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을 품고 조국을 떠났던 그 소년이 돌아온다

홈 > 커뮤니티 > 정치/사회
정치/사회

- 정치, 사회, 경제, 종교 관련 글을 올리는 곳입니다.
- 게시물은 매주 2개까지 올리실 수 있습니다.


한을 품고 조국을 떠났던 그 소년이 돌아온다

sarnia 6 493



유튜브는 펌

-------------------------

그 소년은 중학생이었다
. 소년은 은석초등학교 3 학년까지 한국에서 다닌 뒤로는 그때까지 줄곧 일본 도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왔기 때문이었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 했으며 성격이 원만하고 온순해서 친구들도 많았다. <?xml


<?xml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을 지내고 있던 소년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온 가족이 당장 일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직장을 그만뒀고 소년은 영문도 모른 채 형과 함께 엄마를 따라 미국 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xml


<?xml

 


비행기 안에서 엄마는 두 형제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다시는 우리나라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단다…… “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을 출발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소년은 밤새도록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그로부터 37 년이 지난 2011 .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무부 차관급 대북특사 겸 6자 회담 수석대표 Kim, Sung 을 차기 주한미국대사로 내정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아그레망을 요청했다. 형식적인 절차인 아그레망이 수락되면 의회의 인준절차를 거쳐 캐서린 스티븐슨 대사의 뒤를 이어 오는 8 월 제 22 대 주한 미국대사로 정식으로 부임하게 된다. 사상 최초의 한국계 미국대사이기도 한 Kim, Sung 1974 년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야반도주하듯 미국으로 날아가야 했던 그 소년이었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원래 공군 장교 출신이었다. 김재권이라는 가명으로 중앙정보부에 오래 재직했는데 본명은 김기완이다. 소년이 도쿄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 김재권은 주일 한국대사관의 공사였다. 


 


소년이 미국으로 떠나기 1 년 전인 1973 8 8 일에 도쿄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이 대한민국 정부의 공무원들로 구성된 범죄조직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너무 유명한 사건이므로 사건개요에 대한 서술을 생략한다.


 


소년의 아버지가 이 사건 당시 무슨 역할을 했길래, 그렇게 갑자기 온 가족이 미국으로 야반도주를 해야 했을까?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료들의 교차점검이 반드시 필요한데, 우선 정독해야 할 첫 번째 자료가 국가정보원의 자체진상조사보고서이고, 교차점검을 위해 필요한 두 번 째 자료가 김형욱 회고록과 그의 미국 의회 프레이저 청문회 증언록이다.


 


국가정보원의 공식자료 외에 김형욱 회고록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정보원 자료가 고의적으로 누락하고 있는 사항, 즉 과거 김형욱의 부하들이었던 김기완과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제 8 국 공작요원 유춘국이 뉴저지에 있는 김형욱의 자택에서 이 사건에 대해 진술한 내용 중 중요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 공식자료는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수행되기는 했지만 단순한 납치 사건이며 김대중을 한국에 강제로 데려오기 위해 저질러진 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납치공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유춘국의 증언은 전혀 다르다.


 


김대중 납치의 목표는 한국송환이 아닌 그를 살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이유는 만일 그를 현지에서 살해하지 않고 한국으로 데려 올 경우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비롯한 복잡한 문제들이 노정될 수 있다는 상부 견해 때문이라는 진술을 한 것이다. 이미 중앙정보부는 1968 년 서독에서 유학생들을 비롯한 교민들을 대거 납치해서 서울로 끌고 온 적이 있는데 이 사건 때문에 서독과 심각한 외교문제가 야기됐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유춘국이 김형욱에게 털어 놓은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김대중을 납치 현장인 그랜드 팰리스 호텔 객실 욕조에서 살해해 시체를 토막 낸 다음 유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침 룸 메이드가 방청소를 위해 문을 따고 들어와 방안에 있던 공작요원들을 목격하는 바람에 이 계획을 취소하고 실신한 김대중을 끌고 나와 차에 태운 뒤 일단 오사카에 있는 중앙정보부 안가까지 데려갔다는 것이다.


 


거꾸로 김형욱 회고록의 신빙성을 점검하고 걸러서 읽기 위해서는 국가정보원의 공식자료가 필요한데 가령 이런 것이다.


 


김형욱은 자기 회고록에서 이 납치살해공작의 지휘계통을 박정희-이후락-김치열-이철희-김기완-윤진원-실무조직 순으로 기술했다. 여기서 김치열 (1979.12,12 당시 법무장관 역임)은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는데 중앙정보부 특성상 차장은 거의 명예직이므로 이런 종류의 비밀공작에 가담하지는 않는다. 중앙정보부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형욱이 김치열을 이 지휘계통에 끼워 넣은 이유는 실수로 그런 것이 아니라 깐깐한 김치열과 개인적인 마찰이 잦았던 그가 사감으로 그를 끼워 넣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자료들을 서로 교차점검 하다 보면 비고적 어렵지 않게 사건의 본질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소년의 아버지 김기완의 역할을 살펴보자.


 


그는 이 납치살해(미수)공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행동을 차례로 수행한 매우 특이하고도 기회주의적인 인물이었다.


 


첫째, 김기완은 그의 직속상관인 이철희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제 1 차장보의 지령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무모한 계획이라며 반대했었다. 참고로 김기완의 직속상관 이철희는 1982 년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의 주인공 장영자의 남편, 그 이철희를 말한다. 장영자의 형부는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광이다. 


