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한민국의 한 구석에서는 '덕혜옹주'에 열광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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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한민국의 한 구석에서는 '덕혜옹주'에 열광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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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여행은 의미있는 문화기행이 될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할 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윤덕한의 '이완용 평전'을 사서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하는 것이다. 

 

초판이 출간된지 10 여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작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완용 평전' 현상과, 

이미 관람객 500 만 명을 넘어서며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영화 '덕혜옹주' 현상 사이에는 전혀 상반된 정서가 존재한다. 

 

이완용 평전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어느 역사학자도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근거로 대한제국 멸망사를 새롭고 정직하게 조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지상주의에 근거한 집단정서가 온 나라의 숨통을 조여왔던 야만적 풍토에서 강요된 상식을 거부하고 사실관계를 용기있게 진술한 저자는 근대사학자가 아니라 기자 출신이다. 


(여기서 '민족주의에 입각한 아만적 풍토'라는 말은 싸르니아의 말이 아니라 원로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이 했던 말이다. 그는 이막동 선생(세종)의 훈민정음 제작 이유를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은퇴하고나서야 이렇게 표현했다)     

 

영화 '덕혜옹주'가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에는 정반대의 집단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고종의 막내딸 이덕혜의 일생을 픽션으로 그려놓은 이 작품은 영화라는 편리하기 짝이없는 도구를 빙자하여 실재했던 인물과 그 인물이 소속됐었던 왕조에 대한 신기루같은 이미지를 전달하려 한다는 비판이 높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왕실소속 인물 중 독립운동 비슷한 것이라도 한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그런 비판과는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막대한 공감'을 선사하는 모양이다. 그 '막대한 공감'의 내면에는 날조된 픽션도 잔잔한 미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족주의적 집단정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겠다. 

 

어느 평론가가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픽션이지만 덕혜옹주는 당시 김연아 같은 아이돌이었고, 우리 민족은 우리의 마지막 황녀에게 영국국민들의 영국왕실에 대한 것과 같은 기억을...... " 

 

요즈음 잠꼬대같은 개소리는 진보진영 평론가들이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상반된 본질을 함유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문화현상이 대한민국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완용 평전은 이완용이 매국노인줄 일았는데 사실은 독립운동가 였다고 써 놓은 건 아니라고 하니까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아직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조각페이지들과 평론들을 보니 시대상황과 사료들을 근거로 냉철하고도 객관적 시각에서 조명한 기록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객관적 시각과 실제 사료들에 충실하게 입각한 기록과 한국인의 집단기억 속에 박혀있는 이완용에 대한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무엇이고 왜 그런 차이가 생겨났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독서의 묘미일 것이다.   

 

마침 다음 주 월요일인 29 일은 일본이 조선을 인수합병하는 사건이 일어난지 106 주년 되는 날이다. 

 

강점이나 강탈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인수합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대한제국이 일본에 대항해 전쟁은 커녕 전투 한 차례 치른 적없이 서류에 서명해 나라를 넘겼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나라의 소유주인 황제라는 작자가 음독자살을 기도하기 위해 치사미달량의 비상을 다량의 물과 함께 들이켰다는 소문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니 일본의 대한제국 접수를 인수합병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보다 5 년 전인 1905 년 11 월 17 일에는 대한제국 외무대신과 일본제국 주한공사 사이에 불평등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의 정식명칭은 제 2 차 한일협약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한'은 대한제국의 '한'이다. 이 조약을 한국에서는 을사조약 또는 을사늑약이라고도 부른다. 

 

이 조약은 사실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라고 볼 수 없다. 전쟁당사국과 중재국 사이에 벌어진 협상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왜 그런지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미국 동부 뉴햄프셔주에 포츠머스라는 작은 항구도시가 있다. 군사도시이기도 하다. 제 2 차 한일협약이 체결되기 두 달 전인 1905 년 9 월 5 일, 이 항구도시에 마련된 회담장에 일본 제국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와 러시아 제국 재무대신 세르게이 비테가 나타났다. 

 

두 사람을 초대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 테오도어 루스벨트 였다. 미국이 일본과 러시아 대표를 포츠머스로 초대한 이유는 막 전쟁을 끝낸 두 나라를 중재해 강화조약을 체결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일 년 반 이상 전개된 이 전쟁에서 일본은 러시아의 발트함대를 쓰시마 인근 바다에 수장 전멸시킴으로써 결국 승리했다. 일본군은 10 만 명 이상이 전사했고 15 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러시아 또한 7 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자리에서 일본 제국의 외무장관은 이런 입장을 개진했다. 

