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일, 농민들이 몰고온 트랙터 1000 대가 청와대를 포위한다
촛불집회가 시민항쟁으로 그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조속하고 질서있는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달라는 국민들의 평화적 호소를 엿으로 알고 버티기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검찰중간수사결과와 박근혜 대통령의 자진사퇴 거부입장이 잇따라 발표된 2016 년 11 월 20 일을 기해 역사적인 제 5 차 시민항쟁이 그 장엄한 막을 올렸다.
제 1 차 시민항쟁은 1960 년 전국에서 일어났다.
제 2 차 시민항쟁은 1979 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났다.
제 3 차 시민항쟁은 1980 년 광주에서 일어났다.
제 4 차 시민항쟁은 1987 년 전국에서 일어났다.
지난 주 토요일 19 일에는 시민항쟁을 예고하듯 범죄자의 은거지를 3 면에서 포위 공격하는 '학익진' 문화제가 열렸다.
북악산을 메아리로 뒤흔든 수 십 만 인파의 퇴진요구 함성에 범죄자는 중무장 경호병력 뒤에 숨어 본관의 불을 모두 소등한 채 묵묵무답으로 일관했다.
결전의 날은 오는 26 일 토요일이다.
이 날은 지난 12 일의 촛불주력이 항쟁주력으로 바뀌어 다시 대한민국 수도 서울 세종대로에서 감격적인 재회를 하는 날이다.
이미 지난 15 일 경상남도 진주와 전라남도 해남에서 각각 출발한 농민들의 릴레이 투쟁단이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트랙터를 비롯한 각종 대형 농기구들을 직접 몰거나 트럭이 싣고 일제히 청와대를 향해 북상 진격 중이다.
항쟁전야인 25 일 서울에 도착한 중무장 농민군은 서울시내에서 밤을 보낸뒤,
26 일 결전 당일 오후 1 천 여 대의 대형트랙터를 범죄자가 버티고 있는 은거지로부터 1 킬로미터 후방에 위치한 세종로에 집결시킬 예정이다.
항쟁대열이 광화문 방면을 향해 세종로를 출발하면 1 천 여 대의 트랙터 행렬은 시민항쟁대열의 최선봉에서 후방의 시민들을 엄호하며 세종대로 양도로를 따라 4 열 종대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게 된다.
한 열에 250 대에 달하는 트랙터 행렬 길이만 약 1.5 킬로미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알려진대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 일당은 지난 주 중반부터 물리력 동원 가능성을 시사하며 군부를 자극하고 국민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일당은 수도방위사령부 예하부대들과 서울지역 충정부대인 제 6 군단 소속 제 26 기계화보병사단에 비상대기령을 발령했다는 역정보를 살포한 바 있다.
박근혜 일당은 오는 26 일 서울 시내에 약 1 만 명 규모의 친박극우단체들과 폭력배들을 동원해서 시민들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며 폭력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의적 폭력사태를 유발하여 집회장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시민저항에 대한 강력한 진압의 구실로 삼고, 나라 전체를 대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문제의 본질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전략이다.
항쟁은 역사의 흐름이다.
항쟁의 모습은 항쟁지도부의 전술과 의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촛불은 바람불면 꺼질 가련한 존재라며 국민 전체를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킥킥거리는 자들에게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또 그런 망발이 시민저항권이 발동되는 역사의 격동기에 어떤 무서운 철퇴를 맞게 되는지, 바로 가르쳐 줄 때가 온 것이다.
글을 마치고 드는 싸르니아 생각
이 경악스러운 사태는 외국인한테는 이야기하기도 창피할 정도로 그 질이 저열할 뿐만 아니라 연루된 범죄가 천문학적 숫자라서 줄기만 설명하는데도 사흘밤낮이 소요될 지경으로 복잡하지만 그 본질은 간단하다.
수사관계자가 털어놓은 표현대로 "가족사기단이 지난 40 년 동안 3 대에 걸쳐 국가예산에서부터 동네골목 점방에 이르기까지 한 나라를 통째로 뜯어먹은 대사변인데 그 사변의 주범이 박근혜라는 걸로 요약할 수 있다.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쫓아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이 사변의 후유증은 한국인 모두에게 오랫동안 깊은 상처로 남게 될 것 같다. 외신은 한국이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도 평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외신이 이 사변의 본질과 내용 모두를 샅샅이 이해하는데는 문화적 한계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