 


둘째. 자신이 직접 서울 이문동 본부에 가서 이후락 부장을 만난 후 180 도 입장을 바꾸어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이 공작을 적극적으로 진두 지휘했다. 김기완은 납치작전명 KT공작계획안을 직접 작성했으며 서울에서 파견된 제 8 국 소속 공작요원들과 일본 대사관 및 영사관에 배치돼 있는 중앙정보부 공작원들을 모아 놓고 실행절차까지도 자세하게 지령했다. 김기완이 이처럼 태도를 바꾸어 적극적으로 이 작전에 임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서울에 가서 김대중 납치살해 작전이 박정희에 의해 직접 내려진 <지상명령>임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김기완은 납치 현장인 호텔에서 살해하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요원들의 얼굴과 지문이 노출되자 마음을 바꾸어 당시 CIA 동경지부 공작책임자였던 도널드 그레그 (후에 주한 미국대사 역임) 에게 사건 전모와 자기가 작성한 KT 공작계획안을 보고했다. 지역 정보책임자로서 김기완과 그레그는 각별한 친분이 있었다.      


 


넷째, 김기완은 사건 실패 후 가족들을 먼저 미국으로 보낸 후 자신도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김형욱을 만나 사건의 진상과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이때 김형욱은 박정희와 이후락 을 상대로 협상을 해 돈을 한 50 만 불쯤 뜯어내라고 조언을 했다. 실제로 김기완은 이철희를 통해 이후락을 협박했고 결국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돈을 뜯어냈다.


 


김기완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은 김대중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 한 동시에 살려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기사회생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다름아닌 CIA 동경지부의 도널드 그레그였다.


 


그 사연은 이렇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가장 먼저 안 미국측 인사는 하버드대 교수인 제롬 코헨이다. 마침 도쿄에 있다가 소식을 들은 제자 임창영에게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기도 잠결에 전화를 받은 제롬 코헨은 곧바로 국무부 장관 헨리 키신저를 두들겨 깨웠고, 코헨 교수로부터 사건 전말을 전해 들은 키신저는 혼비백산해서 전화통을 붙잡고 주한 미국대사 필립 하비브를 불러냈다. 키신저의 추궁을 듣고 기절초픙을 한 하비브는 당연히 정보 책임자인 도널드 그레그를 찾아 정보제공을 닥달했다, 아슬아슬하게 같은 시간 김기완이 KT공작계획서를 비롯한 정보 자료들을 그레그에게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이 사건의 전말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을 것이고, 김대중은 한국으로 돌아오던 중 바다에서 수장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김기완의 변덕 덕분에 도널드 그레그는 이 구체적인 정보자료를 바탕으로 필립 하비브 대사를 통해 박정희와 이후락을 직접 압박할 수 있었는데, 김기완과의 이런 각별하고도 끈끈한 인연으로 그 아들인 Kim, Sung을 국무부의 대북정보라인으로 추천해서 차관급 고위직으로 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연과는 별도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무슨 마음을 먹고 이런 묘한 인맥과 사연이 있는 복잡한 인물을 대한민국을 <통제>할 새 대사로 보내려고 하는지 그 이유는 나중에 시간 나면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오늘은 대한민국과 이 슬픈 소년의 기구한 팔자를 생각하면서 여기까지만 하자.


 


, 김기완의 두 번 째 부인 임현자가 이 소년의 생모인데, 임현자는 유신시대와 5공시대 문화방송 경향신문 전무와 사장직무대리를 지낸 독재나팔수 임택근의 누나다. 임택근은 다른 두 여자에게서 아들을 각각 두었는데, 그 중 한 명은 가수 임재범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탤런트 손지창(탤런트 오연수의 남편)이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내 언론에서는 본말을 전도한 채 이런 이야기들을 주로 늘어놓고 있으니 나도 부화뇌동 좀 해 봤다. 암튼 두 가문 모두 요란한 선친들 덕에 죄 없는 자식들이 고생하는 경우라고나 해야 할까.


 


다음은 그 때 그 사건범행가담자 명단이다.


 


범행교사주범-박정희-대통령


범행교사공범-이후락-중앙정보부장


범행교사공범-이철희-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제 1 차장보


범행교사공범-김기완(김재권)-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


 


범행주범-윤진원- 중앙정보부 제 8 국 공작단장


범행종범-윤영로- 주일 한국대사관 참사관 


범향종범-김동운- 주일 한국대사관 일등서기관


범행종범-유영복- 주일 요코하마 영사관 영사


범행종범-홍성채- 주일 한국대사관 참사관


범행종범-유춘국- 중앙정보부 제 8 국 공작요원


범행종범-백철현- 주일 한국대사관 서기관 


 


2011. 06.05.2300 <MST> <?xml<?xmlsarnia


       


 








6 Comments
Drifter 2011.06.06 16:38  
Sarnia 님 감사. 깊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sarnia 2011.06.06 17:00  
고맙습니다 : ) 의문보다는...... 좀 슬픈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기회가 되는데로 새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하게 될 Kim, Sung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아직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의 부친이 저지른 과오때문에 아들이 공정하지 않은 평가를 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미국대사라는 특수한 임무수행을 위해 오는 그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광범위한 국민여론을 수렴해서 아그레망 수락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입니다.
나마스테지 2011.06.12 22:49  
Kim, Sung. 한을 품은 건지 한을 푸는 건지 궁금합니다. 되도록 빨리 올려주세요~
sarnia 2011.06.13 11:02  
Kim, Sung 보다도 그의 외삼촌 임택근이라는 인간에 대해 더 흥미가 가는군요.
pattaya 2011.07.08 20:20  
저도 임택근이라는 사람에대해서 더 궁금해지는군요..부탁드려도 될까요...^^
세일러 2011.06.16 12:29  
매우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전에 쓰신 글도 그렇고, 깊은 지식과 안목을 갖고 계시네요~ 부럽습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