 

"지난 10 년 간 일본은 극동에서 두 차례의 전쟁을 치뤘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의미한다) 이 두 전쟁은 조선을 통치하고 있는 정부의 일관성없는 외교정책 등 disorganization 에 기인한 바 크므로 일본이 이 나라를 지도-보호-감독할 수 있는 정치-행정-외교-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승인해 주기 바란다. 이것은 주변강대국들로부터 일본의 영토와 주권안보 및 이익을 지키기위해 절대 필요한 조치다" 

 

(수 백 년 세월이 흐른 후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매우 유사한 20 세기 초와 21 세기 초 두 시대를 혼동할 수 있어서 여기 따로 기록한다. 당시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이명복 정부였다. 이명박이 아니라 이명복이다. 고종의 아명이다.) 

 

이러한 일본의 입장은 러일강화조약의 제 1 조항으로 기록됐다.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이를 수락했고 미국정부는 이를 승인했다. 이 조약체결로 테오도어 루스벨트 미국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일본제국 전권특명대사 이토 히로부미와 주한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직접협상하여 이 조약을 성사시켰다. 

 

문제는 한국 역사학계가 승정원일기 등 당시 기록을 취사편집하거나 왜곡하여 어떻게든 대한제국의 운명과 관련하여 전권을 거머쥐고 있는 황제 고종의 책임을 면탈시키고자 그 책임을 여덟 명의 대한제국측 협상대표 중 협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대신 최종결정권을 황제에게 위임한 다섯 명에게 모조리 뒤집어 씌우는 엉터리 학설을 수립하여 지금까지 정설로 채택해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항하여 승정원일기와 고종실록은 물론 오대신상소와 그에 대한 고종의 비답, 일본측 기록자료 등 방대한 1 차 자료들을 정밀검토한 후 정설이 대부분 거짓말이었음을 폭로한 책이 '이완용 평전'이다. 

 

책의 저자는 친일부역자들을 옹호하는 사람이나 뉴라이트가 아니라, 기자정신에 투절한 해직기자 출신이다. 

 

조약발표 후 여론이 악화되자 고종은 자신의 어명을 따라 협상을 진행한 다섯 대신에게 "협의하여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들었다고 이 책은 적고 있다. 

 

필자는 한국 역사학계의 '집단주의적 애국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즉 한국의 주류역사학계가 "고종이 을사조약에 반대했고 비준하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며 '나라의 체면을 생각해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을 펴는 것이 애국일지는 모르나 진실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는 아픈 지적도 하고 있다. 

 

이 책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제 2 차 한일협약' 5 년 후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7 개 주요조항 중 맨 앞의 4 개 조항이 일본황실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대한제국 구영토에서 군림하게 될 이씨왕실과 종친들의 예우에 관한 사항들이라는 것 을 볼 때 이 조약의 기본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실질적인 매국노는 고종 자신이며 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은 사실상의 국가소유주 고종 '이명복 회장'의 법적대리인들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조선총독부 1 년 예산의 10 퍼센트 가량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이 당초 협약대로 일본이 전쟁에서 패전하는 1945 년까지 일본황실의 종실로 편제된 이왕실 (당시 이왕실은 일본황실의 일원이었다) 에 지급되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를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상식이나 막연한 집단정서에 휩쓸려 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진솔한 기록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선하고 합리적인 기억들을 함께 공유해 나가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반된 문화현상들 중 하나인 이완용 평전과 영화 '덕혜옹주'를 차례로 읽고 감상하면서 그 느낌의 차이를 비교하고 같은 한국인 (한국계) 끼리 의견을 나누어보는 건 아주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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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이 월산대군의 사저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금은 대한문 서쪽으로 밀려났지만 원래는 지금의 시청광장 일대를 포함하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대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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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르니아가 발급받은 최초의 대한민국 여권

발행인은 외무대신 박재순이다.

 

그런데......

