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미국망명을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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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미국망명을 생각했을까?

sarnia 8 293
 
이 노래를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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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친일부역자 유가족일동을 대표해서 건국절 선포발언을 했던 지난 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해외망명계획을 짐작케하는 기밀해제 외교문서가 공개돼 일부 언론에 보도됐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6 년 미국 뉴욕 교외의 최고급주택가 Westchester 카운티 Scarsdale 지역에 대지면적 4 만 스퀘어피트 가량되는 chateau style house (대저택)을 불법매입했다는 의혹을 사실로 확인해 준 이 기밀해제 외교문서에서는 당시 한국 외무부와 경제기획원, 외환은행이 박정희 씨의 가족을 위해 어떤 불법행위를 저질렀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이 고가의 주택을 매입한 소유주 이름은 한재옥으로 되어있다. 한재옥이 누구인가? 

 

1979 년 11 월 3 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TV 실황중계로 본 사람들이라면 당시 유족소개와 관련된 이상한 멘트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자가 '큰사위 부부'라는 용어로 어느 중년부부를 소개했는데, 큰딸 부부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큰사위 부부라는 괴상한 호칭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은 매우 어리둥절해 했었다. 사람들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든 건 큰사위가 있으면 작은사위도 있다는 말인데, 당시 박정희 씨의 알려진 자녀 중 근혜씨와 근영(후에 이름을 두 번이나 개명함)씨는 모두 미혼이었는데 결혼한 딸이 두 명이나 더 있다는 말인가 하며 의아해했었다.  

 

암튼 한재옥의 본명은 박재옥이다. 박재옥 씨는 박근혜 대통령보다 열 다섯 살이 많은 이복언니다. 남편이름이 한병기이므로 남편의 성을 따 주택매매계약서에는 한재옥으로 기입했을 것이다. 

 

1976 년 11 월 30 일자 뉴욕타임스 기사는 당시 한국정부의 의심스런 주택구매과정을 폭로한 바 있는데,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다음과 같은 의혹소개를 덧붙였다. 

 

"...... Mr. Han also recently bought a $205,500 house in Scadale N.Y. There are rumours in the Korean community that the large, red brick chateau style house would be a refuse for President Park if he is overthrown. But that could not be confirmed. ......" 

 

미국언론이 연일 폭로기사를 내고 뉴욕동포사회에 의혹이 확산되자 한국정부는 부랴부랴 한재옥이라는 소유주가 죽어서 한국정부가 이 주택을 뉴욕총영사 관저로 싸게 매입한다며 뉴욕총영사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주택을 총영사관저로 매입했다. 누가보아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어쨌든 그 바람에 뉴욕총영사는 자신의 상급자인 주미대사보다 훨씬 크고 호화로운 공관이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것에 즐거워한대신 왕복 두 시간이나 걸리는 출퇴근거리에 짜증을 내기도 했을 것이다.   


기밀해제 외교문서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박동진 외무부장관과 남덕우 경제기획원장관은 이 주택소유주 한재옥이 사망함에 따라 주택을 시가보다 약 5 만 달러 정도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사실이 날조된 공문을 주고받으며 외환은행을 통해 미화 20 여 만 달러를 불법반출하여 매도의향서에 사망자로 되어있는 주택소유주 한재옥에게 지급했다. 한병기 박재옥 부부는 사망하기는 커녕 40 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에도 둘 다 생존해 있다. 


당시 정도순 뉴욕총영사는 'Letter of Intent' 에 매도자 이름을 해리엇 드래난이라는 있지도 않은 가공인물로 기입했다. 사실상의 매도자 한재옥은 죽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외환은행이 가짜서류들을 근거로 한재옥에게 불법대출해 준 20 만 달러는 온데간데없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웃기는 것은 당시로서는 거액인 이 돈을 대출해주면서 Westchester 카운티 등기소에 담보권설정을 하지도 않은 바람에 현지 등기소를 통해서는 이 대출금을 갚았는지 어쨌는지도 알 수가 없게 됐다. 외환은행 (지금의 하나은행)이 답변해야 할 대목이다.      

 

싸르니아가 궁금한 건 1976 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질렀던 불법외화반출사건의 전말 따위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왜 이 대저택을 무리한 방법으로 큰딸 명의로 구입했을까, 하는 점이야 말로 밝혀내야 할 핵심적 의문이다. 

