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던 이상한 영화
영화는 처음부터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맨 처음 시작하면서 스크린에 떠오른 타이틀카드 때문이었다.
"This film is inspired by true events"
영화 'Operation Chromite'는 한국전쟁 중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벌였던 비밀첩보공작 X-Ray 작전을 주제로 한 영화다. 이 작전에는 한국 해군 첩보부대가 파견됐었다. 비록 더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를 만들었으면 "based on true stories" 라는 표현을 써야지 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는 식의 엉뚱한 표현을 했을까?
영화 제작진은 애당초부터 엉터리 영화를 만들겠다고 작심을 한 것 같다. 싸르니아는 어젯밤 에드먼튼의 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야 왜 한국의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그토록 혹평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과 주제로 삼으면서 사실과 본질을 훼손하고 싶으면 장르를 바꿔야한다. 블랙코미디로 만들든지 '똘이장군'같은 이념형 만화영화 같은 것으로 만든다면 누가 뭐랄 사람없다.
다른 건 몰라도 전쟁을, 그것도 직접 겪었거나 그 비극의 여파를 겪고 있는 세대가 아직 생존해 있는 전쟁 이야기를 다루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장난'을 치는 건 용서하기 어렵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작품들이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제작자의 시각을 절제하는대신 전쟁과 인간의 본질에 촛점을 맞추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게 전쟁을 '진담으로' 다루는 영화가 갖추어야 할 기본 예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장학수나 림계진이 아니다. 더글라스 맥아더다. 조연을 가장한 주연 중의 주연이다. 배역이 리암 니슨이어서가 아니다. 배우의 비중과는 관계없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는 맥아더라는 조연의 대사밖에는 남는 게 없도록 영화의 스토리와 배역들의 대사구조가 설계되어 있다. 한국어 대사들은 마치 이수일과 심순애에 나오는 식의 고전 신파조가 대부분이어서 슬퍼해야 할 대목에 쓴웃음을 짓게하는 반면, 맥아더의 대사는 진한 여운을 남길만한 것들이 많다.
특히 워싱턴 합동참모본부의 인천상륙 반대입장을 전달하는 반덴버그 (Hoyt S. Vandenberg) 미국군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간부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에게 들려준 맥아더 자신의 전쟁관과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한강방어전선 참호에서 만났던 어느 소년병과의 대화는 꽤나 감동적이다. 그 에피소드를 참모들에게 들려 준 후 그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그 순간 무엇을 느꼈는 줄 압니까? 그 소년과 내가 같은 군인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 그래서 나는 결심했습니다. 그 소년병의 나라를 구해주기로."
이 대사는 아마도 이 영화의 핵심적 메시지일 것이다. 맥아더가 진짜 그런 말을 남겼다면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에라도 새겨져 있을 법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동상에는 비둘기똥만 잔뜩 붙어있을 뿐 그런 말을 햇다는 기록은 없다. 그런 말을 한 걸 들었다는 사람도 없다. 싸르니아도 그 영화에서 어제 처음 들었다. 맥아더가 남긴 말 중 그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명언은 다음과 같은 말 일 것이다.
"Whoever said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obviously never encountered automatic weapons"
(어떤 놈이든지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지껄이는 놈들은 아직 자동무기 맛을 못봐서 그래)
맥아더가 한국전쟁에서 북코리아 점령에 집착했던 이유는 한 가지다. 일단 자기가 시작한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야 말겠다는 그의 특이하도록 집요한 승부근성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걸고 담판하고자하는 승부욕은 도박사의 중독성 강한 모험심과도 같은 것이다. 맥아더의 그런 모험심이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무모한 행동으로 표출됐다. 그것은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그가 소년병의 나라를 구할 뿐만 아니라 반도의 북쪽까지 점령해야겠다는 결심은 아마도 전쟁발발 4 일 후인 6 월 29 일 도쿄를 출발해 서울 한강방어선 남쪽으로 날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그 소년병을 만나기도 전에 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이 날 극동군사령관의 자격으로 이승만과 만났다. 자신의 직속상관인 본국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은 채 해공군 작전지역을 제멋대로 북코리아지역으로 확대했다. 그 다음 날에는 이승만에게 직접 요구해 채병덕을 육군참모총장작에서 해임시키고 자신이 영어로 직접 대화하거나 명령할 수 있는 미국유학파 정일권을 그 자리에 앉히는 조치까지 마무리했다. 같은 날 그는 주일미국군 보병 제 24 사단을 한국전선에 배치했다. 전쟁발발 나흘만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맥아더의 이런 조치들은 한강변 참호에서 어느 소년병에게 감동을 받아 한 일은 전혀 아니고 그 소년병을 만나기 전부터 구상했던 일이었다.
영화제작자들은 맥아더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한국을 극동방위선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북의 선제공격을 초래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장본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당시 국무장관 에치슨만 죽일놈 취급을 하는데, 실은 당시 미국 국무부의 문민관료들은 일본을 방위하는데 한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하는 것을 합동참모본부 지휘관들에게 무던히도 끈질기게 설득했었다. 여기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한 사람이 맥아더다. 그는 한국에 있는 소수의 병력이 짐이 된다며 당장 철수하도록 국무부와 백악관을 강하게 압박했다. 천생 군인이었던 그에게는 어떤 나라의 전략적 중요성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고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아군병력이 적과 전투가 벌어졌을 때 승리할 수 있겠는지만이 관심의 전부였다. 그런 그의 눈에 적들의 수중에 떨어진 대륙과 육로로 연결된 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소수병력은 필패만을 부르는 짐스러운 존재였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두 번의 무모한 도박을 했는데, 한 번은 성공했고 다른 한 번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성공한 도박은 인천상륙작전이었고 실패한 도박은 38 선 돌파였다. 알려진대로 1950 년 10 월 1 일부터 시작된 맥아더의 북진작전은 중국의용군과 인민군의 합동매복작전에 걸려들어 유엔군 보병주력인 제 10 군단이 궤멸적 패배를 당하고 6 천 여 명에 달하는 병력이 동상으로 폐사하는 작전비행의 대참극을 유발했다. 한국전쟁 사상자의 대부분이 북진과 북폭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른 그는 작전대실패의 책임을 지고 가차없이 잘렸다.
좋은 영화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관객의 입장에서 좋은 영화란 인간이면 인간, 역사적 사건이면 사건, 각각의 본질에 천착하고 깊이있는 이해에 도달하려고하는 작가와 감독의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좋은 마음이란 자기의 관점을 선전하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고, 자기의 관점에 대립하는 것이라도 사실은 사실대로 전달하려는 기본자세를 의미한다.
사소한 배경묘사에 실수가 없도록 사료를 사실대로 고증하고 표현하는 것 역시 기본 중 기본이다. 예를들어 한국전쟁 당시의 북코리아군에서는 구타는 커녕 군관(장교)이 전사(사병)에게 말을 함부로 놓지 않았다는 초장기 북측 군대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자료도 검증하지 않은 영화가 무슨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있을까? 이런 이야기하면 북을 두둔하는 종북발언을 했네 뭐네 하면서 이야기의 촛점과 동떨어진, 멍충이들의 아우성만 창궐하는 문화에서라면 어떻게 영화에 대한 제대로된 감상평을 할 수가 있을까?
'Operation Chromite' (인천상륙작전)
'Train to Busan' (부산행)에 이어 이 번 달 들어 극장에서 보는 두 번 째 한국영화다.
이정재와 이범수의 연기가 볼 만 했을 뿐 거기 출연한 명배우들의 스타일을 완전히 구겨놓은 '나쁜 영화'였다.
싸르니아 (관객) 평점 4/10