박재순은 이른바 '을사오적' 중 한 명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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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코난 2016.08.26 09:22  
얼마전 TV를 보니 에디슨의 전기를 미국을 제외하고 상업적으로 최초로 설치한곳이 대한제국의 덕수궁이었다고 하더군요.
동학난등을 통해 볼수있듯이 민중의 삶은 최악으로 치닫고
주변국들의 정세는 하루하루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조선왕실이나 기득권층의 의식이 얼마나 썩어빠져있었는지 알수 있더군요.
그런 왕조는 당연히 망하는게 맞는건데
망하는 와중에서도 기득권을 지킬려고 일본에 팔아넘긴거지요.
이완용이나 고종, 민비같은 작자들의 차이를 모르겠네요
덕혜옹주 또한 잘먹고 잘살다가 말년이 좀 불행했지만
대다수 조선의 민중들이 당했던 고통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할수 있지요
저는 명성황후라는 호칭을 정말 싫어합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망해먹은 X이 무슨 황후?
민비라는 호칭도 과할듯 합니다
sarnia 2016.08.26 09:53  
식민사관을 극복한다며 민족사관이란 것이 등장했는데 1980 년대에 이게 무슨 보물단지나 되는 줄 알고 애지중지했던 게 참 허망하지요.
관점은 당위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출발이고, 그 다음부터 중요한 것은 사실에 근거한 해석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점만 중시해서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한다면 그건 사이비 종교로 전락하는 거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지요.
민자영에게 명성황후라는, 추존존호를 붙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 입니다. 명성황후라고 안 부르고 민비라고 부르면 따돌림을 당하는 문화도 잘못됐다고 생각하구요.
이런 이상한 문화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호칭을 제멋대로 바꾸어 부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못난 풍토로도 나타납니다.
을사늑약 같은 신조어가 그것인데요. 용어를 바꾼다고 자존감이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문젯점을 제대로 발견하고 반성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10 년 8 월 29 일 합병이후 이씨왕실은 쇼와 황실에 편입되어 일본황실 일원으로 1945 년 까지 정부예산 (조선총독부 예산)의 10 퍼센트를 빠짐없이 받아챙겼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쉽게 말해 오늘의 한국정부 예산으로 환산하면 약 4 백 조 원의 10 퍼센트에 해당하는 40 조 원 가량을 한 집안이 받아 챙긴 것 입니다. 을사조약. 정미칠조약, 합방조약등에 대신들로하여금 서명하게 하고 비준해 준 댓가로 말이죠.
진파리 2016.08.26 10:58  
명성황후건은 몇년전에
무궁화 꽃이~작가 김진명이 명성황후 라는 책에서
과대포장한 후부터 논란이 가일층 불거져 온것 같습니다.
민자영이가 한일을 생각하면
폐서인해서 추자도에 위리안치 시켰다가 그냥~

고종등 황실.이완용등 을사오적으로 대표되는 다수의 신하들.
이 두 그룹은
일제에게
백성과 국토를
자신들의 신분보장과 은사금과 교환 하는데 합작한
공동 범죄자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완용이 고종의 떠넘김등등 어쩔수 없이 그리했다면
합병이후 자결은 아니하더라도
낙향등 은둔생활이라도 했다면
이완용이 신하로서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어느정도의 정당성은 부여될수 있겠으나
이완용이 죽을때 남긴 재산이 현재돈으로 600억 이라하니
매국노의 범주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듯 합니다.

덕혜옹주는 몇년전 책으로 읽었는데요.
지금 기억나는건
덕혜옹주는 정신병 환자였고
일본인 남편 소씨가 고생 많이했구나.^^ 정도입니다.

마눌과 딸이 영화보고 와서 얘기하길래
딸아이에게 읽어보라고 책 찾아 줬지요.
딸래미 한마디ㅡ영화랑은 다르네요.ㅠ
그 책도 소설이지만 영화보단 사실에 가까울거다.
라고 말해줬지요.

영화 덕혜옹주가 화제가 되는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덕혜옹주도 대통령이 될수 있겠구나!!~ 하고요.^^
sarnia 2016.08.28 02:05  
조선 (대한제국) 을 몇몇 매국노들이 일본에 팔아먹은 것 처럼 조작된 학설을 정설로 삼아 수 십 년 간 학생들에게 가르쳐 온 게 문제이지요. 주범 고종은 그저 무능하거나 친일매국노들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닌 것으로 인식되어왔고, 비분강개하다가 헤이그 사건으로 강제퇴위된 비운의 임금인 것처럼 평가절상되어져 왔고요.