 

와이프 육영수 씨가 살아있었을때는 마음놓고 돌봐주지 못했던 큰딸이 불쌍해서 뉴욕에 그런 집을 사줬을지도 모른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긴 박재옥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스무살 때, 즉 철없을 때 난 딸이다. 그 이후 딸을 제대로 돌본 적도 없다. 그 딸이 결혼한 후 백수건달이나 다름없었던 사위 (큰사위라는 이상한 별명이 붙은) 한병기 씨를 뉴욕총영사, 칠레대사, 유엔차석대사, 캐나다대사 등, 그의 경력에 비해 얼토당토않게 직급이 높은 외교관으로 삼아 해외로 내보낸 이유가 두 가지일텐데 그 중 한 가지는 큰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물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싸르니아는 '딸에 대한 미안함'이 뉴욕주택 불법매입의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뉴욕주택과정은 뭔가 다급한 분위기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졌던 인상이 짙고 시간이 지나면 불법행위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범정부적 차원으로 진행됐다. 단순히 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면 이토록 무리하고 위험한 방법으로 해외주택을 불법으로 구입하는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다른 하나의 관전포인트는 1976 년이라는 시기다. 한국정부의 미의회불법로비사건 코리아게이트가 터지면서 박정희 정권의 운명이 풍전등화 신세가 되었던 때였다. 물론 이 시기는 박정희 정권이 핵개발의사는 포기한 후였지만, 그 해 연말부터 미국의 새 권력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자마자 유신독재에 대해 고강도 압박을 본격화했던 시기기도 했다. 그런 시기에 박정희 일가족의 미국망명공작을 벌린 게 사실이라면 서로를 원수처럼 싫어했던 미국의 정권인수위, 또는 곧 이어지는 카터행정부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플랜B - 이중플레이가 실제로 진행됐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대저택을 무리함을 무릅쓰고 한국정부명의가 아닌 딸 명의로 구입한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의혹은 타당성이 있다. 망명을 염두에 둔 구입이라는 추론 이외에는 다른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락을 맞았기 때문에 그 타당한 추론이 사실로 증명될 기회가 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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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주택의 현재 가격이 궁금하실 수도 있겠다. 일단 그 주택은 현재 더이상 한국정부 소유가 아니다. 뉴욕총영사관은 문제의 불법매입주택을 뉴욕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휠씬 전인 1997 년 170 만 달러에 매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매매가격은 알 수 없지만 비슷한 가격대에 매입했던 뉴욕지역 한국 공관들의 현재가격이 2 천 만 달러에서 3 천 만 달러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이번에 기밀이 해제된 '주뉴욕총영사관 관저매입 1977' 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문제의 주택이 있는 지역 역시 맨하튼에 필적하는 부동산 부가가치에는 못미친다고 하더라도 환경이 우수한 고급주택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넓은 부지의 chateau 급 대저택이므로 맨하튼 소재 공관들에 못지않은 주택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8 Comments
코난 2016.08.21 08:32  
그런 사실이 있었군요
흥미롭네요.
근데 망명설에는 동의하기 힘드네요.
그 탄탄한 권력을 놔두고 망명한다는게 ㅋ ^^;;;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진파리 2016.08.21 10:57  
박정희의 첫번째 결혼은 아버지의 강요로 20살때 한것 이지만

두번째 결혼인 육영수와의 결혼일자가
1950년 12월12일 입니다.

그때가 어떤때 였는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유엔군과 한국군이 떼죽음을 당하며
남으로 남으로 철수하던 시기.흥남철수가 12월 성탄절 전후.
12월 6일날 중공군이 평양에 들어옵니다.

그런 중차대한 시기에
군인신분의 박정희는 10월에는 구미가서 김호남과 이혼하고
12월에 대구에서 육영수와 결혼합니다.

전우들은 전장에서 죽음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육군소령 박정희는 군인으로서 국가의 안위보단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택합니다.
그 결과물로써 전쟁중인 52년 2월 박근혜가 태어납니다.

또 웃기는건
김종필은 그 다음해 서울이 다시 공산군에 점령당한
1.4후퇴 한달후인 2월에
박정희형 박상희의 딸인 박재옥과 결혼합니다.

전쟁때는 총한방 안쏴보고 애정생활에 충실했던 분들께서
전쟁이 끝나고 이승만 독재권력도
4.19혁명이라는 시민의 힘으로 무너뜨린
해방후 처음맞는 문민시대에
얼토당토 않게시리
나라를 구하겠다며 쿠데타를 일으켜
무려 20년 가까이 수많은 국민을 탄압하며 권좌에 앉아 있었지요.
과연.이런 사람들을 애국자 라고 할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또하나
다들 아시는 설악산 케이블카.
그거 박정희 큰딸부부 박재옥.한병기네 소유 입니다.
용인 민속촌도 친척소유 이구요.ㅠㅠ
sarnia 2016.08.21 11:56  
본문하곤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기왕에 가족 이야기를 하시니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육영수 씨의 아버지 육종관은 충북 옥천의 거부였습니다.
이 사람은 1965 년 죽었는데 죽을 때까지 사위를 안 봤다고 합니다.
당시 사위는 대통령이었는데말이죠.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육영수는 육종관의 둘째 딸이었는데 그가 가장 신임하던 딸이었다고 합니다.
육영수를 박정희에게 소개한 사람은 육영수의 이종사촌오빠인 송재천씨인데 박정희의 대구사범 후배이기도 한 그는 박정희가 유부남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박정희가 유부남인걸 안 것은 육종관 씨가 사람을 사서 그의 뒷조사를 하고나서였는데 딸까지 있다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했다고 합니다.
그가 더 혼비백산한 건 박정희가 유뷰남인 걸 알고나서도 결혼결심을 굽히지 않은 그의 딸의 뜻밖의 태도였을 것 입니다.
그런 그에게 박정희는 원수같은 인간이었겠지요.
박정희의 부인 김호남이 끝내 이혼을 거부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정희가 결혼한 12 월 한 두 달 전에 이혼에 동의합니다.
제 추측에는 딸이 유부남과 결혼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육영수의 어머니 이경령이 김호남을 찾아가 같은 여자로서 눈물로 호소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유한 집이었던만큼 금품을 건넸을 것도 같은데 그런 증언이나 자료는 없습니다.

