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광장의 유혹

홈 > 커뮤니티 > 정치/사회
정치/사회

- 정치, 사회, 경제, 종교 관련 글을 올리는 곳입니다.
- 게시물은 매주 2개까지 올리실 수 있습니다.


정규재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광장의 유혹

아빠콩 8 299

한국경제 주필인 정규재 주필이 올린 "광장의 유혹"이라는 칼럼입니다.


지난주 영국 고등법원의 브렉시트 판결은 놀랄 만했다. 영국 정부가 리스본 조약 50조에 의거해 EU 탈퇴 협상을 시작하려면 국민투표와는 별도로 의회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의회의 결의에 따라 지난 6월의 국민투표가 뒤집어질 수도 있게 되었다. 당연히 브렉시트 지지파들은 ‘국민의 의지가 전복되었다’며 격분하고 있다. 물론 영국 의회가 ‘국민의 의지’를 전복할 가능성은 없다. 의회의 토론과 형식상 찬성결의를 요구할 뿐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어떻든 법치의 진면목이다. 프랑스 혁명을 광장의 폭력이라고 혹평했던 18세기 에드먼드 버크를 연상케 하는 실로 영국적 판결이다. 프랑스는 결국 버크가 예언한 대로 이후 100년 동안이나 혁명과 반혁명, 독재와 전쟁을 되풀이했다. 다시 100년을 건너뛰어 68혁명에 이르면 프랑스인에게 광장의 유혹은 거의 고질병이 되고 만다.

누구라도 광장에 서면 거침없이 내달리는 역사의 바람을 가슴 깊이 숨쉬게 된다. 최인훈은 ‘분수가 터지고 꽃이 피고 영웅들의 동상으로 치장된 곳’으로 ‘광장’을 정의했지만, 한편으로는 ‘폭동의 피가 흐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4·19에서나 극단적으로는 5·18에 이르기까지 광장은 실로 숭고한 감정과 무자비한 폭력이 뒤엉켜 들었다. 광장은 그렇게 위험한 장소다. 대중의 환호 속에 마녀사냥이 집행되고, 집단의 열정은 종종 핏빛 충돌 에너지로 전환된다.