그나저나 제국일본의 조선왕실에 대한  의리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패전할 때까지 한 푼도 떼어먹지 않고 그 엄청난 액수의 왕실예산을 지급했고 조선왕실은 그 돈을 꼬박꼬박 받아챙겼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덕혜의 개인사가 얼마나 비극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가문에 의해 나라가 통째로 외국의 군국주의자들에게 매각되어진 조선의 입장에서 그의 개인사를 안타깝게 봐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덕혜를 조선의 아이돌로 생각하고 저항의 상징으로 자가세뇌 하는 유권자가 다수가 된다면 이덕혜 대통령이 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죠.
kairtech 2016.08.27 17:13  
영화는 다양한 쟝르가있죠
덕혜옹주가  다큐멘타리영화라면 문제가있겠지요
극영화인지 영화를안봐서 모르지만
영화의내용하나로  역사인식전반으로 비화해서  침소봉대하는것도 우스운일입니다
영화는 영화일뿐이고  근대한국사는  지금은 집권자의 힘에의해 각색될수도있겠지만
역사라는게  일개집단이 일개권력이 감추고 왜곡한다해도
언젠가는  바른역사인식이전제된 바른 해석이 등장합니다
영화는 영화일뿐입니다  그제작자도  먹고살아야죠  제작비 뽑으려면 흥행도 생각해야하고
설마 대다수 국민이  영화관람객이 영화내용이 역사의전부임으로 알수있다는 걱정하는마음이라면  그건 너무 순진한착각입니다
극영화인지  세미극영화인지  다쿠멘타리영화인지  그거조차 인식안하고  그냥  영화로 보는관객이  대다수일듯

대한민국  국민이  걱정하신것처럼  우매한국민은  아닙니다
sarnia 2016.08.28 02:09  
픽션이더라도 실재했던 인물의 실명을 등장시켜 영화를 제작하면서 없었던사실을 ‘주제’로 날조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는 아니지요. 블랙코미디라면 몰라도요.

제가 며칠 전에 써 올린 인천상륙작전역시 엉터리 영화이긴 마찬가지지만, 주제를 날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점에서 ‘덕혜옹주’는 인천상륙작전보다도 나쁜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박정희의 신경군관학교 시절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칩시다.
실명으로 등장한 주인공이 그 학교시절 출세와 정체성 사이에서 몹시 갈등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감동적인 픽션을 엮었다고 했을때, 좋아요. 여기까지는 오케이..

근데 개뚱딴지같이 그 실명 주인공 박정희가 광복군 비밀지하조직의 일원으로 신경군관학교에 위장입학했고 그 후 교장을 암살하고 교욱시설을 폭파한 뒤 장렬하게 전사했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런 스토리를 담은 영화는 어떤 장르로 분류해야 할까요?
 
그런 영화를 만들지 말라고는 안 합니다. 날조든 개소리든 만드는 건 제작자 자유이고,  날조나 개소리에 대해 비판하는 건 관객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 우매하다는 말은 누가 했나요?
일부 평론가나 관객들이 저 영화를 보고 이덕혜를 조선의 아이돌이었다며 김연아나 영국왕실에 비교하면서 무슨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한 겁니다.
너무 확대해석하지 마세요.
천억맨 2016.09.02 03:05  
뭔가 착각 하고 있는것이 아닌지요?
영원히 우매한 대충 30%가 존재 하는것은
우매하지 않는 나머지 한국민은 알고 있지 않나요?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데 현시대에도 왜곡 되어 있다면
우 리 사후에 지금과 같을지 바르게 고쳐 졌을지 누가 어캐 아나요?
지금 당장 고쳐도 될까?말까?일텐데
그렇케 관대하고 깊은 포옹력이면 이런 댓글을 달필요성이 없을듯한데....
그냥 댓글 안달아도 물흐르듯 시간이 지나면 바른 해석 될것이고
그냥 제작자가 숨은 의도가 무엇이든 만화 한편본셈치고 제작비만
뽐으면 될텐데....근데.....samia님 힘들여 쓰신글의 노고비로 칭찬 좀 해주면 안되려나....
그리고 귀국후 그님은 창덕궁 낙선재에서 그곳 직원들의 수발을 받으며
잘지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whdals1945 2016.08.29 14:02  
이런 역사왜곡 영화에 열광하는이유를 모루겠네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