결혼에 얽힌 비화와는 관계없이 육영수 개인은 성품이 반듯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쁜 평가를 찾기가 어려우니까요.
박정희와 욱영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녀는 어찌된 일인지 단 한 명도 그 평판이 좋은 모친쪽을 닯은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점이 좀 이상하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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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권은 유신이후에는 겉으론 견고해보였을지 몰라도 매우 불안정한 조직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이 대미관계에서 그랬습니다.
내부적으로도 육사 8 기와 11 기를 대립시키고 경호실과 중정을 대립시키는 등 내부권력간 상호견제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전형적인 독재정권의 비정상적인 통치스타일을 구사했습니다.
망명플랜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박정희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큰 규모의 저텍을 구입한 건 사실이고 해당문서가 지난 4 월 공개됐지만 드때 기밀해제되어 공개된 대량의 문서들중 문제의 주택매입사건이 발견된 것은 지난 주 같습니다.
진파리 2016.08.21 13:24  
네.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괜찮은분 같아요.
박정희도 외면한 김호남을 끝까지 챙겨줬다는 얘기들도 많고요.
그분 돌아가신날 기록보면
문세광의 총탄에 맞진 않고 박종규의 오발에 맞아
돌아가신걸로 추측하는 영상물도 나오데요.
이제는 말할수 있다. 인지 그것이 알고싶다 인지 가물가물.^^
sarnia 2016.08.21 23:05  
https://thailove.net/bbs/board.php?bo_table=korea&wr_id=1604&sfl=wr_name%2C1&stx=sarnia&sop=and&page=6

약 5 년 전에 육종관 씨와 박정희-육영수 결혼 이야기를 올린 게 있어서 가져와 봅니다.
육종관은 슬하에 스물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우연하게도 이막동 선생과 자녀 수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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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가 누구의 총탄에 맞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문세광이 총에서 발사된 탄환은 모두 수거했고 탄착점이 모두 확인됐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육영수는 그가 쏜 총에 맞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 최소한 확인된 셈 입니다.

박종규는 문세광이 사격을 시작하자 연단 앞으로 뛰어나가며 관객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는데 그가 쏜 총에 광복절 합창단원으로 참석한 고등학생 장봉화가 맞고 절명했습니다.
진파리 2016.08.22 05:02  
당시 기념식 녹화물을 보면
박종규가 연단앞으로 튀어나오며 권총을 빼는데 총을 떨어뜨리는
장면과 총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장면도 나오고.
다른 경호원이 육여사 뒤로 숨는 장면도 나오고~
그당시 상황이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유신정권이 일본과 국민에게
수세에 몰리자 정국만회용으로 만든 자작극 이라는둥
많은 설 등이 있네요.실제로 정국의 변화도 생겼구요.

박정희의 결혼을 언급한것은
전우들은 전장에서 죽어나가고.
나이어린 학도병들까지 목총들고 나가 싸우는 전쟁통에.

군인 이라는 작자가.
그것도 장교라는 작자가.
후방에서 연애질은 물론 이혼에 결혼에~

박정희라는 사람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일상의 생각.
즉. 권력과 관제언론에 의해 가공 되어지지 않은.
감추어진 그 사람의 추악한 민낮을 엿볼수 있는일중 하나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kairtech 2016.08.21 20:16  
글제목에  오류가있네요
마치 망명을 기정사실화하시고 제목을 정하신듯하네요
박정희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을할정도로  미국과  친했다는 문서는 어디나온거없나요?
이런글은  소설로 분류하여야할듯합니다
극희 주관적인 내용인데  객관적인 팩트를 가지고 판단하여야할거같네요
이렇게  해석할수도 있다 정도로  이해합니다
별사냥 2016.09.18 22:12  
네..  용인 의 한국민속촌 의 주인은 육영수여사 바로 위 언니의 남편 (육여사 형부)의 소유입니다. 골프장도 몇개 소유하고 있죠.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조카사위.. 육여사 조카사위 분들 예전 KBS사장 . 또 은행장 .대학교수 대단한 집안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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