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바꾸면 모두가 편안해진다
기자는 위험직업군에 속한다. 분쟁지역 취재기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 그 통계가 있다. Committee to Protect Jounalists 에서 1992 년부터 2016 년 까지 취재 중 사망한 기자들을 집계한 통계를 발표했다. 모두 1209 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자란 상업목적으로 취재활동을 수행하는 프리랜서나 포토저널리스트를 포함한 개념이다.
취재국가별 기자사망자 집계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가장 많은 기자들이 죽었다. 모두 174 명이 사망했다. 그 다음이 시리아로 101 명이 순직했다. 가장 최근에 직무수행 중 사망함으로써 마지막으로 통계에 포함된 기자는 지난 8 월 6 일 파키스탄 Quetta 에서 취재활동을 하다 폭탄테러로 사망한 Shehzad Ahmed 기자였다, 카타르 도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알자지라 방송 소속 기자였다.
사망한 기자들 중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기자는 야마모토 미카(山本美香) 기자다. 일본 NHK 소속으로 시리아 내전을 취재하다 지난 2012 년 8 월 20 일 시리아 정부군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시리아 내전지역 중 최전선에 해당하는 격전지 Allepo 에 잠입해서 취재활동을 하다 숨진 그가 유명해 진 이유는 취재활동 중 숨진 6 명의 일본기자들 중 유일한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사지로 떠나기 전 본사 (NHK) 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 때문이다. "누군가가 기록을 하면 전쟁의 참혹함이 줄어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사망자 명단에 한국기자가 있나 찾아봤다. 놀랍게도 지난 24 년 동안 분쟁지역 취재 중 사망한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국국적 기자가 단 한 명도 없다면 혹시 외국국적 한국계 기자라도 있나 찾아봤다. 한국국적이고 외국국적이고 한국이름 비숫한 성이나 이름은 단 한 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망자 명단이 천 명이 넘으니 발견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암튼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한 명도 안 죽어서 섭섭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운이 무척 좋았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운이 좋아서 한 명도 안 죽은게 아닐 것이다. 취재 중 순직한 기자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다. 한국기자들은 분쟁지역에 아예 들어가지를 않는다는 괴이한 현실이 문제다.
분쟁지역에 들어가지를 않으니 죽거나 다칠 일도 없다. 안전한 호텔방이나 프레스센터에 죽치고 앉아 번역 인용을 빙자한 표절이나 베껴쓰기가 그들이 하는 일의 전부다. 아니면 현장에서 전송해 오는 외신기사나 포토들을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굴려서 추측 과장 날조기사를 끄적이기도 한다.
그리스 국가부도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취재를 떠났다는 이 나라 최고언론사의 주필이 지중해를 요트로 이동하다 바다에 빠져죽기라도 했다면 취재 중 순직했다고 CPJ 가 사망자 통계에 집어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CPJ 는 송주필이 무엇때문에 그리스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나폴리에서 소렌토까지 요트로 이동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끝까지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흑막이 그들로서는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존재하는 황당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경찰 군인 소방관들이 직무수행 중 위험을 감수해야하듯이, 저널리스트역시 경우에 따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특유의 work ethic 이 존재한다. 근데 이 나라 기자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의사가 전혀 없다.
워험을 감수할 의사가 없을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는 질문조차 할 용기도 없다. 이쯤되면 이 나라 주류언론에는 겁쟁이 차원을 넘어 빙충이들만 모여있지는 않나하는 의심이 든다.
질문조차 할 용기가 없는 기자들에게 분쟁지역 취재와 관련한 직업정신을 요구하는 건 터무니없는 무리다. 무슨 말인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미 몇 년 전 올린 적이 있는 이 동영상을 다시 한 번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i_nEZzdyvec
2010 년 서울 코엑스센터에서 벌어졌던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악의 이 개망신 사건은 국내언론에는 거의 보도된 적이 없다. 거의가 아니라 관련 보도기사를 전혀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게 얼마나 끔찍한 나라위신 추락이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대한민국 시민들도 드물다. 짐작컨대 태반의 시민들은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 큰 사건을 왜 그들은 보도를 안 했을까? 스스로 너무나도 부끄러워서였을 것이다. 자기 영어실력이 뽀록날까봐 질문을 안 한건지, 아니면 받아적는 것에만 익숙하다보니 사전에 대본에 주어지지 않은 질문을 할 줄 몰라서 그랬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마 두 가지 다 이유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장담은 못 하겠다.
만일 전자가 이유라면 영어실력이 아니라 직업정신의 완전부재가 문제의 본질이다. '진짜 기자'가 그 장소에 있었다면 영어가 제대로 되건 안되건 아랑곳하지 않고 동시통역기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질문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국기자들의 침묵을 기회삼아 끼어 든 중국기자가 영어를 잘해서 질문기회를 가로채지는 않았을 것 같다.
수 천 만 명의 세계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는 G20 컨퍼런스센터 현장에서 연설자가 지금은 행사주최나라인 한국기자들에게만 질문을 받겠다고 특권을 부여했는데도 '단 한 명'의 한국기자도 질문하지 못했던 사건과, 지난 24 년 동안 한국기자들이 분쟁지역에 들어가서 취재활동을 한 흔적이 전혀 없는 사실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기자를 할 자질과 직업정신이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가 분쟁지역에 들어갈 용기도 없고 질문을 할 능력조차 없다면 도대체 기자생활은 왜 하는 걸까? 이 나라 권력으로 가는 몇 가지 지름길 중 하나인 언론인맥을 통해 정치를 하고 싶어서 기자의 길을 택한 게 아닐까? 아니면 권력집단 중 하나가 된 언론의 일원으로서 거들먹거리고 싶어서 기자생활을 하는 걸까? 분쟁지역을 기피하고 질문도 할 줄 모르는 빙충이들 주제에 국내에서는 대단한 인텔리요 권력자인 것처럼 행동을 하는 꼴을 보면 싸르니아의 이런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류언론계에 이런 이상한 문화가 고착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987 년 체제 출범 이후 29 년 동안 대한민국은 변화를 이룩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조직으로서의 검찰인맥과 언론인맥이라는 두 개의 이상한 권력집단이 이전에 존재했던 군사독재보다도 훨씬 강력한 이너써클로 등장했다.
그 와중에 저널리즘 본연의 임무하고는 하등 관계없는 철학을 가진 인간들이 이 나라 주류언론 상층부를 장악하고 언론 문화를 완전히 망쳐놓은 것이다. 그 결과 저널리즘의 기능은 마비됐다. 그들을 보고 배운 후배기자들이 학맥과 인맥을 따라 정치권에 줄을 대고 그 보스들의 정보끄나플이나 프락치 노릇을 하는데 정신을 파는 건 정해진 행로다. 그런 조직문화에 오염되어 기자정신을 상실한 인간들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사실발굴이나 목숨을 건 분쟁지역 취재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는 건 당연하다.
송주필 사건도 이런 시각의 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핵심을 제대로 짚을 수 있다. 그 사건의 본질을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개싸움으로 몰고가는 건 교활한 권력집단의 주류가 바라는 사건해석 프레임이다. 그건 사건의 피상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 본질은 아니다.
수 십 년 간 구축되어 온 검찰인맥과 언론인맥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한심한 인간들의 협잡과 카르텔을 제도적이고 구조적으로 분쇄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 어느 당이 집권하든 대통령이 누가 되든 관계없이 그들만이 벌이는 게임과 파티에 나머지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계속 개-돼지처럼 이리저리 휘들리고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