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박근혜 대통령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는 중범죄자가 한 나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건 도전장을 내 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3 차 담화가 목숨을 건 도전장이라고 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겉으로 보아 이 조롱이나 다름없는 도전장은 탄핵표결을 앞두고 있는 새누리당 비박계의 분열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 승부수라고 볼 수는 있다. 담화문이 나오자마자 벌써부터 그 나라의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그 조롱에 놀아나며 춤을 추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것을 보면 분열공작의 소정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진보언론 조차도 박근혜 대통령의 3 차 담화의 가장 큰 목적이 시민항쟁대오의 분열공작에 있다는 점을 명백히 인식하면서도, 박의 입에서 '퇴진'이라는 한마디 말이 나왔다는 점을 두고 그것이 시민항쟁의 일부 성과라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헌법상식을 갖추고 있다면 '국회합의에 의한 대통령 임기단축'이 현재의 국회 안 여야대립구도에서는 실현 자체가 불가능한 뜬구름 잡는 헛소리라는 것을 그 담화를 듣는 순간부터 알아채고 담화문 자체가 백 퍼센트 사기 기만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당장에 결론내릴 수 있는데도 이런 소리들이 공론장에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면 박근혜의 3 차 담화문을 통한 분열공작은 적어도 그 출발에서 멋진 안타를 날린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선방은 거기까지다.
3 차 담화는 대다수 시민들을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분시킬만큼 뻔뻔하고 간교해서, 오히려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배려심까지 송두리째 날려버림으로써 시민항쟁의 열기를 혁명적 수준으로 격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3 차 담화가 이런 위태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극약처방이라는 점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속을 완전히 까발기는 마지막 카드를 내 던졌다. 그 모습을 보고 싸르니아는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한국 신문들을 보면 평론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3 차 담화가 헌법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주도면밀하게 작성된 문서라는 것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누가 써 준 것을 읽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의 그런 평가는 현상만 보고 본질을 간과하는 면이 있다. 누군가가 조언을 해 줬을지는 모르지만, 싸움의 기본 전략을 수립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건 박근혜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의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를 직시하고 그 위기를 정면돌파하기위해 퇴로까지 차단한 승부수를 던질 결심을 하는 것은 '사태의 정점'에 있는 주인공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태의 정점'에 있는 보스의 결심 강도와 방향을 알아야 참모든 조언자든 혹은 '배후와 배경'이든 부속작업에 착수할 수 있는 법이다.
음모론의 함정에 갇힌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배후와 배경'의 기능과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일차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런 식의 추정은 참고할만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정보는 상식에 우선하지만 정보가 없다면 상식에 근거한 합리적 추론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정세판단의 기본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박근혜의 의사결정과정을 돕는 조직화된 수구세력이 존재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박근혜 이후를 생각하며 장기적인 전략을 짜는 한편, 현재 '사태의 정점'에 있는 박근혜의 의사와 선호에 따라 정교한 언어들을 선택하고 설계해 주는 일이다.
반면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은 이번 3 차 담화와 같이 대담하고도 무모한 정면돌파의 도전적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재차 말하지만 그것은 박근혜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박근혜를 둘러싸고 그에게 조언하는 사람들이 박근혜보다 모자라거나 결단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조언자들은 박근혜 사태와 관련해서 내린 무모한 결정에 대해 책임질 의사가 없는 주변인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다.
말도 어눌하고 글 한 줄도 자기가 쓸 콘텐츠도 없는 사람인 것 같으니까 평균 이하의 지력과 지능을 가진 종합적 무능력자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택도 없는 과소평가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는 본인의 위기관리에 필요한 정치적 감각에 있어서는 탁월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평상시에 그의 두뇌는 아이큐 기준으로 세 자릿 수 초반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일단 위기가 닥치면 그 위기의 정도에 따라 머리회전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특징이 강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싸르니아의 짐작이 맞다면 현재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정도로 일생일대의 파국적 고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예지력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을 능가할 정도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예지력과는 달리 정서지능은 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빨리 변화하는 것이 아니므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죽을 수' 안에서 밖에는 고를 수 없고, 결국 그렇게 해서 이번에 고른 최선의 수인 3 차 담화 역시 향후 자신의 신변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할 '죽을 수'의 범위 안에 있는 것 뿐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야 3 당이 박근혜의 '죽을 수' 제안을 일축하고 탄핵을 밀어부치기로 결정했는데, 잘한 결정이다.
비박계의 동요 따위는 신경 쓸 필요없다. 혹여 국회에서 탄핵이 부결될 것을 걱정하는 여론도 있는데, 별 걱정을 다 한다. 만일 비박계의 동요 때문에 탄핵이 부결된다면 그 책임은 국회가 져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책임은 요사스런 담화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박근혜 대통령이 온전히 혼자 져야 한다.
국회에서 탄핵이 부결되는 그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비상식량배낭을 짊어지고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으로 황급히 피신해야 할 것 이다. 현직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공비가 되어 김신조 처럼 북악산 일대를 헤메고 다녀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혹시 탄핵이 헌재에서 부결된다면 문제가 좀 다르긴하다. 그 때는 청와대 대신 종로구 재동이 계유정란 후 563 년 만에 다시 잿더미로 뒤 덮이게 될텐데, 헌재 재판관들이 그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검이 임명됐다. 서울시장을 했던 박영수는 아는데, 검사 출신 박영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한국언론에서는 검찰 내 평가를 인용하여 이러쿵 저러쿵 하는데 그런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는 소리들이다. 다음 한 가지를 어떻게 수사하는가만 보면 된다.
그 나라에 살지 않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박근혜가 저지른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범죄들 중 한국인들의 핵심 관심대상이 되어야 하는 사건은 박근혜 -최순실 일당과 재벌간의 부당거래다. 대통령을 수괴로 하는 범죄조직과 재벌과의 부당거래들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질이 나쁜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의 노후복지를 책임지는 기구인 국민연금 경영진을 협박하여 그 나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 굴지의 다국적기업의 3 세 후계자 지배구조를 확립하는데 국민연금의 손해를 무릅쓰고 삼성물산 인수합병에 찬성하도록 강요하고 그 댓가로 최순실 재단과 그 딸이 3 백 여 억 원을 챙겨가게 한 혐의일 것이다.
'선생님 '모녀'에게 돈을 준 기업의 후계구도 확립을 위해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연금기구에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를 끼치는 강탈행위를 했다면 이 범죄야말로 천인공로할 만행이라 불러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검이 박근혜와 이재용을 공동정범 피의자로 보고 이 특대형 배임과 뇌물수수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하느냐 여부가 특검 성패를 가름하는 기준이다. 안네 프랭크의 일기가 나치의 만행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듯이, 특검은 안종범의 일기를 세세히 파악해서 박근혜 일당과 삼성이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세기적 범죄혐의의 전말을 밝혀내기 바란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고국의 '나라 바꾸기' 싸움의 전선을 바라보며 떠 오르는 말은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다. 한 가지 느낀 점도 있다. 인간 박근혜는 생각했던 것보다 휠씬 사악하고 영리하며, 더 중요하게는 예상을 뚸어넘는 '강골' 이라는 점이다. 3 차 담화에서 그 본색의 일부를 드러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