광장에 서면 우리는 처음 얼굴을 마주친 사람과도 깊은 동지애를 느끼고 목이 터져라 같은 구호를 외치며 정신의 확장과 양심의 약동을 느끼게 된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행진할 때면 벅차오르는 우정과 시민의식을 공유한다. 이제 시민이 지배자가 되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새 세상을 만들어가는 역사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현장감으로 몸을 떨게 된다. 지도자의 비행을 규탄하며 그들의 도덕적 타락을 공격할 때라면 더욱 그렇다. 한때 으스대던 지도자를, 누구의 제지도 없이 멸시할 수 있는 자유는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저주와 모욕, 비아냥과 깔보는 언어들은 그 자체로 인간성을 황폐화시킨다. 최순실 사건의 가장 좋지 않은 점은 그것이 시민의 덕성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하나의 유죄가 입증되자 모든 작은 행동들까지 유죄의 증거로 나열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대부분 체육특기생들이 수업일수를 다 채운다고 믿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아니지 않은가. 기업들이 강제모금에 동원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놀라는 얼굴도 그렇다. 8선녀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인지,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심신 양면에서 지배하고 있다는 미 대사관의 분석이 진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 빈약한 증거들은 합리적 의심을 피해가기 어렵다. 집단 신념은 때로 무고를 정당화한다. 사실로 확인된 것은 길바닥을 뒹구는 프라다 신발 외엔 아직 별로 없다. 광장의 놀림거리가 된 박 대통령이었지만 지난주 최순실 없이 작성된 2차 사과 연설문은 다른 연설보다 더 진솔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우리는 시뮬라시옹이라고 부른다. 광우병이 그랬다. 광장은 독특하고 역동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지만, 심성 깊이 내재한 어두운 일면을 드러낼 수도 있다. 법치를 무너뜨리며, 사실(facts)에 눈 멀게도 한다. 마오의 문화혁명도, 킬링필드도 어린 학생들의 선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파괴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권력을 빼앗자는 것은 광장의 가장 강렬한 유혹이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씨는 심지어 공개적으로 ‘권력이양’을 요구하고 있다. 총리와 각료를 국회에서 지명하고 대통령은 권력을 이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나쁜 발상이다. 아예 혁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광장의 폭력으로 대체하는 것이 되고 만다. 물론 그럴 리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절대반지의 그것처럼 강하게 유혹에 빨려들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시험에 들고 있다. 우리 시대의 어리석음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2016-11-13 22:51:10 그냥암꺼나에서 이동 됨]
8 Comments
선양 2016.11.13 23:25  
혹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보셨나요?  5% 지지율이 왜 나오는지 궁금했는데  님같은 분이 계셔서 가능했나봅니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불변의 진리인가 생각이... 84년 학교 도서관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투신한 학우를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다 보고 충격을 받았던... 님! 11.12일 촛불이 헛된 망상이라 보시나요?
Pole™ 2016.11.13 23:53  
최순실과 그 일파들로부터 혜택을 입은 가족들 수하들 또는 이용해 먹은 새누리 재벌 언론들 다 합치면 약 5%쯤 되려나요? 십원짜리 한푼 이득도 못 보고도 5%에 들어가는 계층은 과연 뭘까요? 판단 능력을 상실한 사이비교 광신도랑 비슷해보이는데요 아빠콩님은 썩어 빠진 기득권층이거나 광신도 둘 중 하나겠네요 참고로 여론조사에서 독도가 한국땅이 아니다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약 3%라고 하네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키워야한다에 반대하는 비율은 5%이고요
타이락 2016.11.14 00:18  
공감합니다. 전적으로...
천억맨 2016.11.15 04:27  
죄송하지만,저 쥐눈이콩인지.땅콩인지,쥐콩인지의
정체는 신라인일것에 백퍼 장담합니다.
수많은 신라인들은 선거때만 되면 동네 이장선거로 알거든요.
Pole™ 2016.11.15 20:44  
일반화의 오류를 가지고 지역 감정까지 만드는건 매우 위험합니다
천억맨 2016.11.15 04:24  
진짜 무식 하면 용감 하다고....
거짓말도 해버릇 하면 는다고....
사기꾼에 근접할정도의 거짓말쟁이....
광우병 파동은 2008년도 광우병 소고기를 먹은후
최소한 20여년이 흐른후에 서서히 진행 되는데...
광우병 사태일지,파동일지는 2028년 이후에나 나타날텐데
무슨 수작의 사기질일인지 거짓말인지.무식해서 모르고
하는짓인지....본인이나 실컷 쳐 잡수시지...
천억맨 2016.11.15 04:39  
앞으로는 기레기 쪼가리를 읽으려면 뒤집어읽고
줏어다 올리려면 뒤집어서 복사하던가
글자를 옮겨쓰려면 뒷글자 부터 꺼꾸로 옮겨 쓰세요.
그러면 다른 회원님들이 님을 가방끈 길다고 존중 하니까요.
아시겠죠?현제상태는 일수꾼이 좃만한 크기의 가방을 손모가지에
걸고다니는 정도의 가방끈 길이로 보걸랑요.
(보충설명 드리면 그정도 길이면 최대로 잡아봐야 중학교졸업 정도)
공심채 2016.11.15 22:57  
지금의 민주주의 자체가 저 글의 표현에 따르자면 소위 '광장의 폭력'에 의해 쟁취된 것일진데.. 기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국민을 위해 작동하지 않을 때조차 무조건 기존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 소위 '덕성'이라면 그 '덕성'은 누구를 위한 덕성인지? 소위 유명 일간지의 주필이라는 자가 모르고 저런 글을 썼을 리는 없으니 이 글을 읽는 저로써는 그 자의 '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군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