 백악관에게 앞으로 한국의 대미정책이 어떤 기조와 성격을 토대로 전개될 것인지 간접적으로 시사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파적 반대세력, 그 중에서도 특히 보수진영은 앞으로 정신을 좀 차려야 할 것 같다.
종북프레임같은 우물안 개구리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도 안되고 해석도 안되는 사건들이 앞으로 연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서에 함몰되어 되나괘나 비평만 하려들면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는 미로에 갇혀 자신만 처량해 지는 일도 발생할지 모른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속으로 불평할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이슬어 처음에는 삐걱거릴지라도
다 같은 사람 머리인만큼 열심히 돌리다 보면 다 돌아가게 되어 있다.


   



    

 

12 Comments
Robbine 2017.05.21 13:09  
이제서야~
다들 뉴스 보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 일인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신나는 뉴스가 매일 나올줄은 저도 몰랐어요.
sarnia 2017.05.21 13:35  
저 사건은 보도에 나오는 검찰개혁이나 박근혜 사태 공소유지, 우병우 사단 제거 같은 개별적 사안 의 차원을 훨씬 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잘못된 문화를 통째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첫 신호탄일 수 있죠.
아마 대통령으로서 그 정도 꿈은 가지고 국정을 수행하는 것 같아요. 지금 모습을 보면.
참새하루 2017.05.21 15:54  
문재인 대통령 혼자서 가능할까요
벌써 부터 종편들의 수구 패널들은 한입으로
헐뜯기 시작했네요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이 정치판을 확 뒤집어 엎을 힘은
국민의 변함없는 지지 뿐 일것입니다

미국의 특별검사가 과연 미치광이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낼수 있을까요
시스템이 아직 작동하는 나라라지만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sarnia님의 고견을 듣고 싶네요
sarnia 2017.05.21 21:45  
트럼프가 패닉에 빠져있는 이유는 탄핵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게임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좌절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책 the art of the deal 을 대필해 준 토니 슈워츠가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일텐데, 트럼프의 사고에는 이기고 지는 게임의 논리만 있을 뿐 가치를 판단하고 옳고그름을 선택하는 기준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그가 지금 하는 행동만 봐도 슈워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뿐 일 것 입니다. 하나는 스스로 하야하거나 자살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맹종적 지지자들에게 자신을 위해 폭동을 일으켜 줄 것을 선동하는 것 이겠지요. 우선 후자를 선택했다가 실패하면 전자로 가는 게 정해진 길일텐데,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간을 알고 동시에 미국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역대급 흥미진진함을 밤잠을 설치면서 관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탄핵가능여부를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수사에서 어떤 증언과 증거들이 나오느냐와 그가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달려있는데, 날고기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전혀 귀담아 듣지않고 자기 딸을 세상에서 최고로 똑똑한 사람인 줄 알고 있는 그의 치매급 지력으로 유추해볼 때 묘혈은 자기 스스로 파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Pole™ 2017.05.21 22:43  
윤석열 인사뿐만이 아니라 피우진을 보훈처장으로 임명한것도 군부세력들에게 한방을 먹인 것입니다
오늘 강경화를 외교부장관에 지명한건 외교부내 친일친미세력들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구요
앞으로 수구세력들의 저항이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궁금해지는군요
청와대 원내대표 오찬에 5당대표를 초청한것도 신선한 충격이었죠 대선토론을 5자로 하자고 우긴 저들의 자충수를 잘 활용하고 있네요
그리고 당연히 문재인은 검찰 장악을 하지 않고 검찰 개혁을 이뤄낼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
sarnia 2017.05.21 22:57  
강경화가 외무고시 출신이 아니기때문에 기분나쁘다는 외교부 내 오합지졸들의 붕신 아우성이 요란하다는 설이 있군요. 외무고시 출신 반기문이 유엔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개망신을 떨때마다 반기문과는 전혀 다른 스마트한 일처리 능력과 출중한 언어구사력으로 그 깎아먹은 이미지를 다시 회복시키곤 했던게 강경화였다고 하지요.

유엔으로서는 우수한 인재 한 명이 빠져나가는 것이지만 한국으로서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훌륭하게 고국에서의 임무를 마친 후 다시 유엔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게 바랍니다.

윤석열 인사가 특별한 이유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권력수단 한 축을 포기하는 솔선수범을 한 인사였기 때문입니다.
sarnia 2017.05.22 02:47  
"권력수단의 한 축을 포기하는 솔선수범을 한 인사" 라는 제 표현에 대해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면,

단순한 검찰개혁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시민전체의 의식을 개조하는 문화혁명 구상을 염두에 두어야 저런 인사가 가능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폐는 기득권 조직문화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잔존하고 있는 시민 의식의 후진성에서 비롯됩니다. 시민일반의 관념과 행동양식이 바뀌지 않는 한 기득권 적폐도 결국은 청산될 수 없다는 이 단순하고도 명백한 현실인식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우선 이 현실인식을 정확하고도 용기있게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자신의 지지층을 포함해서 나라 전체를 상대로 도전을 해야 하는 어려운 싸움을 해야하는데 어쩌면 도중에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권력을 탄생시킨 엘리트 집단인양 건방지게 촐싹거리고 있는 한겨례 등 일부 리버럴 진영 언론들 역시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진다는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시작은 좋습니다.
참새하루 2017.05.22 14:17  
매일 매일 뉴스 볼때 마다
활명수 한병 마신듯 시원합니다
수구 언론 종편들 패널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게거품 무는게 보이는데
그만큼 똥줄이 탔다는 반증이겠지요
샤이닝55 2017.05.25 09:42  
작년에 스크랩해두었던 도올의 야권인물 평가 중 문재인-
“인간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순결한 사람이야. 근데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타이밍을 정확하게 몰라. 그 점이 애처롭지. 아무튼 이런 인물들이 사심 없이 공성이불거의 자세로 경선하게 해야 해. 오만을 버리고 아집을 버린 그런 자세가 정말 중요해요.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 같은 신은 영원불사이고, 반신반인의 영웅들은 결국 죽어요. 이게 신화 구도인데 현실도 똑같아. 영웅들이 오만의 덫을 피해 멋진 정치쇼를 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뽑힌 후보는 천하무적이 되는 거고.”  - 2016 4 22 한겨레

저도 문재인대통령의 행보에 신선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기준이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되는 나라, 제가 바라는 대한민국입니다.
레오vv 2017.05.29 20:51  
정치에 대해 무지한 20대 청년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스탱17 2017.06.11 00:55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독립된 집단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정웅인 2017.08.18 15:30  
정치는 말그대로 정치에요. 정치싸움이 안일어날수가 없고 자기 정당이 이득보는 방향으로밖에 할수없습니다. 우리는 문제인을 찍은게아니고 민주당을 찍은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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