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활을 꿈꾸는 노래
대통령찬가 (기억하시는가? 이 노래..)
방금 전, 제 5 차 촛불집회가 종료됐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약 2 백 만 명이 집결했다. 이 날 밤,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서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시내상황을 모니터링 했다.
그의 결심은 분명하다. 사태를 법리논쟁으로 이끌어 사태의 주제 자체를 완전히 다른 프레임으로 뒤집는다는 전략이다. 무자격 비선들의 국정개입사건을 문건유출사건으로 뒤바꿔 2 년을 더 버틴 것처럼, 대통령 탄핵 파면 절차 안에서 '대통령 자리지키기 준법투쟁'을 결사적으로 벌여나가면 사태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길고 지루한 논쟁과정이 일상화되어 '박근혜 사태'에 대한 공분이 어차피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단기목표는 일단 위험할 정도로 확장된 혁명적 분노열기를 폭발 임계점 아래로 내리겠다는 계획인 것 같다. 시간은 자기 편이라는 판단인데,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 판단을 틀린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측근들이 제 5 차 촛불집회를 모니터링하면서 예의주시했던 부분은 사태의 폭력화 여부였을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대치국면이 거칠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로써는 천만다행이게도 집회에서 폭력사태는 벌어지지 않았고 경미한 경상자 몇 명 이외에는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돌발사태가 일어나 사상자가 발생하면 사태가 새 국면으로 전이되고, 폭력항쟁 국면에 대응할 물리적 기재가 별로 없는 박근혜 대통령 그룹에서는 이 문제가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부 한국언론을 보면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한 상황을 부여할 수있다는 경고를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경고다. 지금의 긴박한 국면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하면 사태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위중해진다. 시민항쟁 대열에 분란거리가 생기는 것은 둘째 문제고, 심각한 폭력사태 발발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아직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그 이야기를 지금 할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지금 이 시간 박근혜 대통령 그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일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다.
언론과 시민들은 사태를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하지만, 박근혜 그룹이 이 사태를 보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사태를 작은 국면 단위로 나누어 단기적 생존전술 차원에서 파악하고 대응한다. 언론과 시민들은 명분과 윤리, 그리고 법의 잣대로 이 사태를 해석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그룹은 그런 것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헌법적 합법절차 안에서 제기되는 세부적이고 복잡한 주제들을 등장시켜 대통령의 임기전 퇴진 담론에 대치할 수 있는 여러가지 비본질적 주제들을 공론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킴으로써 시민의 단결대오를 와해시키느냐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이 사태를 탄핵과 특검을 둘러싼 양방의 준법투쟁국면으로 전환하여 저 무엄하기 짝이없는 '당장 퇴진구호'부터 광화문에서 퇴출시키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광화문에 백 만 명이 모이건 이 백 만 명이 모이건 별로 의미가 없다. 그들은 백 만 명의 함성을 그저 '오합지졸의 아우성' 으로 간주할것이다. 그 아우성을 어떻게 여러 갈래의 다른 아우성으로 조각 조각 나누어 현재 전개되고 있는 최악의 전세에서 벗어나느냐가 박근혜 대통령 그룹의 유일무이한 관심사다.
평화집회는 그 자체로 훌륭한 면이 있지만, 항쟁대상에게 의미있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민주주의와 시민권력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재자나 독재권력에게 평화집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독재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재는 어떤 종류이건 물리력 뿐이다.
1987 년 6 월 19 일, 전두환 정권은 실제로 위수령을 발동하고 부산지역에 군대를 출동시키려고 했었다. 현재의 박근혜 정권과는 달리 그에게는 시민항쟁에 대응할 수 있는 물리적 기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두환을 굴복시킨 물리력의 3 대 역학관계가 있었는데, 첫째는 경찰저지선을 무너뜨린 항쟁시민이었고, 둘째는 전두환의 군출동을 저지시킨 미국이었으며, 셋째는 군내부에서 일어난 항명기류였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당시 전두환은 청와대 본관집무실에 거의 감금되다시피한 채 제임스 릴리 대사와 존 스타인 CIA 서울지부장으로부터 강도높은 협박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고명승 보안사령관과 민병돈 특전사령관이 군내부의 항명기류를 보고해 오는 상황에서 전두환은 군출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군출동이 없으면 결국 대도시 경찰저지선이 모조리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전두환은 일단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시간을 버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점이고, 같은 점이 있다면 둘 다 '민주주의와 시민권력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독재자라는 점이다.
1987 년 6 월항쟁의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했던 이유는 2016 년 11 월항쟁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보다 시민정신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당시 5 공정권은 찬탈된 권력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에게 어떤 책임감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무력으로 권력을 강탈해 간 집단에게 시민들이 그 권력을 탈환해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와는 다르게 박근혜 정권은 선출된 권력이다. '우리가' 선츨한 정권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이 깊은 부담과 책임을 함께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 권력을 소환하는 과정에서도 함께 책임진다는 자세에서 인내심을 보이며 비폭력과 평화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6 월항쟁과 11 월항쟁의 핵심적 차이점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제로 끌려나오기 전에는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는 독재자라는 점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겠다는 자책감같은 것이 손톱만큼도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황당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와 그 의지에 복무하는 잔대가리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의 머릿속에 들어가보지도 않은 주제에 어떻게 아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이건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그가 벌인 지금까지의 대응양식이 그걸 증명하기도 한다.
시민항쟁이 비폭력 평화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박근혜 그룹의 담론교체기도와 전선와해전술에 말려들지 않는 투쟁방식을 구사하는 것은 마치 각각 다른 방향을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박근혜 같은 희한한 독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처음 경험하는 민주주의의 색다른 발전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좀 더 솔직한 말로 표현하자면 자질이 없는 독재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시민들의 업보이기도하다)
다만 최고헌법기관 중 그 중심인 대통령 권력의 궐위상태로 말마암아 나라공동체의 모든 지표들이 후퇴하고 외국으로부터 불필요한 조롱과 지탄거리가 되는 상황이 장기간 계속되는 사태는 막아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전두환이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 시간을 벌기위해 6.29 를 구상하고 노태우의 입을 통해 발표하게 했던 것처럼, 박근혜는 일단 검찰대면조사를 받겠다고 단기 전술을 수정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 그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진다.
2016. 11. 26 (MST) sar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